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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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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모음(안녕히....)


BY 개망초꽃 2006-12-18

겨울 냄새가 나는 12월의 오후

마지막 시험을 끝내고 수료식을 하기 위해 고양여성센터로 들어왔다.

석 달 반 동안의 결과는 썩 좋았지만

이 결과를 가지고 취업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고해서

가슴 한쪽이 허탈하게 물들던 가을은 가고 쌀쌀한 겨울이 되어있다.


두 가지의 필기시험과 두 가지의 실기 시험을 모두 통과하고 취업 상담을 했지만

내 게 주어진 일은 여성가장에게 임시로 주는 자격증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공공근로였다. 한 달에 칠십만 원의 보수와 점심은 내가 해결해야하는 그것도 석 달 동안의 임시직.

그러면서 하던 말, 성격이 내성적이지요? 그래서 어떻해요, 한다.

물론 나의 성격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성격을 줄 곳 가지고 살았다.

실제로 변하려고 노력을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고난 성격의 70%는

변할 수가 없다는 걸 나이가 들어가면서 알게 되어서

이제는 그 성격을 받아들이면서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과연 이런 질문을 하시는 본인도 자기 성격의 단점을 다 바꾸며 살고 있는 건지…….


내성적인 사람은 대인관계에 문제가 좀 있긴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성실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내 주어진 일은 성실하고 정직하게 한다는 장점.

그래서 종일 사무실을 지키며 열심히 할 수 있는 자신감은 있다.

밖에 나가서 영업을 하거나 사람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일은 맞지 않지만

모든 사람들이 영업일만 잘하면 사회는 돌아가지 않는다.

집안에서 살림을 잘 해줘야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 맘 편히 일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13명이 시작한 공부가 한명은 중도에 병이 나서 탈락을 하고

한명은 취업이 되어서 수료식에 참석을 못하고

내 짝꿍은 9일째 결석을 하고 수료식마저도 나오지 않았다.

조촐한 시골학교 졸업식 같다.


한 장씩 졸업장을 받고 선생님을 모시고 다 같이 식당으로 향했다.

그냥 헤어지기는 섭섭해 저녁과 함께 한잔씩 걸쳐야하는 것이 당연한 것.


불콰해진 얼굴로 그동안의 과정을 더듬으며 따스한 격려와 감사의 인사를 했다.

서로 같은 입장, 여성가장으로서의 아픔과 힘듦을 터놓으며, 가슴 한쪽이 뭉클해진다.

나도 앞날이 불투명하지만 이들도 앞날을 어찌 헤쳐나가야할지 아직은 모른다고들 했다.

여성가장이면서 나이가 사십대인 현실 앞에는 거센 물길과 험난한 산길이 놓여 있다.

건너지 않으면 안 되는 물길을 걷다가 휩쓸려 어디로 떠내려가 정착을 하게 될지 알 수 없다. 약도도 없는 산길을 걷다가 길을 잃어 주저앉아 울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린 물길을 건너야하고 산길로 접어 들어야한다.

우리에겐 손잡고 이끌어줄 동반자가 없기 때문이다.

홀로 알아서 나 자신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총각선생님도 걱정을 많이 해 주신다.

그래도 꿈을 잃지 마세요, 하면서 친구 이야기를 잔잔하게 펼져놓으셨다.

중학교 때부터 신문을 돌려 학교를 다녔다는 친구는 집이 없어 신문보급소 마룻바닥 다락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 친구의 꿈은 영화감독이었다고 한다.

다락방에 비디오를 책처럼 쌓아 놓고 영화감독을 꿈꾸며 어른이 되어서는

엑스트라로 시작해 영화보조 감독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 친구가 찍은 영화는 ‘조용한 가족’이라고 하면서

열심히 행복하게 꿈을 이루며 살고 있는 친구를 보며 선생님 자신도 꿈을 꾸며 산다고 한다.

선생님의 꿈은 교수였는데 교수는 되지 못했지만

컴퓨터를 가르치고 선생님 소리를 들으니 어느 정도는 꿈을 이룬 셈이 된다.


석 달 반 동안 공부를 가르치면서 학생들 성격을 파악하셔서는

한 사람 한사람에게 그 사람의 특징을 꼬집어 주셨다.

나에겐 너무 착하시고 조용하셔요, 한다.

제일 가르치기 편하고 좋은 사람이 나 같은 타입이라고 하셨다.

말없이 하라는 대로 따라주셔서 고맙다고 하신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내성적이라 어쩔거냐고 단점으로 꼬집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걸 장점으로 얘기해 주는 사람이 있다.

선생님의 칭찬에 술을 먹지 않았지만 쑥스러워 얼굴이 불콰해졌다.

고맙고 고생 많으셨어요, 선생님.......



다들 자신이 주어진 현실로 떠났다.

계속 연락하고 모임을 갖자고 했다.

직장도 연결해주자고 했고, 남자도 소개해 주자고 했다.


컴퓨터를 배우며 조각모음이란 단어가 좋았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열병을 알듯 잠을 못자고 밤을 새웠고

시험을 보면서 바람결의 문풍지처럼 손가락을 떨었고

의자에 오래 앉아 있어 엉덩이가 짜부러들었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봐서 충혈된 눈으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었다.

정학도 맞지 않고 반성문도 쓰지 않고 제적당하지도 않고

자격증을 모두 거머쥐고 무사히 졸업을 했다.


단체생활에 어긋난 발언을 자주 했지만 꿈이 많던 노처녀 연이씨,

더블클릭도 못하고 필기시험을 두 번씩이나 미끄러졌지만

끈질긴 노력으로 자격증을 취득한 순이 언니,

항상 일등을 놓치지 않고 나처럼 들꽃을 좋아하던 경이씨,

극과 극인 성격을 갖고 있지만 웃음과 붙임성이 남달랐던 은이,

오동통한 몸매와 귀여운 얼굴과 다정한 성격으로 모든 사람이 좋아했던 옥이,

언제나 눈웃음을 치며 휘발성 기억력을 가진 언니들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던 막내,

수녀님처럼 단정하던 영,

인상좋고 운이 좋아 좋은곳으로 취업을 한  진이,

남편을 일 년 전에 잃고 직장 생활도 안 해봐서 산입에 거미줄 칠 것 같다던 동갑내기 숙,

유모감각으로 수업시간에 웃음보를 터지게 만들었던 귀여운 큰언니,

무뚝뚝하던 목소리와 표정을 갖고 있어서 제일 접근이 어려웠던 희야씨

알고 보니 카리스마 넘치는 의리의 여장부였다.

모두 모두 가는 길이 다르지만 그 길에 꿈과 행운이 가득하길 바란다.

선생님도 안녕히......

 

푸짐한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칠해 놓았다.

겨울 냄새가 진동한다. 내가 가는 길에도 푸짐하게 눈이 내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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