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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용돈을 주지 않았다며 서운함을 토로한 A씨의 사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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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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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있는 여자.


BY 오월 2009-01-28

참 대가족이긴 대가족인 모양이다.

설을 쇠기위해 올라온 딸아이에게 부모님 용돈과 조카들 새뱃돈을

적어주며 봉투에 일일이 넣으라 했더니 백만원를 훌쩍넘어 이백만원에

달한다. 이 불황에 그런 생각도 잠시 또 내 푼수끼적 생각들이 어차피 쓰는돈

즐겁게 어차피 하는 일 즐겁게 어차피 가는 길 즐겁게 자꾸만 날 들

쑤신다  너무나 많은눈이 내리니 조심성 많은 남편은 망서리고 아직도 어린

마음을 가지고 사는 나는 행여 이 즐거운 나들이가 취소될까 안절부절이지만

내리는 눈의 양이 너무 많아 감히 불행한 사태로 이어질까 길 나서자는 말이

나오질않아 준비를 끝낸 상태로 남편 처분만 바라다 짐들고 내려가자는 남편의

명령이 떨어지자 아들과 딸 난 와다닥 신바람이 나서 내려갔다.

 

땅에 닿아 녹아 내릴 시간도 없이 쉼없이 퍼붓는 눈

최대한 입을 꼭 다물고 남편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위해 침묵하는 우리 셋

단양을 겨우 지나고 동로재 위에 올라서니 앞으로 갈수도 뒤로 갈수도 그야말로

사면초가 제설차가 지나간 자리로 다시 수북히 쌓이는 눈  남편이 재 꼭대기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 살피고선 다시차를 타 안전벨트를 앞뒤좌석 모두 묶으라 한다.

어떤 남편들은 가족들은 모두 내려서 걷게하고 혼자 차를 몰고 언덕을 내려간다는데

남편은 죽어도 살아도 함께 하기로 마음을 굳혔나보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도착한 시댁 커다란 2층 양옥집에 어쩌면 늙은 호박처럼 어쩌면

마른 장작처럼 그렇게 어머니 혼자 계시다. 안타까운 마음도 잠시 난 그 어머니를

혼자두고 또 큰형님네로 간다 회집과 양식장을 함께하는 형님네는 시골이라 모처럼

모인 객지로 떠난 벗들이 모여 모임을 여는 장소로 꼽는 곳이기에 언제나 명절이면

정신없이 바쁘다 명절 제사는 둘째고 장사를 하느라 편히 앉아 쉬면서 담소나눌 시간도

없다 옷은 몽땅 젖어 물이 줄줄 흘러도 내가 도움이 된다면 내 이한몸 기꺼이 하고

작정하고 하는 일들이 즐겁기만 하다 오만상 인상쟁이 아주버님도 아들만 둘에 시부모님

모시며 일에 찌든 형님도 심술보 얼굴에 분명 하나쯤 붙여두신 어머님도 늘 나에게 인자하셨던

아버님도 둘째 푼수며느리가 떴다 하면 자갈자갈 웃음꽃이다

 

그렇게 2박3일을 보내고 달랑 아들만 3형제인 시댁에 큰형님과 사이가 좋지않아 발길을

끊은 막내내가 얼마나 외로울까 싶어 들여다 보니 좋아라 고마워라 하며 고기 못먹는

시아주버님을 위해 김치 만두국을 끓여 준다. 안아주고 다독여 주고 돌아서는 마음

안쓰러운 마음에 발길이 무겁다.

 

그렇게 2박3일 장사하느라 어머님과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서 친정을 향해 구미로 갔다.

엄마와 제주도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딸아이가 기막힌 멘트를 넣어 제작한 앨범을 선물로

드렸더니 그 옛날 내 처녀적 모습들이 들어있는 깊은 서랍 속 사진들을 자꾸만 뜯어 내

놓으시며 보라하신다. 남편을 만나 너무나 마른 모습에 가슴아파하며 살았던 남편 이제 조금

살이 쪘었는데 경재를 들먹이며 옷사입을 돈이 없다며 50키로를 넘지않는 몸무게를 유지하는

아내 모습만 보면서 23년을 살았는데 살이쪄서 눈이 감겨진 모습 촌스럽기 그지없는 아내의

뚱뚱한 과거를 모두 봐버린 남편 비명소리와 웃음소리가 캄캄한 밤하늘로 울려대고

죽어도 폼생폼사 아들이 벌어진 입을 다물질 못하니 재미붙인 엄마는 더 웃기는 사진을 자꾸만

뜯어내고 살이쪄 맘고생 많이한 딸아이 의미있는 웃음을 실실 흘리며 날 째린다.

 

그렇게 내 과거는 속속 파헤쳐지며 짧은 밤은 새고 날밝아 떠나오는 차 트렁크에 다 싣고 오지도

못할 많은 정들이 차곡차곡 쟁여진다. 돌아오는 길 아들이 그런다.

나도 엄마,아빠처럼 살고 싶어요 집에서는 허리띠를 졸라메고 남의 옷 얻어입고 살면서도

늘 웃으며 살고 돌아다니면서 형제들에게 쓰는 돈은 어쩌면 그렇게 아까운줄 모르며 쓰느냐고

남편이나 나나 때수건 꿰매가며 살아도 행복할 뿐이고 허리띠 졸라메는 데는 이골이 나있다.

 

돌아와 감사와 정담아 고마움에 인사를 두루두루 드리니 친정엄마 말씀이 너희들 하는 짓이

노적벼눌에 불질러 놓고 튀밥 주어 먹는 꼴이구나 하신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받아오는 것보다 주고오는 행복이 이리도 큰것을.....

눈곱만큼 내세울거 없어 내가 말이야 과거에는 그런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사람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을 미리 터득하여 참 열심히도 살았더니 초라한 과거 앞에서도 나 웃을 수 있다.

 돌아 오는 길 서로 주고 받는 가족들의 눈빛으로 사랑이 넘친다. 내 과거를 다 알아버린 남편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우린 희망이 있다고 세월이 흐를 수록 점점 좋아진 우리들의 발자취를 보며 행복했다고...

내세울 과거가 없는 우리들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행복하다고

내 과거가 내 추억이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쓰고 고요히 숨쉬고 있는 곳

목숨걸고 감행한 그 길이 헛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 언제 눈이 내렸냐는 듯 잿빛 겨울산이 포근한 햇살에 살근살근 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