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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이가 가던 날


BY 그대향기 2010-10-23

 

초롱이는 할머니들이 키우던 개 이름이다.

명견은 아니지만 귀엽고 명랑한 개 초롱이는

할머니들의 소일거리도 되고 특별히 이색적인 변화가 없는

이 큰 집에서 살아 움직이는 장난감 같은 존재였다.

초롱이가 사료를 많이 먹어도 화제가 되고

사룔 조금만 먹어도 화제가 되는 그런 할머니들의 단조로운 생활에서

초롱이는 귀염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초롱이는 사료를 토....옹 먹질 못했다.

거부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속에서 사료를 받아들이지 않았던거다.

조기를 노릇노릇하게 구워 줘도 소세지를 사다줘도 도통 입을 대지 않았다.

평소에는 사료를 주면 얼굴을 한번 올려다 보곤 고맙게도 잘 먹었었는데

아침에 준 사료도 저녁까지 그냥있었고

저녁에는 계란 프라이를 해 줘도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볼 뿐....

그리고 오줌까지도 붉은 기운이 돌았다.

 

평소에는 앞발을 들고 뒷발로만 서서 안아달라는 시늉을 하면서

재롱을 피우던 초롱이.

작은 키,  흰바탕에 갈색 얼룩이 있었고 털이 짧고 귀는 쫑긋하고

애교가 많아서 늘 꼬리를 잘 흔들었고  귀염성이 많았던 개였다.

나이는 17살 정도?

올 봄에 돌아가신 할머니 집에서 키우던 개를 데려와 5년 정도를 우리 할머니들이 키우셨다.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짖기도 잘 했고

집지키는 개로서는 아주 훌륭한 개였었다.

그런 초롱이가 어느 날부턴가 사료를 거부하고 개집 안에서만 지내려했다.

일년 중에서 가장 큰 행사가 있어서 바쁜 걸음을 치던 어느 날

개집 안에서 길게 누워있던 초롱이를 안아 본 나는

뛸듯이 기뻐서 냅다 소리를 질렀다.

\"어머나~~

 초롱아~~

 너 임신했었구나~~

 강아지 아빠가 누구니?

 기특도해라...

 너 늦둥이 낳을거였구나...ㅎㅎ

 산달이 다 된 모양이다???

 며칠 안 남았어??

 배가 남산만 하네~~`ㅎㅎㅎ.\"

 

초롱이의 배는 불룩~했고 아래로 축..쳐지기까지했다.

가만..몇마리나 들어있나 좀 만져볼까?

초롱이는 배를 만지는 내게 온 몸을 힘들게 의지하면서 눈만 껌뻑껌뻑.

따뜻한 초롱이의 배는 터질듯이 불러있었는데 가만있자..

그런데 젖꼭진 왜 말라있지?

사람이나 개나 임신을 하고 산달이 가까우면 젖을 짜보면 하얗게 젖이 나오던데

초롱이는 젖꼭지가 말라있었고 배만 터질듯이 불러있질 않나?

전에 특수견을 키우면서 코카스페니얼이 산기가 있으면 아예 개 집 안에 들어 앉아서

밤을 꼴딱 세우면서 강아지를 받았었고 혹시나 숨을 안 쉬는 강아지가 있으면 내 입으로

강아지 인공호흡까지 시키던 난데 분명히 초롱이는 뭔가 이상했다.

 

지금은 부산의 동물병원에서 알바 중인 큰딸한테 급하게 전화를 넣었다.

\"얘....집에 초롱이가 좀 이상하구나.

 난 임신 줄 알고 젖을 짜보니까 젖꼭지도 말랐고 배는 빵~빵~하다.

 사료를 안 먹은지는 며칠됐고....

 원장님한테 여쭤봐라....\"

\"근데 엄마 초롱이가 몇살이지요?

 예에?

 17살이면 임신 못해요.

그리고 젖꽂지가 말라있고 배만 빵빵하면 잠깐만요....

저 원장님!

우리집에서 키우는 개가요...&**%$#@........\"

 

큰딸은 전화기를 든 채로 동물병원 원장님한테 문의를 하고 난 대답하고

큰딸이 이것저것 묻고 원장님한테 다시 문진을 하고....

그런데................

큰딸이 전해 준 충격적인 병명은 초롱이는 지금 심장사상충이라는 중병에 걸렸단다.

나이도 너무 많아서 수술을 해도 회복이 어렵고

오줌이 붉다면 내장이 다 상해서 도저히 회생이 어렵겠단다.

그래서 사료도 못 먹고 배가 부풀어 오른거라고....

복수가 차고 피오줌이 나올 정도면 이미 때는 너무 늦은거란다.

어쩌나 초롱이....................

난 임신한 줄로 알고  기뻤다고 했더니 큰딸이 그 나이가 된 개가 임신은 무슨 임신이냐며 어이없어 했다.

사람으로치면 파파 할머닌데 어떻게 임신이 가능하냐며.

그리고 초롱이는 곧 죽을거라고 했다.

그냥 조용히 지켜보는 수 밖에 별 약도 없단다.

수술을 하면 젊은 개는 이기겠지만 초롱이는 나이가 너무 많고 수술비 또한 너무 비싸단다.

 

그 말을 듣고 초롱이를 보러 나갔더니 고운 눈이었던 초롱이가 힘없이 멀거니..날 바라본다.

어쩌니 초롱아.....

그래도 행사가 코 앞이라 그날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렇게 보냈고

그 뒷날은 새벽시장엘 가다가 난리가 한번 났었고

시장 봐 온 800명분 부식들을 냉장 보관을 할 요량으로 트럭 옆을 스치다가 가만....

초롱이가 너무 조용하다..............

이상한 기운에 초롱이 집을 들여다보니 초롱이는 미동도 없다.

길~~~~~~~~~게 누운채 초롱이는 그렇게 갔다.

마지막으로 무슨 병으로 가는지만 알고 초롱이는 그렇게 죽었다.

그 작고 귀엽던 몸뚱이는 죽고나니 왜 그렇게도 길게 느껴지던지....

두 눈은 꼬옥 감았고 작고 가지런한 이빨은 조금 보였다.

늘 초롱이의 사료를 주고  배설물을 치우시던 할머니는 울먹이셨고

다른 할머니들은 보는 것 조차 꺼리셨다.

 

남편더러 구덩이를 파 달라고 했더니 여기저기 손 볼 곳이 많다면서 그냥 휭~~~

에라이~~~

내가 한다 내가 해.

삽을 들고 뒷뜰 감나무 밑으로 가서 깊이..깊이...아주 깊이 큰 구덩이를 팠다.

전에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죽어서 너무 얕게 파 뭍었다가 비 온 뒷날 으아악~~~~

덮어뒀던 흙이 다 흘러내려서 죽은 고양이가  튀어 나오는 바람에 기겁을 한 추억이 있어서

이번에는 아주아주 깊게 파고 초롱이를 안아다 뭍어줬다.

살아있을 때는 졸랑졸랑 가볍게 따라 다디던 초롱이가 왜케 무겁던지...

일회용 장갑을 끼고 초롱이를 뭍고 흙봉분을 높다랗게 해 준 다음 돌을 주어서

돌무덤을 만들어 줬다.

혹시나 들짐승이 해칠까 봐....

 

무식하기는..

죽을 병에 걸린 초롱이를 임신인 줄 알고 난리를 치다니.

초롱아.

미안하다.

너무 바빠 널 외롭게 만들었구나.

많이 힘들었지?

그렇게 아픈 널 너무 늦게 알아차려 정말 미안하구나.

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쉬렴.

너랑 함께한 5년 동안 참 즐거웠단다.

초롱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