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고운 손
채칼로 당근을 썰다가 결국 피를 보고야 말았다. \"대패질하니?\" 채칼과 씨름할때면 가끔 언니는 웃으면서 놀려댄다. 칼질을 너무하다보니 검지손가락 안쪽에 굳은 살이 박혔다. 쉽고 빠르게 할수 있는 것이 채칼인데 사용미숙인지 몰라도 나는 채칼만 들면 겁이 난다. 차라리 시간이 걸려도 힘이 들어도 주방용 칼로 하나하나 채를 써는게 더 익숙하다. 그런데 그러기엔 너무 바쁘다. 잠시 쉴 틈조차 없는 바쁜 일터, 휴가떠난 언니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다. 김밥거리용 당근을 짧지않게 하려다 채칼에 손가락마디가 긁히고 말았다. 피가 나는 손가락은 대충 휴지로 둘둘말고 일회용 위생장갑을 끼고 일을 시작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나는 12시간을 일한다. 매장이 오픈하는 10시에 언니는 나오라고 하지만 이른시간 7시 30분까지 와 반찬준비하고 있는 언니를 생각하면 그리 늑장부릴 필요는 없다 생각해 한 시간 내지 한시간 반 이르게 출근을 한다. 10시부터 들어오는 손님을 위해 진열대에 내놓을 즉석반찬들과 밑반찬들 40여가지를 착착 준비 하며 언니와 이런저런 얘기 나누어 가며 일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열두시간 일하는 내내 나의 손은 혹사를 당한다. 데고 베이고 하루도 멀쩡할 날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어서 주먹을 쥘 수가 없다. 처음 일을 시작한 지 열흘 정도 지났을때 과연 내가 버텨나갈 수 있을지 염려되었다. 아무리 무쇠팔 무쇠다리라 해도 힘겨운 중노동에 손과 발이 견뎌내 줄 수 있을지 걱정되지 않을수가 없었다. 바빠 일에 파묻히다 보니 아플 시간조차 없다. 돌아와 자는 동안 그때부터 하루의 고문이 얼마나 심했는지 손몸살을 앓는다. 물론 잠에 취해 느낄 수 없지만 일어날 때면 묵직한 몸처럼 손도 아침이면 힘이 든가보다. 뻣뻣하고 부어있는 듯 하다. \"아니, 안힘들어? 잠시도 쉬질 않네.\" 앞 매장 고참언니의 염려아닌 염려가 종일 일만 하는 내 모습을 보고 말을 건낸다. 적당히 해도 되련만 할 일을 두고 그냥 빈둥거리는 것도 싫고 기름때 쩔은 구석구석을 보면 지나칠 수도 없는 일, 반찬만들고 판매하고 쓸고 닦고 내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었다. 주인이 언니가 아닌 남이었어도 마찬가지었을 것이다. 남들 눈에는 동생이니까 저렇게 열심히 해주지 말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내 성격이 눈 앞의 일을 그냥 지나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할수 있는 일에 한해서만 말이다. 다행히 산으로 다져진 두 다리가 하루종일 서 있어도 멀쩡할 수 있고 퇴근길 씩씩하게 걸을수 있으니 얼마나 큰 고마움이랴. 주부경력 25년째, 집안에서의 일은 그야말로 공주였다. 나름 바지런떨며 남 하는것 다 하며 며느리 역할까지 그런대로 잘 해 낸 곱디곱던 손, 그 손으로 서양화를 배워 솜씨를 발휘했고 내게 늘 위안이 되어 주었던 푸른 화초들도 가꿨다. 결혼 전 손가락이 길쭉하고 예뻐 손잡아 보자고 하던 남성들도 꽤나 있었는데... 이제 하루의 반을 물질하며 비틀고 짜고 일을 해대는 통에 마디마디 굵어지고 짧은 손톱에 그마저 자꾸 부러지는 못생긴 손이 되고 말았다. 딸아이 손가락에도 들어가지 않는 가느다란 새끼 손가락 나비모양의 내 반지가 이젠 마디에서 걸려 들어가질 않는다. 일하면서 치여 양손에
|||끼었던 반지를 모두 빼고 곱게 칠하던 메니큐어마져 물건너 갔지만 속상해 한 적은 없다. 일은
해야 했고 그 뒤에 따르는 고생은 받아들여야 했으므로... 오늘로 일한 지 딱 두달이 되었다. 조금씩 자신감도 붙고 반찬메뉴도 인터넷을 검색해 가며 언니와 의기투합하는 중이다. 하루매출이 높아 갈수록 받아가는 월급에 당당해질 수 있음이다.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 내게 언니는 늘 상황버섯 다린 물과 쉬엄쉬엄 간식거리를 꺼내어 준다. 50대 나이에 꼭 필요한 것이 건강과 돈, 그리고 종교 마지막으로 자매와 친구라고 한다. 다 갖추진 못했어도 일할 수 있는 건강한 몸과 물심양면 도와주는 언니 가끔씩 염려되어 전화오는 지인들과 친구들이 있어 행복한 지천명이라 말해도 될 것 같다. 내일도 부지런히 놀릴 손, 밤늦도록 자판까지 두드리게 해 조금 미안하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