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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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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상탔어요 축하해주세요


BY 단미 2007-12-16

에너지 공단이랑 산자부에서 주최한 에너지수기공모 에서  우수상을 받았네요

상금도 좀 있고요 ..........글 올립니다

 

쪽방 할머니와 여고생

 

허연서리가 가시처럼내려앉은 이른새벽고히잠든산골마을엔 정적만이 감돌고 이따금씩 휘이불어오는 칼바람에

16살 어린 소녀는 작은 보퉁이를안고 성황당을지나고 커다란뱀처럼 누워있는 시커먼 논둑길을 동동거리며 걸어가고있습니다

뒤돌아보면 따스한 아랫목이부를것만 같아서 앞만보며 오리가 넘는곳에있는 기차역을 향해서 말임니다

또래의 친구들이 고등학교 입학을 하기 위해서 연합고사를 준비하고 원서를 쓸 때 같이하지못하고

가난은 공장으로 내몰았습니다

종아리가 푹푹 빠지는 눈길도 방천둑이 터지는 큰비에도 아랑곳하지않고 3년동안 결석한번 하지않아서 졸업식때는 우등상이랑 계근상을 탈수있었지만 담임 선생님에게마져 말씀드리지못하고 무단 결석을 하면서

까지 공장길을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가난 때문에 너무일찍 철들어버린 맏딸이기 때문이였을겁니다

 

고향과 엄마는 내겐 한숨같은 아픔이였습니다

땅한데기 없이 가정을 일군 아버지와 어머니는 손수 산비탈에다 밭을 일구고 남의 논을 빌려서 농사를짖기도하면서 허리가휘지도록 일만했습니다

그렇게 일만 모르시던 사람좋은 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엄마를 두들겨 패고 찬없는 밥상을 마당에다 내동댕이를 치곤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술이깨기도전에 지개를 지시고 밭일을하러 나가고 엄마는 멍든 얼굴을 수건으로 가린채 호미를 들고 뒤를 따라나섭니다

그렇게 죽도록 일을해도 가난은 줄기차게 우리곁에 머물고 엄마는 서럽고 서러운 날들을 아프게 보내면서

우리들을 오직 사랑이라는 일념으로 말없이 지켜주셨습니다

 

처음으로 전자공장에 발을 디디는 그날너무 낯설고 황당한 느낌에 몸둘바를 몰라서 많이 주눅이들기도

했지만 엄마를 위해서 난 돈을 벌어야만 한다는 나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공장한켠에서 드라이버로 나사를 돌리고 인두로 납땜을 하면서 새로운 생활에 합류했습니다

낯선 친구들이랑 얼굴을 익히면서 함께 자취를 하게되었습니다

많지않은 첫 월급을 타고 얼마나 기뻣던지 제일먼저 엄마의 빨간 내복을 사고 아버지랑 동생들의 양말과

과자를사서 고향으로 가던날은 마치 금의 환향 한것처럼 들떴습니다

엄마

엄마 싸릿문을 열고 들어서니 엄마는 버선발로 뛰쳐나오십니다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안고 같이 울고말았습니다

동생들은 과자를 먹을수 잇다는 기쁨에 행복해 했습니다

“언니야 내도 공장갈수 있나 언니는 과자 매일 먹고 사나 언니는 좋겠다

나도 공장가고잡다“

철없는 동생들은 그렇게들 신이났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공장 생활이 몸에 익어갔습니다

대부분의 월급은 매달 고향으로 들고 갔습니다

 

여고생이되어서 하얀 교복을 예쁘게 입은 친구들을 차마 볼수가 없어서 아예 학교 다니는 친구는 애쓰 외면해

버렸지만 마음 속 깊은곳에 숨은 꿈에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일년이 지나고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던가

국가공단에서

산업체 특별학급이라는 제도가 생기고 가난해서 배우지 못한채 일터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많은 청소년들이

낮에는 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갈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배움에 굶주린 많은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했고 그렇게 염원하던 나에게도 행운이 찾아와

교복을 입을수가 있었습니다 교복이랑 학비는 국가와 산업체에서 모두다 지원해주고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공부햇습니다

어딜가더라도 교복을 깨끗하게 차려입고 자랑스례가슴을펼수있었습니다

 

얼기설기 역어서 겨우 모양만 낸 부엌딸린 방에서 자취를 하던 그시절은 많이 추웠지만 배울수 있다는 일념하나로 모든 것을 인내햇습니다

우리가자취를 하던 집은 똑같이 생긴 방들이 약스무개가 있었습니다

쪽방이라고 하지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그곳에는 나처럼 야간 학교를 다니는 사람도 있고 또 공사장에 나가는 아저씨도 있고

밤에 업소를 나가는 언니도 있고 시장행상하는 할머니도 계셨습니다

모두들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였습니다

월급을 타면 제일먼저 연탄집에 달려가서 50장씩을 주문했지요 친구랑 반반씩 내서......

어떤때는 연탄이 덜 말라서 축축 할때도 있는데 그럴때는 연탄 불도 잘 끄지고 가스 냄새가 엄청납니다

불안끄질정도로만 구멍에다 헌옷으로 막아놓고 들통가득 물을 얹어놓고 아침에 출근을해서 일을하고

집에 들리지못하고 곧장학교로 갔다가 수업 마치고 돌아오면 연탄 아궁이부터먼저보게됩니다

불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빨간불이 잘 살아있으면 그날밤은 따뜻한 아랫목에서 잘수있지만 어떤날은 다타서 하얀재만 남고 어떤날은 덜 타서 시커먼 연탄이 그냥있을라치면 보온시설안된 쪽방은 말그데로 냉골입니다

서둘러서숯으로 불을 지피고 겨우불을 살리고 어떤때는 옆부엌불이 좋을때는 불이붙은 연탄을한장 가져오고

새연탄을 한 장 주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인가 학교에서 돌아오니 또 불이 홀랑 끄져있었습니다

방이라고 들어섰지만 발이 시려서 있을수도 없고 늦은밤이라 살금살금 다른부엌을 염탐하다가 할머니 부엌에

아궁이 뚜겅을열고 집게로 연탄을 집었더니 화력이 너무 좋은지 두장이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않아서 안절 무절 하는데

“그기누구여”

하시며 할머니가문을 확 열더니 무서운 얼굴을 하고 계십니다

나는 겁이나서 우앙 하고 울어버렸습니다 친구도 울고 ,,,,,

갑자기 우는 아이들 때문에 당황한 할머니는 우리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오라하시더니 따스한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주셨습니다

“그래 또 불이 꺼졌더냐 많이 춥지 고생이 많구나 어린것들이 쯪쯪 고만 울고 이것좀 먹어봐라

하시면서 찐 고구마를 주셨습니다

하루종일 추운데 떠느라 더시린 텅빈배를 고구마로 채우고 그만 할머니방에서 잠이들고 말았습니다

아침에눈을 뜨니 할머니 양식도 부족할텐데 할머니는 김이나는 하얀 쌀밥에 오뎅국을 끓여서 상을 들여왔습니다

염채불구하고 우리는 한 그릇씩 비우고 우리방 으로 돌아왔습니다

냉골이던 우리방은 할머니께서 따뜻하게 연탄불을 피워놓았습니다

그날이후로 시장노점을 하시느라 고단하실텐데도 할머니는 우리 아궁이를 정성껏 살펴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불걱정하지 않고 따스하게 겨울을 보낼수 있었습니다

월급을 타는 날이면 할머니 께 생선이란 돼지고기를 사다 드리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할머니와의 인연이 길었던지 우리가 졸업할때까지 3년을 함께 지낼수 있었습니다

 

연탄불처럼 은근한사랑으로 우리를 지켜주시던 할머니를 지금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난방시설이잘된 아파트에서 한겨울에도 반팔옷을 입고 사는 세상이지만

연탄 한 장으로 따스한 겨울밤을 보내던 가난했지만 한겨울 군고구마처럼 따스한 정이 넘치던 그 시절이

한없이 그리운 밤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을 이름도 모르는 옆방 할머니

많이 많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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