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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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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나한테 고자질을 한다.


BY 남편마음 2007-01-19

 

아내가 나한테 고자질을 한다.

 

“여보, 저 녀석 또 잊어버리고 왔어\"

 

“이게 도대체 몇 번째인지 모르겠네\"

 

날씨가 쌀쌀해져 털모자를 쓰고 간 둘째 녀석이 또 모자를 잃어버리고 왔나보다. 평소 별로 덜렁거리는 타입이 아닌데도 녀석은 새로 사 준 장갑을 짝 잃은 외기러기로 만들거나, 아예 장갑의 존재조차 모르고 집으로 귀환하기를 여러 번, 모자는 벌써 몇 개째 잃어 버렸고, 때로는 학교에 윗옷을 벗어놓고 오기도 한다. 오래 전에는 등교 시간이 늦어 바삐 차를 태워 학교까지 태워다 줬는데, 내리면서 이놈이 하는 말, “아빠 내 가방 어디 있죠?” 그날 지각 했다. 그나마 불알은 지 몸에 붙어있길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맨 날 아내가 떨어진 불알 주우러 다녔을 것이다.

 

잃어버릴 때마다 녀석에게 자기 물건 잘 챙기라는 다짐에 다짐을 받아두었지만, 오늘아침 쌀쌀한 날씨에 아내는 그냥 민둥머리로 등교하는 아들놈에게, 내가 스키 갈 때 썼던 모자를 씌워주었는데, 녀석이 또 그걸 잃어먹고 들어 온 모양이었다.

 

“아니 잃어버렸다면 잃어버렸다고 솔직히 말 할 것이지, 분명히 쓰고 왔다고 

딱 잡아떼니, 너 지금 잃어버리고 와서 엄마한테 거짓말하는 것 아냐?“

 

유능한 기관총 사수처럼 아내는 속사포로 아들에게 쏴 댄다.

 

녀석은 왕방울만한 눈을 똥그랗게 뜨고 억울한 표정으로 엄마에게 항변한다.

 

“아니 예요, 정말 쓰고 왔단 말예요\"

 

“쓰고 온 모자가 어디로 도망가니, 모자에 발이 달렸니 손이 달렸니,

니가 쓰고 와서 니가 벗어놨으면 니가 알지 누가 아니?“

 

아들은 겨우 응사를 한 방하고, 아내가 무차별로 쏴 대는 기관총에 벌집이 되어 버린다.

 

사춘기에 들어선 둘째 녀석, 목소리가 삐약삐약 하는 병아리에서 중병아리로 넘어가는 중인지, 사료 먹다 목 쉰 닭처럼 걸걸하는 목소리와 코밑에는 애지중지하는 거뭇거뭇한 염소수염이 몇 개 났지만, 녀석이 하는 행동은 아직 초등학생 수준이다.

 

아내가 고자질을 한 뜻은(고자질은 나쁜 것이라고 중학교 때 우리가 배웠다), 이제는 자기가 말해서 고쳐지지 않으니, 나에게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야단을 치던가, 아니면 사랑의 매라도(말이 사랑의 매지, 어른들이 자신의 폭력을 미화하는 것이리라) 휘둘러서 한참 토실토실한 살 오르는 녀석의 엉덩이에 물리적 자극을 주라는 주문이다.

 

한마디로, 이제 자기가 좋은 말로 하면 먹혀들지 않으니(자기는 선한 사마리안 역을 했고), 좀 따끔한 자극을 주라는 악역을(사마리아에 나타난 강도) 부탁하는 것 이었다.

 

“너 일루 와 봐!\"

 

목소리의 톤을 깔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소파에 앉아, 엉거주춤 서 있는 둘째 놈을 불렀다. 벌써 딸내미는 이상한 기류를 감지하고, 슬금슬금 숙제하던 것을 싸가지고 이층 자기 방으로 올라간다. 둘째 놈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왕방울만한 눈을 불안하게 굴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너 모자 학교에서 가져왔어, 아니면 잃어 버렸어?”

 

둘째 녀석은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목이 메어가는 소리로 대답한다.

 

“가져왔어요, 잃어먹지 않았단 말예요”

 

“가져온 모자가 그럼 어디 가니? 니 방에도 없고, 현관에도 없고,

가방 속에도 없고, 니 머리에도 없고, 니가 말해봐 그럼 모자가 어디 갔니?”

 

검사가 피의자의 알리바이를 추궁하듯, 아내는 쉴 틈을 주지 않고 “따따따따!“ 공업용 미싱으로, 혹시나 유리한 증언이 나올 새라 항변하는 아들의 입을 꼬매 버린다. 드디어 억울함에 지쳤는지, 아님 자신의 거짓을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려는지 녀석의 눈에선 눈물이 떨어졌다, 그리고 팔뚝으로 눈물을 훔치며.

 

“나는요.”울먹울먹. “분명히요.” 울먹울먹. “가져왔어요.” 울먹울먹.

 

아들은 울먹이며 항변을 하고, 날이 새파랗게 선 검사는 알리바이와 증거의 부재 그리고 전과를 들먹이며, 울먹거리는 놈에게 자백을 하라고 몰아붙이는 것 이었다. 평온하게 소파에서 석간신문을 보던 나는 갑자기 이상한 사건에 휘말려 들어가 버렸다. 여태 특별하게 거짓말을 한 전과가 없는 아들놈을 믿느냐, 아니면 서슬이 퍼런 검사의 말을 믿느냐, 나는 진퇴양난에 빠져 버렸다. 이래서 판사라는 직업이 힘들다고 하는구나. 아들놈 말을 믿자니, 혹시나 이놈이 모자를 여러 개 잃어버린 과거를 캄프라치 하기위함 이면, 거짓말을 용인한 것이 되고, 그렇다면 이 녀석은 거짓말의 단맛을 톡톡히 볼 것이고, 앞으로 비상시에 또 안 써먹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는가? 또 아내의 말을 믿자니, 만약 아들놈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이 나중에 밝혀지면, 재판관의 권위와 사법부의 체신은 그야말로 서리 맞은 배추가 되 버리는 것이 아닌가?

 

“거 봐, 당신 내말 들으니까 손해 본 것 없잖아!”

 

라고, 예전에 아내가 나에게 했던 말이 정자나무에서 울어대는 쓰르라미처럼 귓가에 맴맴 거렸다. 또 울먹이는 녀석의 왕방울만한 눈이 자꾸 진실을 말하는 것 같아, 나는 그만 사면초가에 빠져 버렸다. 아내가 야속했다, 왜 나를 이런 곤란한 상황에 몰아넣는가? 거짓의 확실한 증거를 잡아서 나에게 넘기면, 그저 나는 사랑의 매로 아들을 사랑만 해주면 쉬운 일을, 어찌 증거도 수집 못하고 범인이라 잡아 와 나에게 악역을 밀어 붙이는가?

 

어찌해야 진실을 밝힐 것인가? 아내는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먼저 코부터 본다, 그리고 쪼금이라도 낌새가 이상하면 “저 봐, 코가 벌룸 거리잖아!” 라고 몰아붙인다. 그럼 나는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이상하게 코에 힘이 들어가고, 나도 모르게 씰룩거리게 된다, 미칠 일이다. 그렇다고 아들놈의 코가 씰룩거리는 것의 유무로 유무죄를 가리기엔 너무 장난스럽고, 또 나에게는 비교적 정확한 방법이나(미칠 일 입니다), 아들 녀석에게도 같은 확률의 방법이라는 것이 검증이 되지 않았기에 써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판사들이 곤란 할 때 하는 것처럼 휴정을 내렸다.

 

“좋아, 너 그럼, 학교에서 모자를 가져 왔다면, 분명히 집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한 시간 내로 찾아와”

 

이야 말로 명 판결이 아닌가, 녀석에게는 일단 찬찬히 생각 할 시간을 주고, 아내에게도 시간을 줘서 뺨맞은 사람처럼 울그락 불그락 해진 얼굴색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면, 좀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겠나? 이 녀석이 만약 거짓말을 했다면 지금 시껍을 먹는 중이고, 한 시간 동안 모자를 찾는 시늉이라도 하며, 내가 왜 그랬을까, 그냥 잃어버렸다고 할 걸, 이러한 반성을 하지 않을까? 사실 학교 다닐 때 나도 거짓말 많이 했는데, 진실을 추궁당하는 것이 얼마나 진땀나는 것 이었던가? 그냥 죄의 대가를 받고나면 속이 편하고, 나중에 점점 대담하게 양심을 속이는 것 아님가? 이런 잠복기가 범죄자로선(?) 고통스러운 회개의 시간이 되리라.

 

그때 “띵동!“ 하며 벨소리가 난다, ”아 참! 옆집 영이 아빠가 온다 했지!“

 

둘째 놈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구세주가 온 것이다, 다만 몇 시간 이나마 자신을 구원 할 메시아가 환한 웃음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니 안 반갑지 아니할 수 없지 않은가? 메시아의 출현으로 집안의 기류는 다시 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했고, 아내는 울그락 불그락했던 얼굴 표정을 칠면조처럼 싹 감추고, 아들놈의 메시아를 맞아들인다. 영이 아빠와 이런저런 이야기, 그리고 느긋하게 맥주 한 잔, 아마 나도 모르게 은연중에 시간을 끌었는지도 모른다.

 

애들이 사춘기로 들어서고, 자기 할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 될 나이가 되니, 부모인 나로서는, 애들의 사생활이나 공부 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자율적으로 하도록 놔두고 싶은데, 아직 까지 아내는 애들에게 요래라 조래라, 이거다 저거다, 세수해라 밥먹어라, 샤워해라, 피아노 쳐라, 잠자라, 이 옷 입어라, 이 신발 신어라 하나에서 열까지, 누구 표현대로 조선간섭(주) 다 하고있다.

 

아내에게 언제까지 애들에게 간섭을 할 것인가를 물어보았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대학졸업? 군대제대? 결혼 전까지, 아니면 결혼해서도? 이제 저 나이가 됐으면 본인이 스스로 판단해서 할 수 있도록 해야 되지 않겠어? 언제까지 간섭 할건데? 끝까지 간섭하다 갑자기 우리가 죽으면 애들이 갑자기 혼자서 잘 하겠어? 이제 애들도 컸으니까 본인 자신이 판단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하잖아. 그랬더니 아내의 대답은 간단하다.

 

“그래두..”

 

영이 아빠가 돌아가니 열 두시가 넘었다, 둘째 놈은 한 번 얻은 구원의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헤어날 수 없는 불구덩이 지옥으로 떨어짐을 느꼈는지 자기 방으로 들어 가 자는 척한다. 그냥 미제 사건으로 남겨졌으면 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아내도 거기에 대해서 일언반구 안 한다.

 

아침은 언제나 활기차고 바쁘다, 부엌에선 쉴 새 없이 달그락거리고, 화장실 물내려가는 소리, 퉁탕퉁탕 계단 내려오는 소리, 가방 챙기고 식탁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고, 먼저 먹은 사람은 일어서고, 옷 입고, 다녀오겠습니다! 하며 인사하구,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전투를 할 때 서로 소리치고 손짓하며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것과 흡사하다. 식사를 마치니, 모두 바삐 그날 하루의 임무를 위한 준비를 위해 왔다갔다 동분서주한다. 둘째 놈이 소리친다.

 

“엄마 내 윗도리 어떻게 했어요?”

 

부엌에서 아내가 소리친다.

 

“니 옷 빨라고 세탁기에 넣어놨어, 다른 것 꺼내 입어!”

 

“나, 지금 시간 없어요, 엄마가 꺼내 주세요!”

 

“엄마 지금 도시락 싸느라 바뻐! 그러면, 세탁기에서 니 옷

다시 꺼내 하루 더 입어!\"

 

“칙!“ 하고 외치는 소리 뒤에 나는 무전기 소리만 안 났지, 영락없는 전쟁터다.

 

그때 “엥!“ 하는 소리가 세탁실에서 난다, 그리고 아들놈이 세탁기에서 꺼낸 윗도리를 한손에 들고, 다른 손에 모자를 들고 세탁실에서 나온다.

 

“아빠! 누가 모자를 세탁기에 넣었어요!”

 

그 소리를 듣자 도시락을 싸던 아내는 무릎을 탁치며 입을 딱 벌린다.

 

\"맞어, 내가 그랬네, 벗어놓은 양말냄새가 하도 나 길래 세탁기에

집어넣을 때 따라 들어 갔나보네..”

 

둘째 놈이 그제서야 얼굴이 펴지며,

 

“봐요, 내가 가지고 왔다고 그랬잖아요..\"

 

나는 죽다 살아난 기분 이었다, 만약 사랑의 매로 녀석을 타작 했다면 이 아빠의 체면은 어떻게 되었을까, 또 녀석은 얼마나 억울해 했을까?

 

아내는 또 제왕절개로 애들 낳을 때 했었던 전신마취의 핑계를 댄다. 당신도 제왕절개를 해보면 안다는 둥. 하지만 그 일로 아내의 경솔함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나는 둘째 놈이 진실했다는 것, 그리고 끝까지 자신의 진실을 굽히지 않았다는 것이 더 기뻤다.

 

2007년 1월 17일 

 

 

주) 조선간섭 : 단어의 내력은 분명치 않으나, 대한민국 방방곡곡의 일을 다 참견한다는 뜻으로, 아내들이 좁쌀 같은 남편이나 시아버지 그리고 시어머니들이 사사껀껀 간섭하는 것을 표현 할 때 사용하는 단어. 저작권은 도영님께 있는 것 사료되오나, 문제가 될 시 삭제 또는 팔도간섭, 삼천리 간섭, 백두대간섭 중 하나로 대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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