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년의 뜨락은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자식 사랑 못지 않게 화초 가꾸기를 좋아 하셨던 아버지 덕에 200 여평 되는 큰 집엔 사철 꽃향기 그윽한 꽃대궐 이었다
팔남매중 막둥이, 그 자리가 내 자리였다
하지만 잔병, 큰병을 꿀단지 처럼 끌어 안고 살았던 아이...
여름 끝자락 즈음엔 늘 긴소매 옷을 남보다 먼저 챙겨 입었던...
당연히 입도 짧았다
한번 \'안먹어!\' 하면 어떤 방도도 없었다고 아버지는 웃음을 입꼬리에 달고 얘기 하셨다
그중에서도 국수는 죽기 보다 먹기 싫은 음식 중 으뜸 이었다.
깊은 정은 남달랐으나, 단호했던 엄마.
여자는 못먹는것이 없어야 나중에 가정을 이루었을 때, 가족이 맛난 음식 먹을 기회가 박탈 되어지지 않는다는게 엄마의 지론 .
아버지는 국수를 엄청 좋아 하셨다
특히 엄마가 홍두께로 밀어 송송 칼칠한, 호박 부추 풋고추 대파가 어우러져 걸죽한 국물맛이 일품인
칼국수를 유난히 즐기셨다
내가 8살이던 국민학교 1학년 첫 여름 방학.
엄마는 음식 앞에 어깃장 놓는 내 못된 버릇을 고치고자 단단히 벼르셨다
\"너~~이 국수 안먹으면 온 가족이 니가 국수 먹을 때 까지 밥 안하고 국수만 삶는다~~~\"
믿는 구석이 있었던지라 하루는 너끈하게 참았다
어쩌면 속에서 받지 않는 거북한 음식을 멀리한 탓에 복장이 편했던것도 같다
이틀째는 아예 불쌍하게 보이려 눈물을 질금 거리며 물만 넵다 마시고 누워 지냈다
내심 든든하게 믿었던 아버지는 나와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어여 따슨밥 해서 안 먹이나?\' 불호령 내려 주길 간절히 바랐건만...
사흘째 되는 아침, 그 날도 어김없이 엄마는 국수를 밥상에 대령했다
밥 하기 전 꼭 먼저 물었다
\'국수 한그릇 먹을거냐?\' \'안먹엉~~~\'
오빠들이 궁시렁 댔다
사납게 째려 보는 오빠, 아무도 몰래 내 다리를 걷어 차는 오빠...\'저 가시나 땜에\' 대놓고 역정 내던 오빠...
기진맥진 했다. 내가 이대로 죽고 나야 울 아버지가 크게 후회 하며 땅을 치고 많이 울거라는 유치한 신파극을 혼자 썼다
점심상을 물리고 가족이 자신의 흥미로운 일에 사로잡혀 있을 즈음,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버지는 국수를 무척 좋아 하시니까 어쩌면 나의 이 행동을 즐기고 계실거야.
늘 국수를 드실 수 있을테니까~~~
벌떡 일어나 앉아 온 집이 쩌렁 울리도록 소리 소리 질렀다
\"나 배고파.... 국수 줘... 으앙~~~~.!\"
음식 타박 버릇 그날 이 후 모두 물렸다
돌이켜 보면 꼴값 제대로 떨었다. 이제는 어느곳에서도 맛 볼 수 없는 손수 끓여 주시던 엄마의 손칼국수맛.
하지만 지금도 굳이 국수 한그릇 사 먹고 싶다는 맘은 안 생긴다...ㅎㅎㅎ
일년 뒤 여름, 저녁 밥상을 받고 가족이 막 수저를 들던 시각.
워낙 많은 형제들이 들락 거리니 대문 단속은 해도해도 끝이 없었다
열려진 대문 앞에 또래 남자 아이가 구걸을 와 있었다
말 없이 그림자 마냥 물끄러미 서 있는 그 아일 발견한 엄마는 자식 여럿 둔 사람의 오지랖이 여지없이 발휘됐다
댓돌 작은 소반 앞에 방금 지은 밥과 국, 몇가지 반찬을 차려 아이를 앉혔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아이는 들고 있던 깡통을 들이 밀며 거기에 담아달라했다
\"많이 허기져 보인다. 우선 너 부터 먹어라 음식은 나중에 좀 싸줄게 동생있냐? 몇이나? 둘? 쯧쯧...\"
허겁지겁 국그릇에 밥과 반찬을 다 쏟아 부은 뒤, 입에 퍼 넣는 아이를 잠시 바라 보던 엄마는 신문지 뭉치를 가져와 아이 엉덩이 밑에 깔아줬다
\"지금 니 처지가 그렇지만 장래의 니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운 여름이긴 하나 시멘트 기운, 살갗으로 파고 들면 뭐이 좋을꼬~~~천천히 꼭꼭 씹어 먹거라\"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많은양의 음식을 먹어 치운 그 아이는 그러나 온 몸에 땀탱질을 하고 있었다
두레박으로 시원한 물을 길어 엄마는 그 아이의 얼굴과 굵은 때가 줄줄 밀리는 목덜미를 씻겼다
의외의 선하고 맑은 큰 눈망울이 땟국물 벗겨낸 자리에 또렷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눈이 참 맑구나...\"
그 아이와 내 눈이 얼핏 마주쳤다가 서로가 화들짝 놀라 눈길을 거두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그 아이는 단 한번도 우리집 대문 앞에 실루엣을 드리우지 않았다
얼핏 마주쳤던 그 아이의 눈에 세상을 향해 표출 되지 못한 분노 처럼 끓어 오르던 노을의 잔영이 짙게 깔려 있었다
뒤따라 온 저녁 그늘이 서둘러 노을을 지우듯 짧은 내 유년의 뜨락도 그렇게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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