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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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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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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후 비로소 알게되는 것


BY 석광희 2012-09-09

2주전 우리집 2층서 갑자기 소란스런 소리가 나서 직감적으로 2층 시아버님께

변고가 생긴거라 느꼈다 순간 2층으로 뛰어 올라가니

역시 내생각데로 이미 그곳엔 할아버님의 반듯히 누워 계신 모습이 내눈에 들어왔고

아들내외의 하얗다 못해 푸른색으로 변해버린 넋이 나간 얼굴을 마주할수 있었다

 

상황을보니 방금전 운명하신듯..

아들보다 며느님의 얼굴과행동에 내가 당혹스러웠다

며느리가 내게 차마 울수조차없는 목소리로 30분전에 보리차를 드렸는데 다시 뵈러 들어가니 숨을 안쉬셨어요..

가족도 아닌 내게 필사적인 변명을하듯..

 

 상조회사에 연락을 한후 두어시간이 넘어서야 도착을했고 이미 시간은 밤12시를 한참 넘긴터라 이틀째가 된것이다

집에서 돌아가시니 여간 복잡한게 아니다..란 생각이들며 2층 가족들이 떠난 골목에 서서 잠시 기도하며 대문을 들어서는데

삶과죽음이 이렇듯 허망하며 간단해 보이기 조차해서 잠시 어이가없었다

 

다음날 골목의 집들이모여 함께 문상을 가보니 그새 아들 내외의얼굴이 반쪽이 되어있었다

늦은밤 운명하신데다 새벽에 도착해서 아침 6시가되어 겨우 빈소가 마련되어 다음날 발인을 못하고 4일장을 치뤄야된다고

 

공교롭게 그날부터 태풍주의보로 시간마다 속보가 나오기도

발인날  이번 태풍의 피해가 큰 선산까지 흔들리는 장례버스로 다녀오며  공포 그자체 였다고한다

 

올 여름이 오죽 큰 더위였는가?

그 더위속에  중한병 드신 노인께서 얼마나 힘겨우셨고 며느님은 얼마나 힘들다 못해 고통이였을까싶다

 

한해전에 사랑하는 형제나 다름없는 선배언니를 슬픔속에 떠나보냈다

나하나 믿고 부산서 서울까지와서  병원서 치료를 받고 다시 부산을 그렇게 몇차례 왔다갔다

우리집서 병원까지가 교통편이 마땅치않아 매일 보러가지도 못했다

 

부산서 언니가 급히 전활해서 보고프다 은미야..간병인이 너무 불편해..언니 알았어 지금 출발할께..

딸차로 부산 도착하니 2시간전에 언니는 이미 떠났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단건 참으로 못할짓이다

좀더 자주 보러갈껄..더많이 안아줄껄..더 많은 먹거리로 잠시라도 즐겁게 해 줄껄..

사실은 언니가 서울 병원에있을 땐 여느땐 살짝 꾀가 나기도..

 

2층 며느님도 예외는 아니였을것이다 

 

 삼오제 때문에 이틀간 집에서 21명의 객식구들을 치루고  돌려보낸후

죽이라도 먹이려고 올라가 보니 시부의방을 쳐다보며 울고 있었다

 

이토록 급히 떠나실줄 몰랐다 더 잘해드릴껄..너무더워 스스로 짜증났었다  대소변때마다 솔직히 힘들었다

수도없는 슬픈 제목들을 쏟아내는것이 아닌가?

 

나는 항상 2층 며느리를 대견하며 대단하다 생각한 사람이다

요즘 젊은 사람이  그리하기란 결코 쉽지가않다

 

2년정도를 중병의 시아버지를 그녀는 맏며느리 소임을 묵묵히 잘해줬고 내가 보기엔 흉내낼수 없는 완벽함이였다

 

그럼에도 그건 남들 생각이고 본인은 못해드린 것 만 꾸역꾸역 올라오는 모양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옆에 있을 땐 지나치던 작고 사소한 일까지 정작 떠나보낸 그순간부터 왜 그리도 수도없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태산처럼 밀려오는건지..

 

추석이 다가오니 오래전 떠나신 부모님의 생각이 수시로 나곤한다

 

20년이 되어가는 시간들인데도 어제 일 처럼 친정어머니께 못해드린 셀수없는 많은 일들이 생생 하기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