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에는 벼들이 익어 가고, 밭에는 붉은 고추가 막바지를 바라보고 있을 시기이다. 한창 바쁘고 고되게 일을 하고 있을 내 어머니의 힘겨움이 전해져 온다.
고추는 따서 잘 말려 딸과 아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고, 무르익은 벼는 햇쌀을 만들어 한포대식 주어야 하고, 심어 놓은 배추론 김치라도 담가 주어야지 하며 속으로 계산을 하며 이리저리 동서남북 뛰어 다니면서 다리가 아파도 그 순간은 잊어 버린채 미친사람처럼 일을 하고 있을 이 가을에 당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쓰이고 가서 밥이라도 해 줄 수 없음이 아려 온다.
두 고개의 재(산언덕)를 넘어 학교에 갔다 오다 보면 넓디 넓은 우리 논이 나오고 그 넓은 논에서 허리를 구부정 거리고 벼를 베고 있는 엄마,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엄마"
하고 부르면 이내 듣지 못하고 난 두번을 더 불러 보게 되고 그동안 몇시간을 구부리고 있었을 허리를 힘겹게 펴시면서 엄마가 하는말.
"희야 !! 이제 오나. 배고프제. 여기 고구마 있다. 먹고 가라."
한 걸음에 물기가 남은 질퍽한 논길을 뛰어 간다. 엄마의 목소리가 너무도 좋아서.그래서 뛰어 간다.
"아이구 우리 길쭉베이 거기 고구마 먹어라."
고구마 맛이 정말 꿀맛이다. 어린 나의 마음에 학교 가는길에 우리 논이 있다는것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예 아버지. 아버지 오늘 저 상탔어요. 우등상 받았어요."
"아이고 그래 함 보자. 아이구야. 우리 선희 땀에 나중에 비행기 함 탈레나. 여기 보소 우리 막둥이 상탔니더이.."
아버지의 허허로운 행복한 웃음이 단고구마를 입에 물고 있는 나의 마음을 달콤하게 만들고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한걸음에 달려 왔지만 정작 나를 반겨 주는 아버지의 나를 향한 마음 씀이 나의 아버지는 나의 어머니 보다 자상하구나 하고 생각되어지던 내 마음의 아련한 추억들.
"얼른 먹고 먼지 나니까 집에 가거라. 가서 밥만 좀 안쳐 나라.알았제.
엄마의 부탁에 얼른 고구마를 먹고, 다시 30분의 길을 혼자서 토닥토닥 거리며 걸어 보다가 큰 길로 가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좁다란 길이 무섭지만 지름길을 택해 두려움을 감수 하고 또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그 지름길로 가면 집에 빨리 갈 수 있고, 또한 갖가지 가을의 열매가 풍성하게 나를 반겨 주니 좋기만 하다. 하지만 그 열매는 모두 주인이 있는 것이니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을에 두집 밖에는 없는 크다란 호두 나무의 호두는 태풍이 와야지 만이 바람에 떨어진 것 하나 주울 수 있고, 우리집에만 없는 감나무의 달디단 주홍빛 탐스러운 감홍시도 떨어져 있지 않음 먹을 수 없는 노릇이고, 그 나마 떡 벌어진 송이에 담긴 밤알 들은 지나가는 산들바람에도 간간히 떨어지니 내가 지나갈 무렵이면 여남은개는 주울 수 있기에 그것이라도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주워서 호주머니에 넣었다가 조금 잘 생긴 놈 두어개는 아버지 줄려고 남겨 두고 나머지는 집에 오는 길에 그 작은 입으로 겉 껍질을 까고 다시 쓰디쓴 속 껍데기를 입으로 갈가서 먹는 생밤은 참으로 꿀맛 이었다.
도시에 갖혀서 가을이 온다는것은 하늘이 천명천고(天明天高) 하여 가을이 왔을알고 불어 오는 싸늘한 바람에 긴옷을 입어야지 만이 이제 가을이구나 라고 소홀히 가을을 직감한다.
그래도 내 유년시절.
감따먹고 밤 주우러 다니던 기억이 생생 하기에 내 머리가 허전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그런 추억들이 도시의 찌든 삶에서 얼키고 설킨 복잡한 실타래들을 아주 가끔은 벗어나게 해주는것 같아 고마워 지는 오늘 하루이다.
무엇보다 내 어머니 아버지의 흙냄새와 땀냄내가 베어 있는 옷들의 냄새를 한번 맡아 보고 싶어진다.
엄마, 아버지가 보고 싶다.
___하을사랑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