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각이 새벽 세시가 훨 넘어섰다.
나는 지금부터 한시간 전에 잠을 깼다.
내 단잠을 깨운 그 수상스런 말소리때문에
똥마려운 강아지 행세를 한시간 넘게 하다가
바싹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컴을 켰다.
-지금은 다 해결하고 제 잠이 달아나는 바람에 이러고 있심다
낮에 많이 움직인 탓에 곤한 잠에 빠져서
세상모르게 자고있는데
이 세상을 알라는 듯이
잠결에 어디선가
도란거리는 사람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옆에서 열심히 세상이 떠나가라는 듯이
시끄럽게 고는 남편의 코골이 소리에
-평소에는 잘 안 고는데 술먹은 날은 꼭 코곤다-
간간이 섞여서 들려오는 이 수상쩍은 소리의 범인은
도대체 뭐냐?
그 소리의 범인을 확인하려고
나는 남편의 콧소리를 죽이기위해
곰곰이의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놓고
소리가 조금 조용해지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오잉잉!!!!
이거는 분명히 내 딸목소리임에 틀림이 없는데......
그것두 초등학교 4학년짜리인 어디로 튈지모르는
엉뚱함과 생뚱맞음의 극치를 달리는 내 작은 딸의목소린데....\'
중간에 약간의 헛기침을 섞어가면서
뭔가를 웅얼거리는데.......
처음엔 큰 딸과 작은 딸이 같이 도란거리는 소린가
싶어서 가만히 들어보니 작은 딸의 목소리밖에 안들린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요즘엔 같이 자지않고
각자 제 방으로 들어갔었는데.......
갑자기 알지못할 걱정이 슬 ~ 되면서
잠이 확 달아났다.
난 발소리를 죽여서 조용히 작은 딸의 방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애가 놀랄까봐
문밖에서 조용히 소리를 확인했더니....
에그머니나!!!!!!
이건 또 뭔일인가?
이 아이가 새벽세시에 영어를 열심히 읽고 있다!!!!!!
이~~~~거는
이~~~~~거는
반가운 일이 아니라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옛말에
\"세상에서 제일 듣기좋은 소리가
내 논에 물들어 가는 소리와 내아이 글읽는 소리\"
라 했거늘 아이 글읽는 소리에
그것도 영어책 읽는 소리에 가슴이 이렇게나
투-욱!!!!!!!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다니.......
대낮에 책읽는 소리였으면야 내가슴이 왜 떨어지겠는가?
그건 세상없이 반가운 소리지
그런데 열살짜리 딸아이가 새벽에 불켜고
일어나서 누구 들을세라 방문닫고
소근소근 영어읽는 것을 생각해보시라
그게 얼마나 엄마 가슴 떨어지게 하는지......
그때부터 나는 딸아이방 문밖에서 귀붙이고 서서
오만가지 생각이 왔다갔다 했다.
\'혹 낮에 들어놔야했던 영어 테잎을 노느라고 못 들었나?\'
\'그래서 무서운 어미에게 혼이 날까봐서
지금 저러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얼마나 모질고 독한 엄마였으면
세상에 저 열살짜리 어린것이
새벽두시 반에 일어나서 저러고 있는걸까? \'
\'저렇게 새벽에 일어나서 해야할 정도로 내가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준 건 아닌지?\'
\'저러다가 아이가 병이나 나면 어쩌지?\'
\'몸 아픈건 약으로 낫겠지만 마음이 병들면 어쩌지?\'
\'엄마 몰래 해치우려고(?)하는 중인데
지금 문을 벌컥 열면 아이가 놀라겠지?\'
이런 저런 생각이 내 온 몸을 감싸면서
아이 방문을 열지도 못하고 방문앞에 서서
귀기울이고 듣다가 내방에 조용히 왔다가 하기를
열두번도 더하고
볼 일 보는 것도 지엄마 일어난거
아이가 눈치챌까봐 조용조용처리하고......
그렇게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서성거리다가 저 영어가 끝날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일각이 여삼추\"
라더니 시간이 왜 이렇게 더디 가는지......
.
.
.
그리고 한참후
아이가 놀라지 않게끔 조용히 노크를 하고
방문을 열었더니
아이가 배시시 웃으면서 웬일이시냐는 듯이
말똥거리는 눈으로 날 쳐다본다.
\'거 참 이상타 !!!!
저 얼굴은 엄마 몰래 뭘 해 치우려다가 들킨 얼굴이 아닌디???\'
아이의 편안한 얼굴을 보니
한편으론 마음이 놓이면서
또다른 한편에선 이제 그렇다면 이게 무슨 일이지 싶어서
궁금증이 스~을 ~쩍 고개를 쳐든다.
\"예하야
너 몇시에 일어났는데?\"
\"글쎄요, 한 세시쯤 일어났나?\"
\"아냐. 엄마가 니 소리 듣고 일어났는데?
-잠시 뜸을 들이면서 아이를 슬쩍 한번 쳐다본뒤-
근데 너 혹시 이 영어 테잎 어제거야? \"
\"아뇨. 이거 오늘 들어야 되는 건데요\"
조금의 흔들림도 없고 자신만만한 또랑또랑한 말소리다.
그런데 새벽에 일어나 오늘(?)이라니?
이건 또 목요일을 말하는 건지
금요일을 말하는 건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다시 확인 작업!!!!
\"아니이~~~~
혹시 목요일거를, 어제 거를 안들어서
엄마한테 혼날까봐서 엄마몰래 새벽에 듣는 건 아닌지하고?
안 혼 낼테니까 솔직히 고백해봐~~아~~~\"
아이가 불편해하거나 겁낼까봐 최대한 부~드~러~업~게~
그리고 친절하게 약간의 애교까지 섞어가면서
처절할 정도로 꼬리를 흔들며-지야 그걸 알겠냐마는-
물었더니,
\"아니에요. 어머니
어제 할일은 어제 다 했구요 이거는 금요일거라니까요!!!\"
나-갑자기 마음이 완전히 푸~우~ㄱ
놓이면서 이젠 정말 무슨 일인가 싶어서 궁금증만 남았다.
\"아니,
야~ 아~
금요일 걸 그럼 왜 새벽에 이러고 있는건데?\"
이 아이 내 물음에 너무나 태연한 얼굴로
너무나 간단히 대답했다.
\"아~ 그건요
자다가 갑자기 잠이 깼는데 잠이 안와서
그냥 영어 들었어요\"
\"허걱!!! 걱걱걱!!!!! \"
하느님 맙소사!!!!!!
.
.
.
여러분!
아이들도 잠이 안오거나
새벽에 깨인 날에는 이럴 수가 있나 봅니다.
아무리 그래도 열살박이 내딸은 너무 이상해요.
추서; 여러분이 혹 이글을 보시고 제 딸이 뭐~열렬한 학구파이거나
애살이 많거나 하는 걸로 오해 하실까봐서 써 놓는 건데요.
절대 그런 아이가 아니랍니다. 그런 아이가 아닌데 새벽에
공부(?)하니 엄청 놀랬더랬지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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