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얼었던 대지도 몇번 찔끔거리는 봄비로 녹아내린다. 땅 속 깊숙한 곳에서 생명을 지킨 어린 순들이 두터운 대지를 뚫고 나온다. 잎이 나중인 꽃들은 벌써 꽃망울을 터뜨리고 마른 나뭇가지에도 물이 올라 통통하고 촉촉하다. 누가 이쁘게 봐 주지 않아도 귀하게 여겨주지 않아도 줄기차게 올라오는 잡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이 이럴 땐 부럽다.
어제 남편의 사촌형수 장례식. 남편의 생모가 돌아가시고 그 형수가 엄마처럼 챙겨주셨고 어린 육남매들을 새어머니가 들어오시기 전까지 많이 보살펴주셨던 분이셨기에 남편의 다른 형제들은 병원 빈소로 문상만 갔다오고 말았는데 유별나게 은혜 입은 걸 잊지 못하던 남편은 그저께 병원으로 문상도 갔었는데 장례식 온 과정을 다 함께했다. 그 날 병원 빈소를 근무를 마치고 저녁에 갔을 때 한창 퇴근시간이라 얼마나 바쁘던지... 상주들하고의 짧은 인사를 나누고 영정사진 속의 동서 얼굴을 흐리게 쳐다보며 \"형님..저 왔어요. 고통없는 곳에서 편히 쉬세요...\" 긴 말도 필요없는 무언의 대화. 상주들의 지친 모습을 잠시 위로해 드리고 상실감에 허탈해 계실 아주버님의 두 손을 그냥 꼬..옥 ..잡아드렸다. 무슨 말로 위로해 드려야 할지 깊이도 짐작 못할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런 다음 문상객들로 붐비는 식당에서 난 아예 웃옷을 벗어두고 문상객들 저녁상을 봐 주느라 땀이 날 지경이었지만 당연한 도리라 여기고 열심히 서너시간 봉사.
어제는 아침 일찍 남편 혼자 장례식장에 가서 모든 절차를 마치고 화장터까지 동행. 그 숨막히는 순간들을 유족들의 오열 속에서 같이했고 육신의 옷을 다 벗어버린 한 줌 재로 변한 형수. 화장한 뼛가루를 작은 유골함에 담아서 납골당에 가는 길에서는 선두차를 했었다. 남편 차에 선두차의 장식 띠를 두르고 극한 슬픔에 젖은 상주들을 태우고.
또 납골당이 창녕에 새로 생긴 납골당으로 정해졌기에 기꺼이 선두차를 했단다. 작고 아담한 푸른빛의 유골함 하나. 아직 형수의 마지막 온기가 체 가시지 않은 유골함 하나가 형수가 이 세상에서 남긴 마지막 흔적. 정많고 부지런하셨던 사촌형수의 모든 것. 그 형수를 차에 태워서 납골당으로 오는 길이 그렇게도 허전하고 맘이 아리더란다. 생모가 돌아가셨을 때는 뭐가 뭔지도 몰랐었는데.... 돌아가시기 전 한달 보름 전 쯤에 우리 부부가 형수 집으로 찾아갔을 때 \"데럼요(도련님)~~바쁠낀데 말라꼬 왔는교? 이런 꼴 이상하지요? 동서야..고생많제? 없는 집에 시집와가 아아~들 잘 키워줘서 고맙데이~~ 우짜든동 건강해레이~동서가 건강해야한데이~~\"
그 날의 그 만남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우리들의 만남이었다. 딸들 공부를 한껏 시키고 싶으셔서 두 딸을 위한 투자에 혼신의 힘을 다하셨던 동서. 비닐하우스 일이며 파출부..청소 일까지... 안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뼈가 으스러 질 정도로 없는 살림에 두 딸과 아들 공부에 모든 걸 희생하셨던 동서. 남들은 딸은 고등학교 공부만 시켜서 시집만 잘 보내면 된다고 무리한다고 핀잔을 줘도 좋은 대학 딸들이 가고 싶어하는 대학 보내고 말겠다던 동서. 분명 그 두딸은 미스 밀양에도 나가서 상도 타고 아랑인가? 그런 미인도 하는 정말 이쁘고 참한 애들이다. 직장도 좋은 직장을 가졌고 엄마의 희생을 먹고 삼남매는 훌륭히 자라줬다.
그러면 뭐하나..... 올 해 65 세. 한창 시집 장가간 아들 딸들의 호강을 받을 시기에 아주 가 버리신 걸... 심장 수술한 남편을 두고 가시는 길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혼자서 밥도 못 챙기시는 남편인데... 혼자서 낯선 길을 잘 찾지도 못하는 한쪽 시력이 가버린 남편인데... 그런 남편을 두고 가셨으니... 얼마나 안떨어지는 걸음이었을까? 건강한 남편을 두고 가기도 그럴건데 아픈 남편을 두고... 인연의 강을 .. 깊고 넓고 끈끈하기만 한 그 강을 어찌 넘어가셨을까? 다 맡기고... 남은 자들에게 그 모든 짐을 다 맡기고 편안히 가셨을까... 교회에 나가지 않았던 동서는 우릴 부러워했었다. \"동서는 덜 무서울끼다...\"
납골당 작은 아파트. 죽은 자들의 최소한의 아파트. 특혜도 없이 유골함이 들어오는 순서데로 잘 정리된 납골당. 살아있을 때는 권력의 힘으로 부의 힘으로 자리가 정해졌을런지는 몰라도 이 곳에서는 들어온 순서데로 정해지더란다. 다행히 형수의 아파트는 딱 눈높이의 아주 로얄층. 한 사람의 생애는 그렇게 해서 끝이 났다. 번호 하나 받아들고....
바로 옆 다른 사람들의 납골당에는 벌써 여러 사람들이 다녀 간 흔적들. 메모지에 남긴 말들이 눈물겹더란다. \"아빠~~ 다녀갑니다.\" \"당신이 살아계시다는 생각으로 살아갈께요\" \"사랑해요 지금도..\" \"지금도 제 곁에 있는 것 같아요.\" \"하늘나라에서도 우릴 지켜 주실거지요? 아빠~\" .................
저녁에 돌아 온 남편이 잠을 청하면서 그랬다. \"난 말이야...내 장기를 당신에게 줬을 때 당신이 살아난다면 난 내 생명을 당신 위해 줄 수 있어 .정말이야...\" 농담이 아니란 걸 안다. 늘 이 남자는 이러면서 살았으니까... 오늘 형수의 장례식에 다녀오더니 더 그러한가보다. 삶과 죽음의 문제가 어디 우리들 손으로 될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 눈물겹도록 감격하려는 순간 남편이 \"당신은????\" 난 잔뜩 목소리 깔고 그랬지. \"나도..그럴 수 있어. 내가 죽고 당신이 산다면 그럴거야. 그럴 수 있어.\" 난 진심으로 대답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이 하는 한마디~~!! \"틀렸어..당신은 못 그럴거야. 당신은 더 살아서 애들 돌봐 줘야 하고 애들 걱정되서라도 못 거럴거야. 내가 원하지도 않고.... 나 대신 살아서 내가 못 산거 다 살다 와야 해. 왜냐하면 당신은 나 때문에 고생을 너무 많이 했거든.... 당신은 나 따라오지마. 오래오래 살다가 와~~\" 그럼 왜 물었냐고~~ㅎㅎㅎㅎ 그냥 내 맘 떠 보려고? 잔인하기는....
그러면서 남편은 날 가만히...그러나 힘주어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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