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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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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일기(동해바다에서 온 꽃씨)


BY 개망초꽃 2006-04-07

어젯밤 우편물이 와 있다고 인터폰이 노래를 부른다.

잠옷 바지만 입고 있던 아들아이에게

“꽃씨가 왔을 거야, 받아 오그라.”


작은 상자속 봉투마다 꽃씨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접시꽃,금낭화,채송화,금계국,수래국화,끈끈이대나물,풍접초,코스모스…….

열 가지가 넘은 꽃씨봉투가 동해바다에서 헤엄쳐 왔다.

고마워라. 감사해라.


카페로 달려갔다.

카페 뒤편에 누구 것인지 모르는 함지박만한 화분 두 개가 삐딱하게 쉬고 있었다.

오랫동안 외로움에 떨고 있었던 화분에게 거름흙을 섞어 씨를 뿌렸다.

한 줄씩 나란히 뿌리고 흙을 살살 덮었다.

그랬더니 화분은 함지박 만하게 웃어준다.


카페 주변을 청소했다.

너저분하게 자란 잡초는 뽑아내고, 깔끔하게 자란 잡초는 그대로 놔 두었다.

이네들이 밭에 나면 잡초로 불리지만 이들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하나의 자연이다.

민들레꽃을 노란 단추라고 어떤 시인은 표현했다.

야생화가 길가에 많이 심어져 있는 걸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했고,

화원에 가면 야생화가 더 비싸게 팔린다.

풀들도 앞으로 대단한 가치가 있는 식물임이 틀림없다.


카페 앞 빈약한 나무 밑동에 마가렛과 물봉선화를 두 포기씩 심었더니

뭔 나문지도 모를 나무가 생기가 난다.

“저게 뭔 나무지? 너무 싹둑 가지치기를 해 놓아서 당최 모르시겠네.”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쁘다고 한마디씩 하면서 지나간다.

어떤 할머니는 화초를 팔라고도 하신다.

궁금증 초등학생은 귀찮게 말도 안 되는 걸 물어본다.

“이게 꽃 맞지요? 샀나요? 이름이 뭐라고요? 물봉선화요? 물?”

“예쁘냐?”

“예쁘긴 하네요. 저도 꽃 잘 기르는데…….”

“그럼…….지나다니면서 구경해라.”

그랬더니 대답도 안하고 가 버린다.


빈약한 나무 앞엔 올드락 카페가 있다.

옛 노래를 신청하면 그 자리에서 엘피판으로 틀어주는 곳이다.

카페하는 친구랑, 친구 남자친구랑, 엄밀하게 솔직하게 말하자면 친구애인이랑

카페 계약할 때 술 한 잔 하던 곳이다.

그 올드락 입구엔 목련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꽃망울이 열리지 않은 상태로 입을 꼭 다물고 있는데,

일주일만 지나면 무겁게 내숭 떨던 입을 열 것이다.

그러면 카페 앞에 나가 한참씩 목련 입을 보며 내 입도 헤벌럭 벌어질 것 같다.


꽃씨가 올라오면 그들을 카페 옆 잔디주변에 뺑둘러 울타리처럼 심을 생각이다.

그러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입을 헤벌럭 벌리고 봐 줄런지…….

그것보다 먼저 내가 바라는 건 뽑아가지 말길 바라고,

밟아 짓이기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번 장사를 할 때 그런 일들을 많이 겪어봐서 걱정이 앞선다.

 

동해바다에서 날아 온 꽃씨가 북쪽 일산에서 우뚝 성장하고 있다는 일기를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