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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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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와 추억 몇 토막(1)


BY 개망초꽃 2005-11-03

내가 처음 수락산을 올랐던 날은 몇 년을 거슬로 올라가야 한다.

그 땐 연달래 꽃이 피던 완연한 봄날이었다.

연달래 꽃이 봄바람에 휘날리던 수락산을

내 추억 한 귀퉁이쯤 연분홍빛으로 남겨 두었었다.

수락산에서 처음 만난 친구가 갑자기란친구다.

이 친구는 보기보다 엉뚱하고 수락산을 가던 전날 갑자기 전화를 해서 산에 갈래? 해서 준비도 없이 수락산 밑에서 김밥 사들고 산엘 올랐다. 더운 봄날이라 힘들어서 칭칭거렸는데 연분홍 철쭉을 보니 기운이 돌았다. 친구도 수락산하면 연달래의 추억이 삼삼하다고 한다.


봄 반대의 계절은 가을일 것이다.

나뭇잎이 자신의 색으로 발가벗는 시월말경에 수락산을 두 번째 오르게 된다.

안개같은 금요일 비로 오늘은 추워질거라는 일기예보로 인해

두꺼운 겨울 옷을 챙겼는데 생각외로 날씨는 따스했고

겉옷은 종일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수락산은 릿지가 섞인 산행이었다.

반듯하게 잘 지어진 약사사와 산사 가장자리로 단풍이 검붉게 타오르던 나무를 바라보며 

초입을 지나고, 탱크바위를 우회했다.

탱크가 나온김에 추억 한 토막 얘기하고 지나가야겠다.

그때가 초등학교 일이학년쯤이었다.

하교 길 냇가에 탱크가 한 대 놓여있었다.

우리들은 말로만 듣던 탱크라는 것이길래 길가에서 한 줄로 쭉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탱크 안에서 군인아저씨가 나오더니 여러 아이중에 하필이면 겁많는 나를 번쩍 안고 탱크 속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들어가는 입구가 어디였는지 기억도 없다.

겁에 질려서 말도 한마디 못하고 그렇다고 울지는 않았다.

군인아저씨는 늘상 보던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강원도 고향은 학교 옆에 군대도 있었고, 길가엔 군용트럭이 신작로를 점령하고선

여름엔 목욕도 하고 볕 좋은 날은 신작로 길에 앉아 지나가는 우리들에게 눈웃음을 치던 아저씨들이었기에 그리 무섭지는 않았다.

탱크 속으로 들어간 아저씨는 나를 안고서 복잡한 기계들을 설명 해 주었는데,

기억에 남을리가 없고 단 한 가지 안에서 밖을 볼 수 있는

망원경 같은것만 기억속에 있을뿐이다.

말 한마디 못하고 얼간이 같이 얼어 붙어있는 나를 보며 웃어주던 군인아저씨의 착한 얼굴, 껌과 초코렛을 내 손에 들려주고 군인아저씨는 내게 손을 흔들어 주었는데,

난 손도 흔들어주지 못했다 낯설음을 한 손에 잔뜩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하듯 내가 바위만 낯설어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살면서 뭐든 겁을 먹고 낯을 많이 가려  어릴적부터 울보였고 겁쟁이었다.

우회를 하면서 쳐다본 탱크바위는 어릴 적에 본 탱크랑 햐~~이리 똑같을 수가...

탱크바위를 바라보며 과일을 까먹고, 초코렛을 먹었다. 달콤하고 향긋하다.

그런데, 군인아저씨가 준 초코렛 맛 기억은 전혀 없다.



50미터슬랩을 지나 정상에서 내려다 본 가을 나무들은

제각각 자신의 색으로 돌아 가 있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초록색은 나뭇잎 본래의 색이 아니라고 한다.

가을이 되어 나뭇잎들은 자신만의 색으로 돌아가서 생을 마감하고 내년을 위해 땅으로 떨어져 거름이 되는 것이다. 이러하듯 자연은 자신이 태어난 땅을 위해 기꺼이 몸을 내동댕이쳐 겨울을 나고 봄에 다시 찬란하게 태어나는 것이다.

수락산의 나뭇잎 본래의 색은 갈색이거나 주황이거나 노르스름하거나 했다.



수락산은 꼿꼿하게 서 있는 바위와 낭떠러지 바위가 많은 편이었다.

“엄마야~~으흐~~” 나만 유난맞게 티를 냈다.

어디로 발을 딛고 내려가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 이렇게? 아닌데...아휴~~” 나만 못 내려간다.

바위를 탄지 석달이 되어가는구만 ... 처음 온 날과 그리 달라진 것이 없다.

밧줄을 잡고 내려가는 바윗길도 마찬가지다.

무섭다는 소리를 수도 없이 해서 다들 놀리고 웃는다.

내 덕분에 다들 웃었지요? 웃은 값 내셔들~~~

속으론  내숭이라고 흉 받을지 모르지만 전 절대 내숭 아니다.

원래 심장이 얄팍하고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그런다.

흉봐도 돼. 산에 오르면서 바위만 보면 무서워하니 결점 중에 결점인 거 다 알거들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