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딸은 캐나다를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겠구나......
오후 2 시 10 분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를 먼저 타고 일본에서 캐나다
캐나다에서 멕시코, 멕시코에서 과테말라로.
미국비자가 있으면 미국으로 갔다가 과테말라로 가면 비행시간도 적고
비행기요금도 둘이 합하면 100만원 정도는 절약된다고 하던데
둘 다 미국비자가 없으니 하는 수 없이 빙~~빙~~돌아서 가는셈이다.
오전 아홉시에 우리는 막내와 함께 김해공항으로 출발하고
딸은 창원시댁에서 출발해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신혼여행보낼 때 하고 크게 다르지 않은 감정으로 휴게소에서 커피도 타 마시고
유유자적하게 느긋한 마음으로 김해공항에 우리가 먼저 도착.
비행기 출발시간이 아직 많이 남은 오전 11시.
넓은 공항 안에는 간간히 사람들이 몇 앉아 있고 딸네도 아직 안 왔다.
쇼파에 앉아 가져간 책을 한참 보다가 눈도 쉴겸 고개를 들고 휘~~이 둘러보는데
참 낯이 익은 중년의 신사분이 짐이 가득~~실린 공항전용 짐수레를 밀며 지나가시는데
자세히 보니 아...목사님이시다.
사위는 뒤 따르고 목사님은 앞서시고 애들 짐 보따리를 미시며 지나가시다가
내가 인사를 하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신다.
\" 아~~벌써 오셨군요. 제가 금방 짐 부치는 곳에 두고 오겠습니다\"
외국을 자주 다니신 경험이 있는 목사님은 일을 꼼꼼하게 일사천리로 처리하신다.
우리 애들 짐보다 한사람만이 더 있을 뿐 우리가 두번째다.
줄을 세워두고 보니 저~~뒤에 딸이랑 사모님 딸의 시누이가 보인다.
딸은 최대한 간편한 복장과 노메이컵으로 다소 핼쓱해 보이기까지 하다.
몇날 며칠을 짐 챙겨 이사하고 가져 갈 물건 사느라 지하상가로 백화점으로
얼마나 바삐 뺑뺑이를 쳤던지 다리가 다 아플 지경이란다.
가방 줄을 세워두고 잠깐 시간이 남았을 때 간단한 점심이라도 먹어둬야 한다며
사모님께서 식당가로 예약을 하러 가시는 눈치.
지켜주는 사람도 따로 없는데 귀중품이 가득 들어있는 가방 4 개를
공항로비에 떡 하니 세워두곤 모두 식당으로 올라가는데
은근히 걱정은 좀 되었지만 잠깐 사이에 우리 뒤로도 줄이 생기기 시작한다.
현금이랑 여권 같은 거는 메고 다니는 가방에 넣었지만 나머지 짐들은 다
바닥에 둔 가방 안에.....
나만 걱정이지 다른 사람들은 태연하다.
내가 과민반응인게지 뭐.....
그 가방 안에 들어 있는 물건들은 당장 애들이 그 먼 나라에 가서 먹고 입고 살아야 하는
기본적인 생필품들이라 내겐 그 어떤 것 보다도 귀중품들인데....
식당에 올라가선 양가 집안 대표들(?) 의 먼저 돈 내기 쟁탈전이 벌어졌다.
당연히 남편의 승.
그저께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하신 목사님은 사모님께 눈을 흘기시면서 까지
우리가 돈을 내게 했다고 나무라신다.
당연히 목사님 댁에서 내야 하는 식사비라며.
누가 내면 어떠랴.
우리는 딸이고 목사님은 아들이 먹는 밥이고 우리는 즐거우면 되는 것을.
밥을 먹을 때 까지만 해도 기분은 좋았다.
우동가락을 집어 올리며 김치찌게를 후루룩 먹으며 스파게티랑 생선초밥을 고추냉이에
찍어 먹을 때 까지만도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
딸 시누이가 2 개월 전에 낳은 예쁜 공주님을 내가 안아 재우며 비릿한 젖냄새에
아고~~우리 딸도 몇년 후엔 요런 꼬맹이를 안겨주겠네....
요..요...보들보들하고 연한 피부랑 까만 눈, 작고 분홍빛의 인형같이 고운 발
옹알 옹알 뭐라고 뭐라고 쫑알거리는 옹알이.
난 유난히고 갓난 애기들을 좋아한다.
젖 비린내 나는 입에 코를 박고 그 냄새를 맡기까지 하는 갓난쟁이귀염증.
사돈댁 꼬맹이를 안고 있으니 딸이 또..또..엄마 애기 빼앗아 안았다며 놀린다.
갓난애기가 있는 곳에는 항상 내가 있다나 어쨌다나...ㅎㅎㅎ
점심을 잘 먹고 있는데 마산에 계시는 어떤 목사님께서 지금 공항으로 오시는 중이시라고
기다리고 있으란다.
어차피 공항리무진으로 오시면 그 차에 2시 10 분 승객도 있을 터.
커피를 마시고 있다보니 우리 애들이 유치부 교회에 나갈 때 담당하시던
목사님께서 우리 딸이 과테말라에 간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금일봉을 넣고 달려오셨다.
세상 참...
그 목사님은 우리 딸이 18 년 전에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신데 사돈되시는 목사님과는
형님 동생하시는 사이시란다.
그 목사님의 아들도 우리 딸과 같은 대학의 선밴데 목사님은 우리 딸이 그 대학의
후배임을 아시곤 며느리 삼으려고 하셨다니.....
처음 결혼 소식을 듣고 많이 놀라셨다고 실토를 하신다.
한발 늦었구나....
그것도 형님한테.....
듣고나니 기분이 그리 나쁘진 않네~~ㅎㅎㅎ
기도로 애들의 가는 길을 축복해 주시고 시간이 되어 출국장 앞으로.
우..와.....
우리가 있을 땐 짐이 몇 안되더니 짐꼬리가 공항 밖까지 이어져 있다.
모두가 2 시 10 분 일본행 비행기의 탑승객들.
잠시 잠깐 비행기에도 입석이 있나???? 걱정스런 바보 엄마.
줄이 너무 긴 걸보니 혹시나~~하는 비정상적인 걱정하나.
집에서 저울에 달아보고 짐을 챙겼다는 애들의 짐은 그래도 중량초과.
드디어 오바된 무게 만큼 빼야하는 중요한 순간에 공항바닥에 가방하나를 완전히
풀어헤쳐두고 과연 무얼 뺄까? 들여다 보고 있는데
아무생각 없이 목사님께서는 내가 식육점에서 진공포장을 해서 딸한테 준
멸치랑 볶은통깨, 오징어채, 된장, 고추장.햇고춧가루....
기본양념들이 주루룩....쏟아져 나오니까 거기가면 다 살수 있고 참깨는 싸다시며
내놓고 가라시는데 순간 우리딸 얼굴색이 하얗게 변한다.
얼른 참깨를 집어들면서
\"이거...우리 엄마가 주신건데요.\"
그리곤 아무 말도 못한다.
그 때 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계시던 사모님 얼른 목사님을 공항 한 켠으로 끌고 가신다.
뭐라뭐라 들리진 않았는데 돌아오신 목사님 아까 그 통깨봉지며 양념들은 도로 가방에
다~`넣으시더니 급한 손길로
\"그래그래 이런 것들은 꼭 필요한 거니까 가져가고 대신 책을 내자.......\"
꼭 필요한 단어책이랑 회화책만 넣고 읽을거리 책은 빼기로하고 짐을 통과.
딸이 순간 얼마나 당황했을까?
엄마의 손길이 엄마의 숨결이 있는 물건들을 다 빼자고 했으니.
집에서 남편도 비상금 챙겨줬고 시누이도 보니까 지인들의 모금을 전달하는 눈치고
목사님도 챙겨줬고 교회에서도.....
환전한 달러를 여기저기 작은 주머니마다 조금씩 넣고 쓰라는 해외파 목사님의 당부.
1 달러짜리를 유용하게 사용하라시는 특별지침도 잊지 않으시고
특히 돈과 여권가방은 절대로 몸에서 풀지 말라시는 엄명하달.
딸과 사위가 나누어서 돈을 넣고 드디어 출국장 앞까지.
갑자기 딸이 내 손에 뭔가를 쥐어 준다.
\"엄마. 농협카드에 돈 얼마간 들어있고 내 통장 비밀번호는 동생생일이에요.
도장은 엄마 가방에 뒀어요. 엄마 필요하면 찾아 쓰세요.
당분간 생신도 어버이 날도 못 챙길건데.....\"
그 순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받아둔 통장을 조금 전에 집에 들어와서 열어보니 헉....
100만원이나 되는 돈이 들어있다.
딸은 마지막 월급을 다 놓고 간 모양이다.
막내 생일이 9 월 2 일이라 바빠서 챙기지 못했다고 돈을 챙기고 편지도 챙겨서 주더니.
참 마음이 섬세하고 여린 아인데.....
그렇다고 내가 ?딸 돈을 빼 쓸 수 있을까?
무정한 에미도 아니고....
출국장 입구.
눈물 한방울 없이 딸을 씩씩하게 들여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출국이라는 문 앞에 두 애들이 기내가방을 끌고 서 있는데 아...
저 문만 들어서면 3 년은 애들을 못 보네!
아니 어쩌면 5 년을 못 볼지도.....
얼른 사위부터 꼭 껴 안았다.
\"열심히 잘 있다 와~~애 울리지 말고. 아프지 말고...\"
\"네..장모님\"
사위는 아직 씩씩하다.
난 갑자기 목이 꽉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고 돌아서 딸을 더 꼬옥 안아주며
\"절대로 아프지만 말고 있어.
네가 더 많이 이해하고 참아.
막내는 어려. 알지?\"
\"응....엄마도 아프지 마...\"
그리곤 더 말을 못 잇고 돌아서 간다.
내 딸이 사라지고 있었다.
얼굴이 벌게진 내 딸이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손도 제대로 못 흔들며 얼굴은 웃는데 눈이 운다.
사위는 웃고 내 딸은 울고 그렇게 사라지고 있다.
남편도 얼른 얼른 두 애들을 안아준다.
사돈댁은 자주 애들을 보낸 경험이 있으셔서 덤덤하시다.
한 발 한 발 출국문을 향해서 두 애들이 사라져 간다.
안녕.....
안녕...
잘 있다 와.
건강하게 있다 와.
절대로 아프지 말고 와.
애들이 안 보인다.
내 딸도 사위도 안 보인다.
돌아서 공항로비를 걷는데 토닥토닥 사돈댁 시누이가 내 등을 다독여준다.
\"많이 서운하시죠?
그래도 올케가 나이는 어려도 참 지혜로워서 잘 할거예요.
여리긴 해도 강하더라구요.\"
\"아~~예.감사합니다.\"
손수건을 적시면서 가을 바람이 하늘하늘 내 원피스를 건들며 지나도 먼 하늘만 바라본다.
조금 있으면 저 하늘 길로 우리 애들이 날아가겠지?
바람아 불지를 말아라.
우리딸 무서우면 멀미 날라.
구름아 사라져라.
우리 딸 가는 길 어두울라.
그렇게 애들을 보내고 목사님과도 헤어질 무렵 우리가 휴가를 안 떠났나고 하니 목사님께서
경주와 또 여러군데 콘도를 예약 해 주겠으니 휴가 때 쓰시란다.
마음도 울적하고 섭섭할테니 넓은 콘도 하나 예약해 드릴테니 푹 쉬고 오라신다.
참 세밀하게도 챙겨주신다.
가게되면 연락드리지요..하고는 헤어졌다.
난 가고 싶지만 남편은 누구를 통해서 신세지는 걸 참 싫어한다.
아마도 못 갈 것 같다.
어느 섬에도 잘 아는 목사님이 친하게 지내시는데 배도 빌려서 낚시도 가능하니
언제 날 잡아서 같이 고기잡으러라도 가자시는데 위로 차....
마음을 헤아려 주시는 그 배려에 감격만.
고맙단 인사를 하고 헤어져 막내의 생일선물을 고르려고 마산시낼르 돌아오는데
띠리릭.....이상한 번호가 남편폰에 뜬다.
\"여보세요? 응???벌써? 야..세상 참 좋구나. 벌써 일본이야?
그래 잘 있다오고 잠깐 엄마가 바꾸라신다.\"
\"벌써 일본이라고? 기내식은 먹을만 해? 너무 많이 먹지 말고 음식 잘 챙겨먹어 .아까도 얘기했지만 막내니까 네가 이해 많이 해 주고 말을 아껴라. 알았지?.\"
전화 저 편에서 딸의 밝고 달뜬 목소리가 들린다.
참 좋은 세상.
그 사이 벌써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가서 비행기 갈아타려 한다니.....
잘 하리라 믿고 엄마도 그 동안 동생들 잘 키우며 있어 줘야지?
목사님이 10 월 말이나 11 월 초에 교회행사관계로 들어가신다고 하니 그 때 못 다 가져간
물건들 챙겨주기로 하고.
주사위는 내 손에서 떠났다.
앞으로는 둘이서 헤쳐나갈 세상의 파도들.
기도로써 후원해 주는 님들도 많고 친지들, 친구들도 많으니 잘 하고 오리라 굳게 믿는다.
험한 바다를 항해해 보지 않은 선장은 유능한 선장이 되지 못하는 법.
세상의 험한 바다에 이는 풍랑을 헤치면서 잔잔한 바다의 위대함도, 거룩하고 찬란함도 배우겠지.
딸아.
널 믿으마.
사위를 믿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