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여름방학이 되면 엄마는
시골 외가집으로 나와 동생을 보내곤 하였다.
버스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한 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마을은 마치 동화책속에 나오는 시골마을 같았다.
그곳엔 또래 사촌들이 참 많았는데
그들 중 가장 친하게 지낸 아이의 이름은 영권이...
“비아야~내가 너보다 생일이 더 빠르니깐 나한테 오빠라고 불러라~”
“뭐?..어디서 감히 중3짜리가 고1누나한테...내가 누나다~.“
영권이는 나와 같은 나이었지만 나보다 한 학년 아래였고..
난 생일이 6월임에도 불구하고 7살에 학교를 갔기에
학년은 내가 한 학년 위였던 것이다.
우린 그렇게 서로 만나기만 하면
학년과 생일을 따지며 오빠동생을 서로 강요하면서
철부지 어린 시절을 보내곤 하였다..
어느덧 세월이 흐르고 성인이 된 우린
집안 행사 때 간혹 스쳐 지나간 것도 같았지만
까맣게 잊고 지내기를 25년..
그러던 어느 날 친척어른의 장례식을 가게 되었다..
대전에 사는 동생들도 서울로 올라오고
장례식장에서 모처럼 만난 친척들과의 만남에
짧은 이야기를 나누곤 막 일어서려는데 .....순간..
누군가가 반갑게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모습으로 봐선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 남자.
누구지? ..
머리는 백발에.. 작은 키의 뚱뚱한 몸을 한 그 남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에 없다.
그런데 동생은 그 사람과 함께
반갑게 인사를 서로 주고 받더니만 순간 내게 묻는다.
“언니.. 영권이 오빠야 ..몰라? ...”
“^^;...........”
외갓집 식구들은 모두 권자 돌림이다.
일권, 경권,승권, 창권, 동권,영권..
그 많은 권중에 영권이라....
모른다고 하자니.. 게름칙하고..
아는척 하자니... 아는게 없고..
진퇴양난이 바로 이를 두고 한말일 게다..
눈만 크게 뜨고 알듯 말듯한 표정으로
어색한 미소를 짓자..그 사람이 먼저 말을 건넨다..
“야! 내가 니 오빠염마~”
난 속으로 말했다..
\'그럼요....충분히 오빠이구 말구유..
근디 당최 어느 계열의 오빠인지...
힌트를 조메 더 주던지...아 답답.....
분명 가까운 사이였던건 같은디.. \'
난 끝내 기억을 못 끄집어 내고는...
일단 오빠라는 말에 두손 모으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였다....
“아네~ 안녕하세요....”
“-,-;;;.............”
나의 정중한 인사에 그 친구 순간
실망스런 표정이 스쳐 지나가는 듯 했다..
마침 일어서던 길이었기에 난 다시
그 오빠라는 사람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를 다시 건넸다..
“그럼... 이야기 나누다 가세요...^^”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 확인사살이다..ㅠ,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동생이
문득 좀 전의 일이 생각났던지 내게 묻는다.
“참! 아까말야.. 언니 정말 영권이 오빠 몰라?”
“응.. 모르겠는데..그 오빠 누구야?..”
“어..이상하다....예전에 언니랑 그 오빠랑 디게 친하게 지냈었는데...
우리 어릴때 시골에 놀러가면 영권이오빠하고 언니하고
서로 오빠라고 하고 누나라고 하고 막 그랬잖아...“
“뭐...셔......아니.. 그럼.. 걔가...바로... 걔란 말이야......”
“그래..언니 몰라 봤구나? ..왠일이니...어쩐지 이상하더라....
영권이 오빠는 언니 알아보고 반가워서 자기가 오빠라고 농담하는데
언니가 너무 정색하면서 인사하니깐 되게 당황하는 눈치더만...“
세상에...이럴 수가......
영권아~나도 늙었지만 ..너 왜케 변한거냐..
그 예전 모습은 모두 어디로 가고 ....
에구임마.. 염색이라도 하지...
참으로 세월유감이구나....
그나저나 그 친군 오래간만에
날 만나 반가운 마음에 예전생각을 하며
내게 오빠라는 농담으로 인사를 건넸건만...
난 그것도 모르고...
집안 최고 어르신 만난거 마냥
인사만 꾸벅 하고 나와 버렸으니 ..
이런 황당하고 서글픈 일이...--;;;
아무리 외모가 변했다 해도 그렇지..
이름 석 자 정도는 기억해 낼 수 있는 일이건만..
에고...이게 다 나뭇꾼 만나 애셋 낳아서 이리 된겨..흐흑~
객관식 문제다.
아래 물음에 답하시오.
문제] 장례식장에서 만난 영권과 비아.
오빠라는 말에 정중하게 인사하는 비아의 모습을 보고
영권이는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1. 야가 나이를 먹더니 철들었나..
2. 쟤 ..어떻게 된 거 아녀..
3. 날 몰라 보는군..
4. 진짜 오빠로 인정하고 굴복?했다... **;
최악의 답은 4번이다..ㅠㅠ;
에휴...그나저나 이 웃지 못 할 오해를
하루빨리 풀 수 있는 기회가 와야 할텐데....
내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만나면
그땐 반갑게 큰소리로 꼭 말해 줄란다.
“영권아!! ....미안하다 ..사죄한다.~~
그런데고말이다~ 아직도 너가 잘 모르는 게 하나 있는디 말여.
내가 너 누나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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