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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살아볼까]인생에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


BY 왕눈이 2013-05-29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다니 그 혜택을 입는다면 지금 내 인생은 딱 절반쯤의 시기에 서있는 듯하다.

부모 밑에서 자라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내가 결혼한 나이쯤에 이르렀다.

잠깐 소풍 다니러 왔다는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문득 인생이 너무나 짧고 바람같다는 생각이 든다.

크게 이루어 놓은 것도 없고 크게 죄를 지은 것도 없는 것 같은 손익계산서(?)가 내 손위에 쥐어져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자\'는 내가 중학교때부터 읽기 시작한 수많은 책들을 보면서 다짐한 일이었다.

나보다 먼저 세상을 살다 떠난 선배들의 충고대로 살다보면 적어도 실패한 인생이 되지는 않겠지.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다. 때로는 머뭇거리고 잘못된 길에 들어서 고생도 했지만 운이 좋았는지

도와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어 그 때마다 무사히 고개를 넘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서른 여섯, 지금으로 치면 늦둥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 나이에 늦둥이 아들녀석을 얻고 자식키우는

재미가 뭔지, 아이가 늙은 엄마를 부끄러워 하지 않도록 더욱 최선을 다해 살자고 다짐을 했었다.

급하게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몫까지 더하여 최고의 환경에서 키우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물가까지 데리고는 갈 수 있어도 물을 먹는 것은 당사자의 마음인 것처럼 어느 날부터인지

자꾸 물가를 피해 산으로 가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공부를 멀리하고 밖으로 돌더니 결국 댄스를

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하기는 공부 잘한다고 인생이 다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머리에 뭔가 집어 넣어야 세상이치를

깨닫지 않겠는가. 숫자로 표시되는 성적은 그렇다고 쳐도 책이라도 읽으라고 그렇게 애원하였건만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문자로다\'하고는 절학(絶學)을 선언하고 빈 가방을 메고 학교에 출석만

하기에 이르렀다.

 

한 때는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이기도 했고 어려서 부터 영리하고 가슴도 따뜻한 아이였는데 뭐가

잘못된 것일까.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 창문에 서서 어느 날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기도 하였다.

술을 마시고 울기도 하고 아이를 붙잡고 대화도 시도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아이를 내 맘속에서 서서히 잠재울 무렵 찾아든 극심한 우울증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하지만 약물에 의존하여 남은 생을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작년 가을 즈음 출판사와 신문사가 기획한 섬 출신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남쪽의 아름다운 섬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어디론가 속이 뻥 뚫릴 것 같은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던 때여서 인지 온통 바다로 채워진 섬은

바람도 풍경도 그렇게 싱그러울 수가 없었다.

하룻밤만 묶고 가기에는 너무도 아쉬워 설 연휴에 또 다시 섬을 찾아들고 말았다.

그렇게 그동안 아둥바둥 적당히 때묻혀가며 살아온 시간들을 적당히 세탁하는 시간들을 가지면서

스스로 나에게 물었다.

\'내 인생은 몇 점짜리인가. 과연 성공한 인생이라 말할 수 있을까. 정말 소망했던 꿈들을 이룬것일까.\'

내가 정말 되고 싶었던 것은 연극배우나 작가였던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문화생활이 많이 보편화된 요즘도 이런 직업은 여전히 배고픈 경우가 많은데 30 여년 전이라면

말 할것도 없다. 나는 가난하고 고달픈 예술가가 되기보다는 풍요롭고 폐를 끼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직업에 대해 후회도 없었고 돈도 제법 벌 만큼 벌었다.

하지만 늘 가슴 한쪽에 웅크리고 내 눈치만 보고 있던 마지막 소망들!

 

 

 

그 때부터 나는 구석에 잠자고 있던 꿈들의 손을 잡아 끌어 올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고작 절반의 시간을 살았을 뿐이다. 여전히 내게 절반의 시간들이 남아있다.

늦지 않았다. 마음이 바빠지고 시간이 부족했지만 결국 난 내 맘을 빼앗았던 섬에 닻을 내리기로 하였다.

 

 

 

대한민국의 마지막 주막이 주모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는 뉴스를 보면서 막연히 생각했던 \'주모\'가

되기로 하였던 것이다.

내 손으로 술 빚고 두부를 만들어 인생의 고갯길을 넘어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술 한잔씩 따라주자.

사실은 아이들 다 키워놓고 이제 어깨위에 얹어진 짐을 벗는 순간이 오면 해보려고 했던 소박한 꿈이었다.

하지만 뭍에서 건져 올리는 삶보다 더 열악하고 생명을 담보하는 바닷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막걸리 한 사발

따라주는 진정한 주모가 되어 보기로 하였다.

 


 

 

불과 두어 달 만에 섬주막을 열고 주모가 되었다. 인덕이 있었는지 고마운 섬 사람들의 도움으로

주막을 열고 주모가 될 수 있었다. 물자 부족으로 내가 꿈꾸던 모양은 아니지만 뭐 그런 것이 대수이랴.

맘으로 품고 손으로 빚어 길손들을 대접하니 이렇게 행복할 수 없다.

멀리 있는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그렇게 나를 가슴 아프게 했던 아들녀석도 가끔 전화를

걸어 안하던 응석도 부리고 부쩍 맘이 커진 것 같아 그것도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이제 남은 마지막 소망은 \'불후의 명작\'은 아닐지라도 감동이 있는 작품하나 써보는 것이 남았다.

욕망만 주시고 재능을 주지 않으신 신이 때로는 원망스럽지만 어쩌겠는가.

 

 

 

인생의 절반쯤 왔을때 깨닫게 되는 것-운명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불과 몇 달 전 나는 이곳에 내가 살게

되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딱 절반쯤의 시기에 이르렀을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져

보자. 잘 살아왔는지...정말 소망하던 삶을 살고 있는지..그리고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면 다시 시작하기에

이 절반쯤의 시기만큼 좋은 기회가 없음을 깨닫기를 바란다.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웅크리고 있는 소망과 꿈을 외면하고 지나간다면 우리 삶이 마감되는 어느 순간

분명 후회의 마음이 들 것이라는 것을...나는 알고 있기에 지금 이 섬에 주모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인지...하루하루가 즐겁고 이렇게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시간들을 가질 수 있어서 나는 여기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