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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말 한마디 때문에....


BY 그대향기 2008-10-25

가을바람 치고는 좀 세차게 부는 휴일이다.

가로수로 심겨진 은행나무에서는 잘 익은 노란 은행알들이 무슨 우박처럼

후두둑..후두둑...도로 위에 떨어지고 길 가던 행인들은 무슨 횡재를 만난 듯

준비된 차림들이 아닌데도 쭈그리고 앉아서들 탱탱볼처럼 이리저리 마구

굴러가는 은행알들을 따라 가면서 줏어 모으는 모습들이 꼭 방앗간 마당에

알곡들을 쪼아 먹는 참새떼들 같아 웃음이 나오는 장면들이다.

은행알들만 떨어지는게 아니고 노오랗게 물든 은행잎들도 가을을 보내는

작디 작은 깃발들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팔랑팔랑 고운 손을 흔들며 이별을 알린다.

 

 

마산에서는 돝섬에서 국화축제가 펼쳐진다고 하는데 가볼까? 말까?

보름만에 하루 쉬는 휴일인데 몇주간을 너무 바쁘게 지내다가 2 박 3 일의

행사를 힘들게 마친 후라 어디 장거리 여행은 못 하겠고해서 그래, 머리를 손질하자.

파마한 머리가 다 풀어지고 커트한 머리는 무슨 생쥐도 아니고 덩치는 한덩치 하는

여자가 차..악 ..달라붙는 생머리로 있으려니 자꾸만 어디 아프냐니...

참 나는 머리숱이 너무 없어서 생머리로는 어색하다.

지난 두어달은 총회준비로 너무 바빠서 미장원에서 두어시간씩 머리를 감고

앉아 있을 시간이 없어 그냥 있다가 하도 걱정들을 하길레 오늘 쉬는 날이라

서너주간 전에 아는 목사님 사무실에 놀러 갔다가 사무실 앞 미용실에서 지저분한

머리를 커트하면서 휴대전화가 울리기에 남편을 줬었고 그 자리에서 남편은

늘 하던 것 처럼 집안에서는 편하게 평말, 그러니까 내게 반말을 하지만 밖에서는

존댓말을 하는 사람이라 그 날도 내게 존댓말을 했었는데 미용실 원장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아니..저...기.....혹시 남편분 아니세요?\"

그 말을 묻는데 왜 그리도 뜸을 들이고 주저주저 하는지. ㅎㅎㅎㅎ

\"맞아요. 남편이고 밖에서는 존댓말 해요. 이상해요?\"

\"네...에....전 부인한테 존댓말을 하는 남편을 만나 보질 못해서요...참 좋아보여요.\"

 

그 날은 커트만 하고 나왔고 자주 가는 미용실이 아니라 그 날 우연히 바쁜 중에

잠깐 들린 미용실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오늘 또 그 목사님 사무실에 볼일이

생겨서 가게 됐고 머리가 이젠 돈 좀 들여야 할 만큼 지저분 해 졌고 뭐 일부러

미용실 가느니 여기서 하고 가자 싶어서 회전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원장은 대뜸

\"아...저 번에 그 사모님이시군요~`남편분한테 존댓말 듣던....반가워요. 참 부럽던데...\"

 인사가 푸훗..웃음이 나올 정도로 단순하고 재미있어서

\"뭘 그런 것 까지 다 기억하고 계세요?\"

\"아니..아니에요. 남편이 아내한테 그런 분이 잘 없거든요. 우리집 양반은 아..휴...

 맨날 어찌나 사람을 신경질 나게만 하는지....존댓말요? 어림도 없어요.

 끄떡하면 야 !!야 !! 하는데 기분 참 그래요. 어쩌면 남편분이 존댓말을 한대요?\"

\"아~`그거요? 남편이 아내를 함부로 부르고 대접을 잘 안하면 남들도 그렇게

 함부로 대한다면서 밖에서는 웬만해선 반말 잘 안해요.꼭 존댓말로 하도록 노력하고

 식당 같은데서도 많이 배려해 주는 편이지요. 외국남자처럼 완전 매너맨은 아니지만

 한국 남자치곤 좋은 편입니다.\"

\"좋으시겠다~~그래 그런가 얼굴이 참 평안해 보여요.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시고..\"

\"제 나이를 어찌 아세요? 말도 안해 드렸는데?\"

\" 제 또래 즘 되어 보이시는데 아니에요? 소띠나 호랑이띠?\"

\"맞아요. 소띠\"

\"거 봐요. 그래 보이시는데도 참 젊어 보이시네요.\"

찐한 아부성 발언이란 걸 빤히 알면서도 그냥 흐뭇해지는건 뭔 일이래?

\"아니에요. 저 이래도 장모님인데요? ㅎㅎㅎ\"

\"예...에...???? 거짓말이시지요? 무슨 장모님이시라니?\"

\"정말 인데.....\"

 

미용실 수다가 길어졌다.ㅎㅎㅎㅎ

머리를 말면서도 묻고 난 대답하고 마침 한가한 오전의 미용실은 손님은 나 하나고

원장과 둘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남편의 말투에 무진장한 부러움을 드러낸다.

말처럼 남편은 밖에서는 아내를 함부로 부르지 않는 사람이다.

남들이 아내를 쉽게 대한다며 가능한 한 꼭 존댓말로 부른다.

집에서도 손님들이 오시면 존댓말을 사용하고.

우연히 들은 그 말 때문에 생전 처음 간 손님을 이렇게도 깊이 기억해 주다니..

다른 남편들은 아내를 부를 때 존댓말을 안 쓰는 모양이다.

어떤 남편은 다른 손님이 있는데서도 아내를 부를 때 \" 야 !! 야 !!\"

참 거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집안에서야 \'야!\'든 \'어이!\'든 무슨 상관이랴만 그래도 서로의 인격이 있는데

최소한 존댓말은 아닐지라도 \' 임자~\'는 너무 나이드신 분들 같고하니

\'누구누구 엄마\'나 안 그러면\' 누구누구씨~\' 정도면 어떨런지....

\'여보~\'  \'당신~\' 이 맞는 말이겠지만 어째 난 그 말만은 아직 한번도 못 해 봤다.ㅎㅎㅎ

어찌나 어색하고 연장자 같은 느낌이 들던지...ㅋㅋㅋㅋ

아직도 우리 부부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거나 애들 이름 뒤에 아빠나 엄마를 넣어 부른다.

 \'누구씨~\' \'누구누구 아빠\'  \'누구누구 엄마\' 이렇게.

우리끼리 있을 때는 \'오...오....빠~~야...(콧소리로.ㅎㅎ)\'

어른들이 계실 땐 \'누구아범\' \'누구애미\' 이렇게 부르지만서두...

 

머리하는 내내 자신은 남편한테 결혼하고 단 한번도 존댓말을 못 들어 봤다는 이야기며

자기는 자궁암 때문에 3 년 전에 빈궁마마가 되고나서 몸의 탄력도 없어졌는데

어깨를 주무르면서 아직도 탄력이 탱~탱~한 내 몸매에 감탄하고..ㅎㅎ

뭘 모르시는 말씀을 다....

어깨가 탄력이 탄탄한게 아니라 근육이 뭉쳐 있는 것을 모르시구선....

미용실 들어가면서 아래층 상가에 있던 빠리000 제과점에서 갓 구운 빵을 몇개

사 들고 갔었는데 손님이 빵 사 들고 오는 일이 거의 없던 미용실이라 얼마나

감격해 하던지....

단돈 6000 원으로 사람을 그렇게나 감격해 할 수 있다니.

물론 머리한 돈은 다 지불했고....

나중에 꼭 다시 들리라며, 그 땐 자기가 밥을 사 드리겠단다.ㅎㅎㅎ

언제 다시 이 미용실을 들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손님이 많아서 부~자~미용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암을 극복하면서 좋은 생각만 하며 살았으면....

그래야 몸에서 이로운 물질도 생긴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