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내게 쌀을 선물했다.
방금 찧었다는 쌀로 밥을 하니 윤기가 자르르하다.
고맙다.
쌀 살 돈으로 수박을 사먹었다.
수박값이 만만치않다.
아껴먹어야겠다.
침대에 누워 천정을 보니 비가 새었던 부분의 얼룩이 보기가 흉하다.
천정을 보며 생각한다.
언제까지 이 곳에 머물러야 하는지 막막하다.
희망이란 놈을 버리지 않는 나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너 대단해.. 나를 향해 혼잣말을 해본다.
어느날 갑자기 희망이란 놈이 사라지고 절망의 늪을 헤매게 될지도 모른다.
당분간 미래에 대해서 문을 닫기로 한다.
오늘만 생각하면 그뿐이다.
차가 없어졌으니 마을버스 시간표에 신경을 쓰게된다.
마을버스는 점심시간에 쉰다.
웃긴다.
교통이 좀 좋은곳에 가서 살고 싶어진다.
\"차가 없어서 어쩌지요?\"
\"형편대로 살지요.\"
달관한 사람처럼 말한다.
나는 척하는 습관이 있나보다.
있는척은 하지 않지만 힘들지 않은척은 한다.
보살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 큰소리로 웃었다.
웃음은 과장이다.
어쩐지 그 말이 밥맛이라는 말로 들렸기때문이다.
속이 타도 내보이지 않는 습관은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
타다가 숯검점이 되었을때에야 보이고 싶어지는 버릇..
어릴적에 다친후에도 한시간이 지나서야 아야 하는 아이였다는 엄마의 말이 생각난다.
좀처럼 울지 않는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아픔을 내보이지 않으려고 했다.
자존심 때문이었겠지.
바보같은 자존심...
내숭이라는 의미다.
친구를 따라 양평 오두막집에 가서 일박을 했다.
배추밭과 가지와 오이에 물을 주는 역할을 해보았다.
햇빛이 따가웠지만 싱그러운 공기가 좋았다.
손톱이 까매지도록 오디를 줍느라고 허리를 굽혀 밭을 헤맸다.
밤에는 온갖 새소리를 들으면서 시골 풍경의 절정을 맛보며 친구와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주말마다 밭에 물을 주러 양평에 간다고 한다.
나도 시골에 짐을 푸는 날이 있을까..
일상으로 돌아왔다.
컴퓨터를 끄고 TV를 켜고.. TV를 끄고 오디오를 켜고.. 오디오를 끄고 컴퓨터를 켜고..
이런 반복이 하루에도 몇번 있다.
\'오늘 뭐해요?\"
전화를 받았다.
\"저녁에 시낭송회가 있어요.\"
\"갈곳 있어서 좋겠다.\"
외롭다는 의미로 들린다.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이 있다.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감당하기 가장 힘든 부분이지만 각자 해결해나갈수밖에 없다.
사람으로 외로움을 달랠수는 없기때문이다.
감히 누가 누구에게 힘이 되어줄수 있겠는가.
주제넘은 짓임을 안다.
분수에 넘치는 일은 하면 안되는것이다.
여름이다.
선풍기를 켜놓고 커피와 수박 몇쪽을 곁에 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나의 여름을
설계한다.
이것이 나의 오늘이다.
오늘을 사는 일에만 충실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