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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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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울렁증...


BY 일상 속에서 2007-08-06

 

지난 토요일이었다.

당분간 매일같이 물리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도

나는 시간과 여건이 맞지 않아서 연 이틀을 병원엘

들르지를 못했다.


비가 오는 구질구질한 날씨 탓인지

발목의 통증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가슴에 있어야 할 심장이 발목에 들어있는지 발목에서 콩닥콩닥

뛰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참다못해서 아이들에게

오랜만에 찜질방에 갈까? 하고 물으니 좋단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 돈 들여가며

찜질방 가는 것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전에는 아니 작년까지만 해도 4계절을 막론하고 쉬는 날이면

찜질방에서 뒹굴던 마니아(?)였었는데,

삶이 그것조차 사치스럽단 생각이 들게 하는 바람에

발길이 뜸해지던 차였는데,

아이들이 에어컨 빵빵하게 돌아가는 휴게실에서 쉴 수 있는 것이

좋아선지 서둘렀다.


오후 5시쯤 도착한 찜빌방,

게릴라성 집중호우의 빗줄기를

뚫고 도착한 그곳.

하루에 한번씩 샤워를 함에도 불구하고

국수면발처럼 쏟아져 내리는 때들을 털어내고 나니 힘이 풀렸다.

가만있어도 묵직한 내 몸무게가 중력의 힘이 더욱 과중된듯

몸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10분에 한번씩은 ‘황토방’에 들어가서 땀을 쪽쪽 빼고

나와야 직성이 풀렸는데 한번만 들어갔다 나왔을 뿐인데,

땀과 함께 넋이라도

빠져 버렸는지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였다.


찜질이라도 실컷해서 발목의 통증을 삭히려 했건만,

컨디션마저 따라주질 않으니... 그냥 옥돌 대리석 바닥에 몸을 철퍼덕

누워버렸다. 그런 제 엄마 모습이 낯설었는지 아들 녀석

걱정이 태산같이 좌불안석이다.


“엄마, 많이 힘드세요?”

“아니...괜찮아. 엄마가 피곤이 좀 몰려서 그런 것 같다.”

“발목 많이 아프시죠?”

“응, 아포~”

“엄마, 그럼 소금 방에 있는 소금자루 좀 가지고 와서 찜질 좀

해드릴까요?“

“그것 밖에 가지고 나오면 안돼. 혼나.”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후다닥 뛰어가던 녀석이 아기 베게처럼 생긴

열에 달궈진 소금이 담긴 하얀 자루를 들고서 그것이 식을세라 갈 때만치나

급한 모습으로 달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걱정하던 대로 찜질방 안내 요원이 아들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것 가지고 나오면 안 되는 거야.”

악법도 법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하며,

어디든 규칙이 있으면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나였는데, 아들 녀석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한 것이 살짝 민망하려 했다. 그런데 녀석이

그 안내 요원에게 정중하게 한다는 말이,


“그것은 아는대요, 저희 엄마께서 발목을 좀 다치셨는데

몸이 지쳐서 찜질을 못하시겠다고 해서, 이렇게라도 해드리려구요.

제 자리에 꼭 갖다가 놓을게요.“ 란다.


깍듯하고 정중하게 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맘에 들었는지,

아니면 엄마를 생각하는 아들의 효심(?)에 감복(?)했는지,

두 말없이 못 본 척, 뒤돌아 가는 안전요원.


“아빈아, 네 생각은 엄마도 고맙다만, 어쨌든 그건 우리 사정이지,

규칙이란 한명이 어기면, 다른 사람들도 어기게

되는 거야. 규칙이 유명무실해지는 거지. 그러니까, 도로 가져다 놔.

엄마가 좀 쉬었다가 찜질하면 되니까.“


무슨 일이건 부모가 솔선수범해야 되는 법.

그때그때,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줘야 하는 성미를

유감없이 드러냈구만, 녀석이 평소와 달리 물러날 기미가 없어 보였다.


“엄마, 저도 그건 아는데요, 힘드신데 무리하시면 안돼요.

저는 규칙도 중요하지만 엄마의 건강이 제일 걱정 되요.

아저씨도 허락을 하신 거니까, 남들 보이지 않도록 수건에 싸서

가져올게요.“


그렇게 고집을 부리던 녀석은 지칠 만도 하건만 찜질 자루의 열기가

식을세라 분주하게 왔다갔다 제 엄마의 발목을 찜질해줬다.

시원하다 못해서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난방이 잘 되는 휴게실에

누워있는 제 엄마와 달리 오빠를 도와 함께 엄마를 챙기겠다는 딸과

아들의 이마에는 땀까지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지쳤는지 잠깐 어디 좀 다녀오겠다던 녀석이 사라지고 몇 분 후,

내 눈에 눈이 파랗고 노란 머리의 외국사람(男)의 모습이 보였다.


요즘 이 곳이 외국인지 대한민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거리엔

백인, 흑인, 황인족...등 눈에 띄게 외국인이 활보하고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찜질방에서 외국인을 보니 새삼스러웠다.


“아영아, 봐라. 외국인이 찜질방에 왔어.”

“와아~. 우리 영어 선생님도 외국사람인데...우리 선생님은 캐나다 선생님인데

저 사람도 캐나다 사람인가봐.“


많이 발전했다. 내 딸, 장하다 내 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국사람만 보면 인종에 상관없이 무조건 ‘미국’

사람이라더니, 이제는 ‘캐나다’라는 나라도 언급씩이나 하고...

아영이와 외국인에 대한 얘기를 몇 마디쯤 언급하고 있었을까?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아빈이가 내 품에 안기다 시피 달려 들어와서

부비며 한다는 말이,


“엄마, 저 영어 울렁증이 있나 봐요. 어떡해요...”

하는 거다.

자식이 뭐라는 건지.

좀 전에 외국사람이 보였는데 설마, 그 사람을 봤다고 이 호들갑이란 말이야?

아니... 사내 녀석이 외국인을 본 것만으로도 울렁증이

일정도로 심장이 약하다니...쯧쯧...


“야, 너 뭐야? 그동안 배운 영어는 어디다 쓰고 외국인을 봤다고

울렁증이 일어?“

엄마를 생각하는 갸륵한 마음에 흡족하던 마음이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마음을 녀석이 헤아리기나 할까...

“아뇨, 엄마... 외국사람이 저에게 뭐라고 계속 솰라솰라 해대는데

뭐라는지 알아야지요.“

“자랑이다. 그럼 천천히 말해달라고 해야지. 문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임마, 단어는 알거 아냐?“

“......”

“너, 엄마가 저 사람에 대해서 몇 가지 알아오면 돈 만원을 줄 거야.

알아 올 자신 있어?“

돈 만원의 유혹에 구미가 당겼는지 눈동자가 반짝이더니

질문이 뭐냐고 묻는다.


첫째, 어느 나라 사람인가?

둘째, 그 나라의 특산물이 뭔가?

셋째, 우리나라에 오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


세 가지 제시어에 녀석이 잠시 갈등을 하는가 싶더니,

타이밍 좋게 앞으로 지나가는 외국인을 향해서 냅다 뛰는거다.

‘그래, 자식 그동안 가르친 게 얼마야? 유치원 때부터 가르쳤으니 횟수로

8년이다. 그동안 뿌렸으니, 아들아 수확을 해 보거라.‘


외국인을 향해서 달려가는 아들의 마음을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녀석이 몇 초도 되지 않아서 다시 내 쪽으로 달려오는데

얼굴이 완전 ‘홍당무’가 아닌가...


“엄마, 3가지 질문에 만원이라고 하셨는데 제가 에누리해서, 2천원만

받으면 안될까요?“

“무슨 말이야?”

실망한 제 엄마의 목소리에 미안해졌는지 돈 2천원을 포기하겠단다.

그리고 이어서 한다는 말이,

“엄마, 저 사람 캐나다 사람이래요. 그 말 묻는데도 단어가 떠오르지를

않아서... 겨우 생각해서 물었더니, 제 발음이 좋았던지 바로 알아듣고

대답을 해주더라구요. ‘캐나다’ 라구요.“ 라나?


그 동안 가르친 학원비의 액수가 어찌나 아깝게 느껴지던지...

그 돈으로 적금을 붰으면 집을 한 채 샀겠구만,

헛 짓이야 헛 일이야...에휴...

앞으로 거쳐야 하는 배움의 길이 아주 험난하게 펼쳐진 내 아들의

고난들이 눈앞에 선하게 펼쳐지는 것 같았다.


영어 울렁증이 개그맨들의 우스갯소리 인 줄만 알았더니,

내 아들이 그 병(?)에 시달리다니,

울렁증까지는 아니지만...

사실, 난 외국인 기피증(?) 증이 있다.

대화 중에 섞어있는 외래어에도 혀에 경기가 일라고 하니...

아영이가 날 닮았듯, 아들 역시 틀림없는 내 아들이로구나.

그래도... 나는 아깝다. 그동안의 교육비와 앞으로 더 많이 소요될

액수의 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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