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라크 의회가 9살 어린이의 결혼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 시킨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668

병상 일지 1...


BY 일상 속에서 2006-11-09

 

인연이란...

내가 사는 대한민국엔 4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구들이 존재한다. 어느 순간 대뜸, 그 중 나와 인연이 닿는 사람들을 꼽아 보았다. 그래서 내려진 결론.

친인척 몇 십 명과 지인 얼마를 합쳐서 넉넉잡아 계산해도 천 명이 안 될될 거란 것에 도달했다.

인척이나 지인들 역시 생판 남이었던 사람들의 인연 된 만남으로 이뤄진 것이니 신기하고 귀한 존재들이다.


전생에 몇 천 번의 만남이 있었기에 현생에서 옷깃을 스칠 수 있는 인연이 된다니... 어느 순간부터 알게 되어 친분을 쌓게 되었으니 얼마나 귀한 만남들 일까.


어딜 가나 알게 모르게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은 많다. 시장에서 시내에서 백화점에서 식당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뭔가 나와 공통점이 있고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고서는 선뜻 마음을 열기란 쉽지 않은 일.

때론 이기적이고, 고지식하고, 고집스럽고, 독단적이 되기도 하는 내가 누군가를 대할 때, 날개 없는 천사가 될 때도 있다. 물론 상대에 따라서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다혈질인 내 성격 탓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나는 얼마 전, 세상 때로 잔뜩 시든 나의 마음을 잠시나마 깨끗하고 해맑던 옛날로 되돌려  주셨던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그 분을 소개하고 싶다. 


난 크고 작은 수술을 무려 9번이나 받았다.

지난 10월 24일. 9번째의 수술을 받기 위해 을지로에 있는 백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백병원 또한 나와는 깊은 인연이 있는 병원이다.

9번의 수술 중 6번은 이 곳에서 했었으니 말이다.

순간순간 징하게 내게 고통을 주는 고철덩이 몸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고달픈 삶에 회의를 느끼며 9번째 수술을 받기위해, 꿈에서도 다신 들르고 싶지 않은 그곳으로 또 다시 오게 될 줄이야...

 

수술하기 보름 전부터, 난... 한 번도 엄마와 떨어져 지낸 적 없는 나의 아이들에게 엄마가 없어도 지켜야 할 몇 가지 일들에 대해서 수없이 잔소리를 해댄 것 같다.

13살이 된 아들 녀석이야 좀 컸으니 한시름 놓겠지만 8살의 나이로 초등하교 2학년을 다니는 딸아이만 보면 왠지 목이 메이고 걱정이었다.


수술을 여러 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면할수록 익숙하기 보다는 너무나 빤한 수술 절차를 떠올리며 혼자 진저리를 쳐대곤 했다.

어른이기에... 엄마이기에...나 자신보다 더 나를 생각해주는 가족들이 있기에 겉으로는 태연한척 하면서...


아이들 때문에 입원한 다음 날 바로 수술 받을 수 있도록 틈틈이 병원을 들락 거려야 했다. 방사선 검사부터, 혈액검사, 심전도에 이르기까지...

그런 수고를 하고 나서야 드디어 수술 스케줄 날짜가 잡혔다. 그리고 수술 하루 전에 입원을 했다.

11층 1113호... 요번에 묵었던(?) 나의 병실 호수다.

여러 번의 마취 덕에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머리가 건망증만 나날이 발전해설랑은 처음 병원에 입원했던 층수가 7층이었던 것만 생각나고 몇 호였었는 도통 기억에 없다. 두 달이나 생활했던 곳인데도 말이다.

그 다음에 입원했던 것은 층수 조차기억에 없으니... 곧 1113호도 잊게 되겠지... 이렇게 한심할 수가...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기에 내 자신이 제일 많은 고통을 받으며 산다고 들 생각한다.

나 역시 한심한 내 몸만 고통을 받는 거라 생각했으니...

1113호는 일반 6인실로 제일 저렴한 병실이다.


입원 수속을 하는데,

“이게 제일 싼 병실이죠?”를 여러 번 강조하니 곁에 있던 남편의 얼굴이 홍당무만큼이나 붉게 변하더니 이내,

“이 사람이... 병실 빈 데 있으면 아무데나 들어가면 되지 왜 그렇게 궁상을 떨어?” 한다.

“하루를 있더라도 편하게 있고 싶어서 그래. 비싼 병실에 들어가 봐. 좋지 않은 머리로 병실 계산 뽑다보면 없는 혈압까지 생겨날 걸?”...


우리 둘의 대화를 고스란히 듣고 있던 원무과 아가씨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게 제일 싼 병실이에요.”


수속을 밟고 씩씩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에 올라갔다. 그리고 당도한 병실 앞, 심호흡 한번 크게 한 나는 터벅터벅 발걸음도 가볍게 병실로 들어갔다.

밖의 도심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창가로 빈 침대가 있었다.

“환영 합니다~”

“환영해요~”


병실에 있던 보호자들이 나를 반기며(?) 환영을 했다.

나또한 환한 미소로 환영에 답례를 했다.

알아서 척척 환자복으로 갈아입고서 서랍장에 준비해온 필수품을 하나둘씩 정리하는 내게 누워있던 환자들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새댁은 멀쩡해 보이는데 어째 병원에 들어 왔댜?”

“그러게요. 겉으로 봐서는 어디 아픈 환자 같지는 않구먼...”

3~4개는 기본으로 링거를 꽂고 나쁜 피를 뽑아내는 주머니와 소변 주머니까지 달고 계시는 몇몇 환자들과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시는 환자 모두가 지긋한 연세들이셨다. 50대 중반에서 70대까지 계셨으니 주부 경력 14년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새댁이라 불리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8번이나 수술을 받아서 몸 이곳저곳이 칼자국뿐인 걸요. 오늘까지 신나게 웃고 내일부터 죽는다고 울어 댈 텐데... 이해해 주실 거죠? ㅎ ㅎ ㅎ...”

“뭐?!! 젊은 사람이 벌써 9번째 수술이란 말이여? 워메 징한 거...”

밝은 내 목소리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신 여러분들의 말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난 몰랐다. 내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은 것도 모자라서 슈퍼타이 앞에서 거품 풀고 냉동실 앞에서 부채질 했다는 사실을...

아무리 수술을 많이 한 나였지만 한 번의 고통수술을 받은 후에도 수차례 병원을 드나들며 매번 고통스런 치료를 받아야 하는, 병실식구 모두가 대장암, 직장암, 췌장암과 싸우고 계시는, 완치가 되기까지 고통스런 긴 나날을 견뎌 내셔야하는 분들이란 것을...

그 사실을 시간이 조금 후에 자연히 알게 된 나는 다시 한 번 환자 한분 한분을 주의 깊게 관찰(?)하게 되었다.


나의 바로 옆 환자분은 대장암 2기 수술은 받으신 분으로 여호와의 절실한 믿음을 갖고 계셨다. 수술 후 빈혈이 심한데도 교칙 상, 수혈을 않고 고집것 조혈제를 맞고 계신다고 하셨다. 창백하고 누리끼리한 피부색을 한 그 분은 수술한지 한 달이 넘도록 못 일어나고 계신다니 나로썬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 옆에 계신 분은 나보다 한 시간쯤 먼저 입원하신 분으로 직장암 수술을 받고 충청도 서산서 벌써 두 번째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2주일 간격으로 입원하셨다는데 늘 식사 때마다 특식을 시키고도 따라주지 않는 입맛으로 울상을 짓곤 하셨다. 중환자실에 근무한다는 조카 덕에 퇴원하는 순간까지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셨던 분이다.


그 분과 마주보는 침대에는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는 중국 분으로 상계 백병원을 오가며 방사선 치료와 함께 항암 치료를 받는다는데 벌써 4번째 입원이란다. 10살 이상 나이차로 뵈는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는 한국 분으로 자상한 것은 물론이요, 정성을 다해서 부인의 수발을 들어주셨다. 아주머니는 중국서 가져왔다는 해바라기 씨를 틈틈이 까먹으며 무료함을 달래곤 하셨다. 한국말도 곧잘 하셨다. 단지 우리와는 색다른 눈썹 문신과 튄다싶은 애교머리는 같은 동양인임에도 불구하고 분명 차이나는 외모셨다.


그 옆으로 계신 분은 서산서 오셨다는 아주머니와 함께 엇비슷한 날에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는 대장암 환자로 입원한지 3일째로 2번째 항암치료를 받고 계셨다. 서산 아주머니와 공통점을 느끼는 듯, 가까이 지내셨다. 환갑을 훨씬 넘기신 느긋한 성품을 지니신듯 보였다. 점잖은 할머니는 을지로 근처에서 여관을 운영하신다고 하셨다. 


그 옆에 마지막 할머니는 67세의 연세로 어느 한 분이 들어오시기 며칠 전까지 병실에서 제일  왕언니(?)였다. 췌장암 수술을 받고 퇴원한지 며칠 되지 않아서 어쩌다가 대추나무 가지에 팔을 긁힌 후, 자신도 모르게 큰 볼 일을 보는 것을 시작으로 고열로 실신하셔서 제 입원을 하신지 한 달 가까이 되셨다는데 우리 중 제일 천진난만하신 분이셨다.

남들 고이 잠들었을 새벽 1~2시에 전화 통화하는 것은 물론이요, 항문 치료를 받는다는 이유로 남자가 있건 없건 발가벗은 아랫도리를 하고 이불 밖으로 나오는 통에 내 남편을 비롯한 몇 분의 남자 보호자의 얼굴을 달아오르게 만드시곤 했다.

다른 병실에 어떤 환자는 그분이 듣거나 말거나 손가락질하며 “저 할머니 푼수야.”라는 등, 막말을 퍼붓곤 했지만 함께 묵었던 식구들은 내색하지 않았다.

내가 입원한 날부터 퇴원하던 순간까지 자신이 다니는 절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셔서 늘 절 이야기를 하셨다. 절 사랑이 남다른 할머니는 항암치료 받기로 한 날, 절에 행사가 있다는 이유로 무단 외출을 감행하셨다. 항문이 아파서 바로 앉지도 못하시는 분이 전 날부터 병실에서 머리에 염색을 하고 돌아다니고 깨끗하게 목욕까지... 확실한 준비를 하셨다.

다음날 개인택시를 하신다는 할아버지가 들고 오신 노란 저고리에 굽 높은 흰 슬리퍼를 신고 병실은 나선 할머니... 그 모습이 압권이었다. 여러모로 보아 내 기억 속에서 쉬이 잊혀 지지 않을 것 같은 분이다.

내가 본 할머님은 결코 누가 말했던 것처럼 푼수가 아니었다.

어릴 적 못 배운 한으로 잔뜩 주눅 들어 사시는 영혼이 맑은 할머니셨다.

매일 건강을 생각해서 먹어야 한다며 게장 국물에 쓱쓱 밥을 드시는 것을 시작으로 과일과 요구르트, 주변에서 주는 어떠한 것도 마다하지 않고 드시는 식성 앞에서 제일 어린(?) 나로써도 무릎을 꿇을 지경이었다.


순진무구한 왕언니를 뺀 다른 분들은 강한 항암제 치료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못하셨다.


겉으로 멀쩡했던 나... 병원은 분명 건강한 사람도 환자로 만드는 특별한 기술을 지녔음에 틀림이 없다.

나는 시간 간격으로 정맥과 동맥에서 피를 빼가는 간호사와 의사 덕에 맥이 빠져서 이내 탈진한 사람마냥 침대에 나가 떨어져 버렸다.

보호자로써 곁에 있어야 할 남편은 병실로 병원 가운 입은 사람만 들어서면 밖으로 도망가지 일쑤였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른 뒤, 직장 생활 하시는 엄마가 시골서 올라오셨다.

눈가가 충혈된 것이 잔뜩 긴장한 모습이셨다.

왜 안 그럴까 수술할 때마다 곁에서 지켜봐야 했던 분이셨는데... 잘 둔 딸 덕에 병원에 질린 부모님은 웬만해서는 병원 문턱을 넘지 않으신다. 여러모로 난 부모님께 죄인이며 불효자식임에 틀림없다.


난,

이곳저곳 불량 많은 몸으로 병원을 수차례 들락거렸지만 암 같은 고질병은 없었다.

그런데... 이게 정말 끝이 될 수술일까...이제 성급한 조바심마저 든다.


다음날 수술을 받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하게 링거에 소변 줄까지 몸에 지녀야 했다. 수술실로 가는 침대에 오르는 순간 잔뜩 긴장한 엄마와 남편을 보니 참았던 눈물이 뜨겁게 내 볼을 타고 내렸다. 얼른 손으로 이불을 끄려 올렸지만... 눈치 빠른 엄마를 울리고 말았다.


“엄마... 미안해... 나 기다리며 걱정하지 말고 병실에서 좀 쉬고 있어. 자기도 걱정하지 말고 엄마랑 차나 마시고 있어. 잘하고 올게.”


마음을 가다듬고 애써 태연히 말했건만... 알았다고 대답하는 두 사람의 얼굴은 나보다 더 긴장한 상태였다.

씩씩하고자 그렇게 다짐했건만... 역시나 이론에 강하고 실기에 약한 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