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아침식사를 하는데 TV에서 봉평의 메밀꽃 축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높아진 하늘과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때문인지
요며칠 어디론가 가고싶은 마음이 불쑥 말을 뱉았다.
\"오늘 오후 우리 저~기 봉평으로 주말 나들이 갈까? 소금처럼 피어있다는데, 어때?\"
히얀하게 별 반응이 없다.
남편은 길 막히고 멀다 그러고
애들도 지 할 일들이 있어선지 심드렁하다.
우리집에서 제일 귀 얇은 사람이 나다.
길가에 사람들 모여 있으면 뭐하나~꼭 가서 봐야하고
어디서 뭐 좋은 거 한다 그러면 나도 가보고 싶고..
호기심이라는 게 나이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나를 보면 안다.
같이 갈 동반자를 구하려는 애절한 마음으로 그 곳을 띄우기 시작했다.
\"메밀꽃 필무렵 알지? 그 소설의 배경이 된 곳이다~\"
큰 딸이 갑자기 날 소설속으로 데리고 간다.
\"엄마. 그 소설 참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끝났어요 그죠? 동이였나 주인공이 그렇죠?\"
그 소설을 읽으며 마음 짠했던 기억이 있다.
\"응. 그 이후 동이와 허생원은 서로 부자간임을 알아 서로 격렬히 안고 울며
동이엄마를 만나서 셋이 잘 살거라는 나름의 상상을 하고 나는 책을 덮었었어.
엄만 결과가 행복한 게 좋아서 끝이 완전히 그려지지 않은 소설을 읽을 땐
나머지 부분을 머리로 내맘에 들게 막 그려놓곤 행복해 한단다 하하\"
내 말에 이어 딸은 그 소설에 흐르는 문학적 의미들을 얘기했고
나 또한 가족이라는 소중한 의미를 생각하게 했던 느낌이 떠올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한참 둘이 이야기를 나누자 무슨 소리인 줄 몰라 엄마와 언니의 이야기를 멀뚱멀뚱 듣고 있던 귀공이에게
갑자기 큰 딸이 아이같은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귀공아~~ 너 장문 한글 타자 연습할 때 메밀꽃 필무렵 그거 친 적 있지?\"
그러자 귀공이는 환한 얼굴로 변하며
\"응~~맞아 맞아 언니~~ 나도 그 이름 들어봤어~~~\"
드디어 자기도 이야기에 끼어든 듯한 행복감에 귀공이는 앞으로 바싹 다가 앉는다.
본래 우리가 무슨 말하면 아는 척 잘 하는데 왠일인지 잠잠히 있던 남편이 식사를 마치고 쓰윽 일어난다.
이럴 땐 꼭 장난끼가 발동한다.
나도 참 현모양처랑은 거리가 먼 여자다.
\"당신 메밀꽃 필 무렵 읽어봤어요?\"
신문 말고는 뭘 읽는 걸 본 적이 없는 남편이 말했다.
\"그럼~ 읽어봤지~ 그 주인공 끝에 죽쟎아~\"
우리는 깔깔 댓고 남편은 그 말해놓고 찔려서 도망을 갔다.
소나기나 접시꽃 당신 쯤 되는 소설인 줄 알았나보다.
하지만 참 대단한 정답이다. 소설속 주인공이든 살아있는 사람이든 인간은 누구나 죽으니까.
가족들 마음 더 유혹해보려다 결국
메밀꽃 축제참가 포기는 내가 내렸다.
신종플루 돌아다닐 지 모르니 외부활동 자제가 낫겠다고 마음이 시켰다.
귀공이가 허생원의 물레방앗간 사랑을 이해할 나이쯤 되어 이 소설을 읽을 때
어느 주말 아침 가족들과 함께 아침식탁에서 나누었던 그 소설이라는 것으로
좀 더 가깝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동이랑 허생원은 소설속에서 죽지않았다고 아빠에게 따졌으면 좋겠다.
장문타자에서 이름을 접해본 것 만으로도 아이는 연결고리를 찾아내 행복한 얼굴로 끼어들 수 있었듯이
무심코 주고받는 가족들의 이야기도
훗날 아이가 뭔가를 학습할 때 낯설지 않게 만들어 주는 배경지식이 되어준다는 스키마이론을
속으로 떠올려 본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