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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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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어머니


BY 동요 2009-09-12

대부분의 결혼한 여자들처럼 내게도 두 어머니가 계신다.

시어머니,그리고 친정엄마.

 

제주도라며 강의부탁 전화를 받을 때는 머리속에 엄마가 있었다.

근데 전화를 끊고나니 시어머니가 생각났다.

 

남편에게 제주강의 엄마랑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어머니도 함께 모시고 갈까 라고 물었다.

예의 차원의 말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건강만 되신다면 모시고 가고 싶었는데 어머니에게 제주도 여행은

결코 쉽지 않은 오지(?)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예상대로 남편은 말도 안된다고 펄쩍뛴다.

동굴과 산과 계단천지인데 어머니가 어떻게 그런 함난한(?)곳을 또 가시냐.

평지도 걷는 거 힘들어 하시는데 하며 생각이 있는 여자냐고 말한다.

 

그렇더라도 어머니가 제주에 가보시지도 않았다면

제주공항에 내려 발에 흙만 묻히고 돌아오시게 하는 한이 있더라도

모시고 갔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2002년 봄 우리가족 7명은 가족단체 여행을 큰 맘 먹고 제주도로 왔었고

그 경험이 고맙게도 내 엄마만 살짝 동반하는 걸 허락해주었다.

 

그래도 맏며느리로서의 양심(?)은 살아있는지

마음이 개운치 않아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제주강의를 가게 되었는데 엄마가 아직 안가보신 곳이라 모시고 다녀오려 한다고

부모님도 같이 가시겠냐고 여쭈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전에 갔다오셨으니 염려말고 엄마 모시고 잘 다녀오라고 기쁘게 말씀해 주셨고

아버님도 모처럼 효도하는 기회가져서 참 잘 됐다고

아무 걱정말고 엄마 맛있는 거 시드리고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하셨다.

 

나에게 가까운 사람에게 일어나는 큰 일은

그 사람에게서 직접 들어 미리 알고 있을 때 기쁜 법이다.

추석때 올라오셔서 엄마랑 찍은 제주도 사진을 혹시라도 보시고

\"아가, 언제 제주도 갔었나\" 라고 질문하시게 만들면

부모님이 얼마나 서운하실까...그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말대로 계단이 많은 제주도는 노인들의 여행지는 아닌 것 같다.

건강관리 나름대로 하시는 엄마도 내 생각만큼 많은 곳을 감당하실 체력은 아니셨다.

성산일충봉도 꼭대기까지는 못 갔고 정방폭포도 중턱까지 모시고 내려가 사진 찍고 올라왔다.

그래도 구석구석 눈에라도 넣어드리려고 노력은 했고

거금을 들여 산호와 물고기 춤추는 바닷속 구경도 시켜드렸다.

 

렌트를 할까 생각도 했었는데 전용기사님을 모신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관광지로 이동하는 택시 안에서 모녀는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들의 지난 이야기, 동생들과 올케들의 효성스런 이야기

조카들 자랑, 내가 그동안 몰랐던 친정 친척들 동향등 엄마와 못다한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은

제주관광보다 더 행복한 시간이었다.

 

어머니의 허락을 얻고 엄마와 여행을 하는데도 군데군데 어머니 생각이 났다.

냉장고 같이 시원한 만장굴 안을 걷는데  엄마가 말씀하신다.

\"아이고..시원하다. 이런데 멸치젓갈을 담아 삭히면 참 맛있겠다...\"

서늘한데서 서서히 젓갈을 삭히면 깊은 맛이 있다고 엄마가 말씀하시는데 웃음이 나왔다.

 

오래 전 가족들과 제주여행을 왔을 때 어머니가 맑고 깨끗한 바다를 보고 말씀하셨었다.

\"저기 배추 절이면 참 잘 절여지겠다..\"

 

현모양처에 얄뜰함에

가족들을 위한 먹거리 생각이 어느곳에 계시든 어느 곳을 보시든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당신들의 삶에서 가족이 전부인 점이

내 두 어머니가 가진 가장 큰 공통점이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도 어머니들에겐 가족들을 위한 살림도구일 뿐이다.

 

시어머니와 내 엄마는 똑같은 모양의 옷을 여러 개 갖고 계신다.

친정엄마의 옷을 사려고 하면 시어머니가 마음에 걸려 한 벌을 더사고

시어머니의 옷을 사려하면 엄마가 마음에 걸려 사고

그래서 두 분은 모양도 똑같고 크기도 똑같은 색깔만 가끔 다른 여러 벌의 옷을 갖고 계신다.

 

그런데..음식도 그렇다.

어제 낮에 엄마랑 갈치조림을 먹는데 어머니 생각이 먹는 내내 떠올랐다.

제주의 은빛갈치는 너무도 유명하다고 해서 그 음식을 먹는데 정말 입에서 살살 녹는 맛이었다.

생선 좋아하시는 어머니가 이 갈치를 드시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면 추석을 지내기 위해 부모님이 오실 건데

그 때 이 환상적인 제주갈치의 맛을 선보이기 위해

오늘 돌아가는 길에 제주갈치를 사서 포장해 들고 가려고 한다.

 

행복한 추억 한 아름 안고 엄마와의 행복한 여행 마치고

오전 비행기로 올라간다.

 

양 손에 두 어머니의 사랑을 들고.

한 손엔 사랑하는 엄마의 손을 잡고

또 한손엔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한 갈치봉지를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