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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9월29일. 살아 있었다.


BY *콜라* 2011-10-05




생리가 펑펑 쏟아지나요?

!

소변이 자주 마렵나요?

!

부부관계가 불편합니까?

!

 

의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다.

그럼 6개월마다 검진하면서 기다리겠습니까?

나는 그럼 혹시 암으로 발전 될 가능성이 없는가 물었다.

이번에는 의사가 단호하게 \'노\'라고 했다.

 

1년 동안 8번의 진료에서 나온 병명과 의사들의 답변은 하나였다.

 다만, 한국과 캐나다 의사들이 \'자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달랐다.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면 \'생각 할 필요도 없다\'며 당장  

수술하기 위해 의사가 건네준 피검사와 심전도 안내지를 받아 

도망치듯 나왔던 것이 한국병원에서의 일이고

 

생활에 불편함을 느껴져서 참을 수 없을 때

수술을 하는 방법, 현재 불편하면 복강경 수술을 하는 방법이 있다\'며

재촉하지 않던 것이 이 나라 병원에서 일이다.

 

자궁선종.

자궁근육층에 티눈처럼 생겨 뿌리모양으로 생기는 혹 같은 것이지만

생활에 큰 불편이 없다면 암으로 전이 되지 않는 일종의 근종이라 했다.  

 

 

금방 끝나. 눈 뜨고 뭐 하루 자고 나니까 끝났어…”

아이 안 낳을 거면 자궁암 걱정할 일 없고 생리 안하니까 너무 편하고 좋아…”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물한 신체 가운데 필요하지 않는 장기가 있을까.

특히 자궁이란 여자들에게만 내린 특별 선물이다.

나는 비록 아이를 낳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손 등에 난 사마귀처럼 생각할 수는 없었다. 

 

고가의 최고급 선물을 받아서, 사용설명서를 읽지 않고 내가 필요한 기능만 사용하다가

조금 흠집났다고 미련 없이 팽개치는 아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나는 늘 떳떳하지 못한 부담도 있다. 

 

모든 여자들의 60%가 가지고 있다는 물 혹이

나를 괴롭힌 적도 없고 생활에 불편함을 주었거나 힘들게 한 적은 없었다.

다만 현대 첨단 기기와 의사들이 내린 병명이 그렇다니    

의사는 내게 행운이라고 했지만 나는 좀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다.

 

 

\'자궁암 검진\'으로 이곳에 글을 올렸던 그날로부터 1년...

전문의 진료만 총 8번을 한 다음, 수술을 하기로 했다.

 

2011년 929일 새벽 6시30분

말로만 듣던 빈궁마마가 된다는 생각에 허전한 마음으로

\'세인트 폴\' 수술대기실 침대에 누웠다.

 

덩치 큰 마취 전문의가 바늘을 꽂으면서

여자도 아닌 남자가, 간호사도 아닌 의사가 ‘미안, 미안 하며 마취를 할 때도 웃었다.

수술하려면 마취전문의가 주사를 놓는 게 당연하지 미안하기는,,, 

 

법인이든 기업이든 영리가 빠질 수 없는 한국의 병원과 달리

모든 의료비가 100% 무료인 이곳 병원은 국가에서 운영한다. 

 

수술대기실에서 기다리는 2시간 동안,

 집도할 2명의 산부인과 전문의와 마취 전문의, 통증 관리전문의,

처음 진료한 가정의와 레지던트, 간호사까지 모두 찾아와 

4개의 구멍을 통해 복강경 수술을 할 거라며

 오늘 수술에서 자기의 맡은 역할과 수술 과정을 일일이 설명을 해주었다.

 

\'의사에게 믿고 맡기라\'며 묵살해버리는 한국에서의 경험에 익숙해 있던 나는

처음 겪는 이런 과정이 신기하고 놀랍고 어안이 벙벙했다.

 

수술 전 대기실로 찾아와 환자와 악수를 하며 교감을 나눈 다음

수술 준비실로 들어가는 그들과 대화하는 동안

나는 잠시 후 수술할 사람들이란 걸 깜빡 잊고

저 의사는 성격이 좋아 보인다느니 영어 발음이 좋다느니\' 수다를 떨었다. 

 

이 나라에서는 수술이 결정되면 그 환자를 처음 진료한 주치의부터 전문의까지 

모두가 그 수술에 함께 참여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걱정 마. 구멍만 뚫어서 1시간30분이면 끝난대. 수술실 문 앞에서 기도하고 있을게

수술실을 향하는 내 얼굴을 남편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수술실 풍경은 한국과 많이 달랐다.

마취전문의가 바늘을 꽂기 전 연신 내 이름을 부르며 마취할 건데 미안해’하며

왼쪽 손등에 바늘을 꽂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이 내 오른 손을 꼭 잡고 쓰다듬고 있었다.

아마도 오늘 그의 역할은 환자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일 인 듯 하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어렴풋하게 남편의 파란색 점퍼가 보였다. 큰 통증도 없었다.  

시계가 고장난 걸까. 1시간30분이면 끝이라던 수술이었는데

벽시계가 오후 3시40분을 가르키고 있다.

 

 

7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살아 있다.

 

 

\"자기야, 수술 어땠대?\"

남편이 내 눈을 피하며 잠시 머뭇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