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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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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 오는날


BY 雪里 2006-01-13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을 열었다.

비가 내리고 있다.

 

그것도 여름비처럼 제법 굵은 무게를 한 빗방울이 

얼어붙은 연못위를 이미 많이 녹여내고는

그 위에 수없이 많은 무늬를 그려대고 있었다.

 

\" 맞았네~~정말 비가 왔어요. 내 허리가  그래서 아팠던 거라구요.

지금도 몸이 여~엉 안 좋아~~~\"

 

몸이 일기예보를 하고 있다는건 늙는다는 증거 일진대,

그것보단 내몸이 어느새 그걸 맞추어 가고 있다는것에 신기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더 누워 있어~~~\"

 

그렇게 말한 다고 그럴순 없었다.

내가 누워 있으면 자기가 아침을 해 먹는 다면 모를까,

그냥 굶고 앉아서 애궂은 티비 리모컨이나 눌러 댈게 뻔한데.

 

아침 안개가 심한 걸 보니 푹한 날씨려나 보다.

내려뵈는 게 겨우 저 아랫집 지붕까지다.

 

엊저녁 삶아 놓은 씨라기로 된장국을 끓였다.

애호박 말린걸 불려서 들기름으로 볶은 나물에다 김치. 

둘이 먹는 식탁은 간단할 수 있어서 좋다.

 

언제나 끼니때만 되면 반찬걱정을 하고

늦게 들어 와서도 다음날 아침  그 시간이면 영락없이

대가족의 식탁을 차려내야 했던게

결혼과 함께 시작한 내 생활의 일상이었는데,

거기에 비하면 소꿉 놀이인 지금의 일들을  힘들다고 하면 죄 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눕고 싶은 나를 일으킨다.

 

우산을 쓰고

엊저녁 먹은 삶은 고구마껍질 그릇을 들고 닭장으로 갔다.

평소엔 남편이 늘 하던 일이다.

 

반가운게 별식(?)인지 주인 인지는 몰라도 닭들이 몰려 든다.

멋있는 깃털을 가진 수탉이 커다란 별식을  차지하고는 암탉을 부른다.

 

그런 닭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남편에게

\" 저런 닭들에게 자기도 배워요, 마누라  챙기는 것좀 봐요.\"

하면서 외아들인 남편의 습성을 꼬집곤 했다.

 

\"잘봐, 잘 보라구. 그 다음을  잘 보구 있으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걸~!\"

 

그랬다.

수탉은 먹을 것을 건네고 나면 꼭 교미를 하려고 덤벼 들었다.

사랑이라기보단 욕구를 채우기 위해 먹고 싶은 걸 참는 것 인지도 모를 일이다.

 

\"누가 그거 말이예요? 먹고 싶은 거 참고 마누라에게 건네는 거 까지만  보라구요~!\"

고집이라면 한가닥 하는 내가 늘 하는 말이다.

 

금계 한마리는 제법 붉은 빛깔이 많이 나와 있다.

다른것들은 아직 까투리 색깔을 그대로 하고 있는데

숫컷의 고운빛깔을 보고 싶어 키우는 닭에 숫컷이 겨우 한마리면 어쩌나 ~!

 

난쟁이 닭인 자부 한쌍은 겁이 많은 데다 사이도 좋다.

꼭 둘이 붙어 앉아 있고 내놔도 같이 다닌다.

비가 오니까 그런지 훼에 나란히 앉아 있다가

트이지 않은 목소리로  수컷이 \"껙 께~~겍~~\" 한다.

목을 길게 빼고 온 힘을 다 하는 것 같은데도 체구가 작으니 목청이 찢길것 같이 답답하다.

 

큰 닭이 울더니 오골계도 따라 운다.

새벽이 아닌데도 서로 연달아 소리를 내는 것은 노래를 부르는 것도 같고,

목청 자랑을 하면서 암컷들의 관심을 끄는것 같기도 하다.

 

이때 갑자기 듣는이의  가슴까지 시원하게 내려 쓸어 주는 듯한

루치아노 파발로티의 노래하는 모습을 생각해낸 내가 쌩뚱맞다는 생각에 혼자 웃었다.

 

뒷산 음지 자락에 쌓인 눈들을 갈잎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비는 계속 내린다.

길이 미끄러울 염려를 안 해도 될만큼의 기온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

 

늦은 아침을 먹은 겨울 낮은 짧기만 하다.

큰 움직임이 없었는데도 배속이 허하다.

이상하게도 나는

일을 힘들게 하면 배가 고프지 않으면서 일없이 놀고 있으면 배가 고프다.

벌써 점심때가 되었나보다.

 

\"점심 시간이네요, 점심 먹읍시다~  간단하게 먹자구요~\"

 

빨간 홍시 네개와  찐 고구마 그릇이 통째로 얹힌 쟁반을 들고  남편 옆으로 다가앉는 나.

 

쟁반보고 내 얼굴 올려보고......

 

어이 없다는 표정이지만 모른척 해 버리고는 연시 껍질을 까면서 들이민다.

 

\"이게 웰빙 식단이라구요. 금방 저녁 될텐데.....\"

 

빗줄기가 많이 가늘어졌다.

친구가 보내준 책을 들고 길게 방바닥에 엎드린다.

 

오늘 같은 날은

그냥 집에 있으라고 이슬비가  내리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