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뒤엉켜 있는 사람들과 버스 그리고 빗줄기, 어수선한 도시의 밤을 틈 타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가 떠나고 난 뒤 잦은 비가 내렸다. 열흘만에 내려가는 그날도 여전히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웬 비가 이렇게 내리는지...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는데, 민족의 명절 한가위가 코 앞에 다가왔는데, 분위기가 사뭇 다를 그
날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아파온다.
\'심야로 오면 새벽 2시, 우리 집으로 와요. 한밤중이라서 혼자 들어가기 좀 그럴테니까\'
\'그래요. 내 살던 내집인데 두려울 것 뭐 있나요. 꽃에 물주러 들어갔을때 마음이 편안하고 참 좋았
어요\'
\'혹 두려움이 생기면 꼭 전화해요. 여기 비 꽤 많이 오네\'
마지막 납골당까지 와 위로해 주었던 고마운 지인과의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질주하는 버스 안에서
서서히 스며드는 수면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02시 10분 다시 만난 새벽 속의 삼척, 역시 비가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주인바뀐 호프집과 식당, 2층 학원 그리고 3층 집이 어둠에 휩싸여 있었고 굳게 닫힌 철대문을 철커덕
열고 들어가니 편안한 내집이라는 느낌이 확연하게 몸으로 느껴진다.
소리내어 울고 싶었다.
그동안 차 오르는 울음을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
그래, 그이에게 뭐라 할 말 없지만 속 시원히 실컷 엉엉 울어보자 작정하며 나선 삼척행이었다.
1층 우편함에서 꺼낸 우편물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그이가 앉아 있었던 쇼파에 엎드려 오열을 터트
렸다.
여보~~~여보~~~ 미안해~~~
불쌍해서 어떡해~~~여보~~~여보
울어도 울어도 그치지 않는 울음,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와중에 우편물 하나를 개봉했다.
그이의 이름이 흔적없이 사라져 버리고 세 식구만이 덩그라니 남아있는 의료보험카드, 의료보험 공단
에서 날아든 얄궂은 통지를 보니 설상가상 울음소리는 더욱 더 커지고 그의 옷들이 걸려있는 작은 방
으로 들어가 옷을 부여잡고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안방 침대 속으로 들어가 베갯잎을 적시고 슬며시 잠이 든 것 같았다. 7시, 집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끌고 바다를 나가려다 계속 내리고 있는 비때문에 자신이 없어 거두고 말았다.
밥을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집안청소를 했다.
외로움에 가족들을 생각하며 자책감과 상실감에 빠져 술로 하루하루를 지냈을 그의 마지막 길..
생각할수록 가슴아팠지만 털어내야 했다. 살자니 어쩔수 없는 현실이었다.
변변찮은 반찬으로 아침밥을 억지로 먹고 책상 서랍을 열어 정리해 놓은 화일을 하나 둘 살펴 보았다.
임대계약서, 등기부등본....
보험하나 들어놓은 것 없이 빚만 몇 천, 악물고 돈을 벌어 갚아나가야 한다. 내가 짊어지고 나가야 할
또 다른 숙제였다.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다기에 필요한 서류를 떼기 위해 집을 나섰다.
참 이상도 했다. 꿰어 맞추려 하는 인간의 심리인지 모를 우연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서울가기 전, 7년 정도 운행한 대형차를 헐값에 넘기고 소형승용차를 구입했다.
이제 당신이 운전연습해서 이 차 몰고다녀 봐...
그러면서 후배 한 명을 내게 소개하며 하루 연수를 부탁했었다. 그렇게 해서 운전을 다시 할 수
있었는데 한달정도 있다 서울로 가게 되어 핸들을 놓게 되었다.
무용지물이 되었을지도 모를 승용차 운전석에 탑승하면서 멍하니 시동도 켜지 않은 채 눈물을 흘렸다.
여보 고마워요...
볼 일을 뒤로 미루고 메시지를 주고받던 지인을 태워 바닷가로 나갔다. 노한 듯 하얀 거품을
물고 다가오는 파도, 바다에 모든 슬픔 토해버리고 오라는 언니의 메시지가 한 통 뜬다.
구불구불 해안도로를 타고 작정하고 내려갔다.
맹방 궁촌 장호 용화....
비에 젖은 해안을 따라 갈남이라는 곳에 도착하니 동행한 지인이 이럴줄 알았다며 흘깃 나를 쳐다본다.
남편과 함께 자주 오던 곳, 가끔씩 동승하여 이야기꽃을 꾸며주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운전하며
내려가는 나의 의중을 알았던 것 같아 아무 말없이 따라와 주었다고 한다.
유난히도 물빛이 아름다워 쉽게 우리 부부를 유혹하고 만 갈남바닷가, 매일 바다를 돌면서 가끔씩 열흘
이나 보름에 한번 씩은 약방에 감초처럼 찾아왔던 아름다운 동해바다였다.
밉든 곱든 남편과 함께 했던 장소들이 참 많아 고마운 마음이 인다.
갈 남 ... 08년 오월에
시내로 들어와 몇몇 사람들을 만나고 연금공단까지 동행해 주며 마음을 함께 한 그녀와
이별을 하고 여기저기 들러 인사드리고 저녁나절 나를 위해 모임을 소집한 장소에 나가 잠시 저녁을
먹고 들어오니 아홉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자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여기저기 연락들이 와 얼굴보겠다고 한다.
두 명이 집을 찾아와 자정 무렵 돌아가니 하루를 어찌 보냈는지, 일은 잘 마친건지 정신이 없다.
아마 멍하니 집에서만 있었다면 하루종일 울지않았을까 싶다.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가끔 그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다 보면 밀려드는 슬픔이 나를 괴롭히지만 이젠 하나하나
거쳐가야 할 어려운 관문이라 여기고 억지로 그를 잊기위한 연습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근 10여년 간을 나를 괴롭히고 포악을 떨긴 했지만 기가 막히게도 그런 기억들은 그가 모두
가져가 버린 것 같다. .
심야로 내려가 꽉 찬 하루를 보내고 다시 그 다음날 첫차로 올라온 나의 일정...
잠깐이었지만 울고싶을 만큼 울었고, 언니말대로 바다를 보며 슬픔도 미련도 괴로움도 토해버렸다.
번복되는 감정의 기복이 자주 찾아오겠지만 서서히 이겨나가야 할 것 같다.
웃다가 우는 일도 허다할텐데, 그래 그냥 그렇게 울어도 보자. 그러다가 또 웃고...
날 힘들게 한 만큼 더욱 힘들었을 그이, 이젠 편안하게 가 주기를 빌고 또 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