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가 펑펑 쏟아지나요?”
“노!”
“소변이 자주 마렵나요?”
“노!”
“부부관계가 불편합니까?”
“노!”
의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다.
“그럼 6개월마다 검진하면서 기다리겠습니까?”
나는 그럼 혹시 암으로 발전 될 가능성이 없는가 물었다.
이번에는 의사가 단호하게 \'노\'라고 했다.
1년 동안 8번의 진료에서 나온 병명과 의사들의 답변은 하나였다.
다만, 한국과 캐나다 의사들이 \'자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달랐다.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면 \'생각 할 필요도 없다\'며 당장
수술하기 위해 의사가 건네준 피검사와 심전도 안내지를 받아
도망치듯 나왔던 것이 한국병원에서의 일이고
‘생활에 불편함을 느껴져서 참을 수 없을 때
수술을 하는 방법, 현재 불편하면 복강경 수술을 하는 방법이 있다\'며
재촉하지 않던 것이 이 나라 병원에서 일이다.
자궁선종.
자궁근육층에 티눈처럼 생겨 뿌리모양으로 생기는 혹 같은 것이지만
생활에 큰 불편이 없다면 암으로 전이 되지 않는 일종의 근종이라 했다.
“금방 끝나. 눈 뜨고 뭐 하루 자고 나니까 끝났어…”
“아이 안 낳을 거면 자궁암 걱정할 일 없고 … 생리 안하니까 너무 편하고 좋아…”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물한 신체 가운데 필요하지 않는 장기가 있을까.
특히 자궁이란 여자들에게만 내린 특별 선물이다.
나는 비록 아이를 낳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손 등에 난 사마귀처럼 생각할 수는 없었다.
고가의 최고급 선물을 받아서, 사용설명서를 읽지 않고 내가 필요한 기능만 사용하다가
조금 흠집났다고 미련 없이 팽개치는 아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나는 늘 떳떳하지 못한 부담도 있다.
모든 여자들의 60%가 가지고 있다는 물 혹이
나를 괴롭힌 적도 없고 생활에 불편함을 주었거나 힘들게 한 적은 없었다.
다만 현대 첨단 기기와 의사들이 내린 병명이 그렇다니
의사는 내게 ‘행운’이라고 했지만 나는 좀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다.
\'자궁암 검진\'으로 이곳에 글을 올렸던 그날로부터 1년...
전문의 진료만 총 8번을 한 다음, 수술을 하기로 했다.
2011년 9월29일 새벽 6시30분…
말로만 듣던 ‘빈궁마마’가 된다는 생각에 허전한 마음으로
\'세인트 폴\' 수술대기실 침대에 누웠다.
덩치 큰 마취 전문의가 바늘을 꽂으면서
여자도 아닌 남자가, 간호사도 아닌 의사가 ‘미안, 미안’ 하며 마취를 할 때도 웃었다.
“수술하려면 마취전문의가 주사를 놓는 게 당연하지 미안하기는,,, ”
법인이든 기업이든 영리가 빠질 수 없는 한국의 병원과 달리
모든 의료비가 100% 무료인 이곳 병원은 국가에서 운영한다.
수술대기실에서 기다리는 2시간 동안,
집도할 2명의 산부인과 전문의와 마취 전문의, 통증 관리전문의,
처음 진료한 가정의와 레지던트, 간호사까지 모두 찾아와
4개의 구멍을 통해 복강경 수술을 할 거라며
오늘 수술에서 자기의 맡은 역할과 수술 과정을 일일이 설명을 해주었다.
\'의사에게 믿고 맡기라\'며 묵살해버리는 한국에서의 경험에 익숙해 있던 나는
처음 겪는 이런 과정이 신기하고 놀랍고 어안이 벙벙했다.
수술 전 대기실로 찾아와 환자와 악수를 하며 교감을 나눈 다음
수술 준비실로 들어가는 그들과 대화하는 동안
나는 잠시 후 수술할 사람들이란 걸 깜빡 잊고
‘저 의사는 성격이 좋아 보인다’느니 ‘영어 발음이 좋다느니\' 수다를 떨었다.
이 나라에서는 수술이 결정되면 그 환자를 처음 진료한 주치의부터 전문의까지
모두가 그 수술에 함께 참여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걱정 마. 구멍만 뚫어서 1시간30분이면 끝난대. 수술실 문 앞에서 기도하고 있을게’
수술실을 향하는 내 얼굴을 남편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수술실 풍경은 한국과 많이 달랐다.
마취전문의가 바늘을 꽂기 전 연신 내 이름을 부르며 ‘마취할 건데 미안해’하며
왼쪽 손등에 바늘을 꽂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이 내 오른 손을 꼭 잡고 쓰다듬고 있었다.
아마도 오늘 그의 역할은 환자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일 인 듯 하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어렴풋하게 남편의 파란색 점퍼가 보였다. 큰 통증도 없었다.
시계가 고장난 걸까. 1시간30분이면 끝이라던 수술이었는데
벽시계가 오후 3시40분을 가르키고 있다.
7시간이 지나 있었다.
\"자기야, 수술 어땠대?\"
남편이 내 눈을 피하며 잠시 머뭇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