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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공룡


BY 동해바다 2005-10-17



     13일 한계령휴게소(09:30) - 서북능선 - 끝청(1604m) - 중청대피소(1676m) - 소청봉(1550m) - 희운각대피소(16:00 1박)
     14일 04:10 출발 - 공룡능선 - 마등령(1220m) - 금강굴 - 비선대 - 설악동 (12:55)
     05. 10. 13 ~ 14 

     칠흑같은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는 산장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다.
     그 새벽...
     깊은 산중의 포효소리가 산을 뒤흔들고 있었다. 
     .
     .
     .

     중청에서 바라본 공룡능선
 


     공룡능선...
     범상치 않은 기골장대한 모습이 미약한 인간들에게 범접하지 못할 만큼이나 거대한 암봉들이다. 섣불리 
     다가서지 못할 정도로 칼날처럼 뾰족하니 하늘향해 솟아있다. 웬만한 산악인조차 두려워 하는 코스를 
     어렵사리 얻은 이틀간의 여정 속에 집어넣었다. 
     무르익을대로 익어가는 가을날의 정취가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 간다. 구비구비 오르는 한계령의 산수화 
     한 점이 우리가 푹 빠질 그림 속이다. 아침 9시 30분경 한계령휴게소에 도착, 장장 이틀간의 산행길 
     리더의 지휘 하에 한참 물들어 있는 만산 홍엽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치고 오르는 초반부터 강세이다. 입고있던 쟈켓을 일찌감치 벗어던지고 갈바람을 온몸으로맞이한다. 
     단풍은 한계령아래까지 내려갔는지 벌써 옷을 벗어던진 나무들이 하나 둘 눈에 띄고 간신히 붙어있던 
     낙엽들도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하나의 산이 몇계절을 맛뵈어 준다. 붉게 물들어 버린 가을도 
     의연한 나목의 스산함을 만들어준 겨울도 진달래잎새 빨가니 만들어놓고도 아쉬워 꽃잎까지 잉태시킨 
     봄이란 작자도 모두 그 산 안에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명산임을 입증케 한다. 각 팔도사투리가 설악의 길목에서 울려퍼진다. 24시간 
     풀가동하고 있는 설악의 생태계가 어둠깔린 한밤중에도 선잠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듯 했다. 휴식년제가 
     없었다면 아마 설악은 인간들의 발 틈에 깔려 깨어나지 못할 죽은 산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변변치 못한 
     사람이 버린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다. 양심팔아 얼마든지 잇속을 챙기는 
     자들의 행태이리라...
     스무명중 가장 후미에 붙어 간신히 올라간다.감기증세로 몸 상태도 별로 좋지 않은데다 끝없이 오르막길이 
     형성되어 헐떡거리는 숨조차 고르기 힘들정도이다. 연령으로 봐도 한참 위인 회원들은 거침없이 선두자리를 
     놓치지 않고 산행을 한다. 힘든 정도는 모두 마찬가지라며 정신력으로 올라간다는 그 사람들...60이라는 
     나이는 어디로 갔는지 후들거리는 내 다리에 비해 그들의 다리는 끊임없이 타고 즐기는 산행의 결과 만들어진 
     것이란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후미에 처져 지쳐있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정신력, 그래 정신력 하나로 
     공룡능선에 도전하는것 아닌가. 말의 엉덩이에 채찍을 가하듯 머리로 가슴 그리고 발에 박차를 가한다. 
     산 아래 펼쳐진 만첩의 암릉이 우리나라 어디에도 없는 능선을 만들어내고 있다.

 
 

     해발 1600고지 끝청은 출발시간 4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귀떼기청, 용아장성능, 공룡능선이 첩첩이 
     에워싸며 설악의 비경을 자랑한다. 너덜지대인 끝청은 쉬어가는 사람들로 붐벼 주변을 둘러보기가 
     바쁘게 중청을 향해 발을 뗀다. 죽은나무조차 아름답게 보이는 설악산, 가는 길에 한 아주머니가 체해 
     바위에 걸터앉아 있다. 하얗게 변해버린 얼굴색이 이내 쓰러질 것처럼 보여 우리 회원중 하나가 가져온 
     침으로 온 몸을 쓰다듬으며 손가락 끝에 피를 내니 검붉은 피가 불거져 나온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나누며 
     베푸는 회원들의 마음이 참으로 예쁘다.

 

     배꼽시계가 허기짐을 알려준다. 오후 두시 멋지게 만들어놓은 중청대피소에 도착하니 세찬 바람이 불어 
     흘린 땀이 이내 식으며 한기를 몰고 온다. 얼른 쟈켓을 꺼내입고 모두들 자리잡고 늦은 점심을 먹는다. 
     간단하게 떡한조각 먹으려 했던 것이 푸짐하게 싸온 밥과 나물들이 유혹하는 바람에 배불리 먹고 말았다. 
     대청봉을 바로 코 앞에 두고도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 잠시 다녀올 수도 있건만 희운각산장에 잠자리를 
     배정받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이 뒤돌아서야만 했다. 남들은 몇번씩 와 보았을 대청봉, 난생처음 와 보고도 
     오르지 못하다니...중청까지 밟았다는 기분으로 대신하고 2시 40분경 희운각대피소로 하산한다. 내일 오를 
     공룡능선이 한 눈에 잡힌다. 중청에서 바라본 공룡능선..구비구비 뾰족한 봉우리가 겁을 잔뜩 주고 있다. 
     과연 어둠속을 뚫고 저 험난한 산길을 넘어갈 수 있을까 두려움의 장막이 사알짝 드려진다. 계속되는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니 시간반만에 대피소에 도착하였다. 방 하나를 배정받고 피로를 풀며 배낭을 내려놓는다. 

 

     해가 넘어가는 산속의 쉼터에도 가을은 찾아왔고 낙엽뒹구는 산장 매점에는 산악인들이 긴히 필요로 하는 
     필수품들이 값을 배로 받으며 팔고 있었다. 숙박비와 한사람이 덮을 모포 20장만을 값으로 계산하고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니 써늘한 냉기가 방안 가득이다. 그래도 편히 쉴수 있는 공간에서 있게 됨을 감사히 여긴다. 
     밖에서 웅크리고 새우잠을 자게 될 일은 리더의 사전정보 파악으로 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모임의 일원들이 
     이렇게 수고로운 한 사람으로 하여 모두가 덕을 보게 되니 얼마난 감사한 일인가. 
     어두워지기 전에 얼른 저녁을 먹어 치운다. 가져온 컵라면에 물을 부어 후루룩 밥말아 먹고 쓰레기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각자의 배낭 속으로 들어가도록 만든다. 최소한의 양심인 것이다. 
 
     벽면에 번호가 매겨져 군 내무반처럼 열명씩 스무명이 자도록 되어 있고 이층을 만들어 사다리타고 올라가 
     그 위에서 또 몇명이 잘수 있게끔 만들어놓은 산장이었다. 말 그대로 산중에서 만난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대피소인데 새벽산행을 위한 숙박소겸 일반 산행인들의 휴식처가 되어버린 것이다. 휴일같은 
     날에는 모두가 쪼그리고 자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는데 다행스럽게 우리 스무명은 방한칸을 모두 쓸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새벽산행을 위해 일찍 눕긴 했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냉기와 좁아 몸조차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 잠을 설치게 한다. 설상가상 감기까지 달고와 연달아 나오는 기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누를 범하고, 소화는 되지 않아 뱃속에 가스만 그득하니 차올라 있었다. 누워 있어도 재미난 
     입질로 회원들을 웃음속으로 몰아넣는 재주꾼이 있고 벌써부터 코를 골고 세상모르게 잠 속으로 들어간 
     사람도 있었다. 어떻게 잤는지, 언제부터 잠들었는지 모르게 부산스런 소리에 깨어보니 새벽 3시가 
     넘었나 보다. 예상외로 바깥바람은 그리 차지 않았다. 밥생각은 없었지만 험한 코스를 타기 위해 배를 채운다. 

 
 

     새벽 4시 10분경...
     스무명 전원이 헤드랜턴을 머리에 두르고 미명의 숲속 공룡능선을 향하여 출발한다. 고요 속에 자박거리는 
     발자국소리와 새벽 찬바람이 점점 그 세기를 더하고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앞사람의 
     불빛따라 향하는 산행길, 그 누가 이 험한 길을 가라고 시켰는가.
     로프를 이용하고 오르고 내리고 그 험준한 공룡의 들쑥날쑥한 등뼈를 타면서 왜, 무엇때문에 이 힘든 
     산행을 택했을까 많은 생각속에 빠졌다. 콕콕 쑤시는 몸살기운이 전신을 타고 뼈속마져 아파온다. 
     단지 산이 좋아서라기엔 무모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조심스런 발길에 앞사람 불빛이 보이지 않을땐 
     불안한 마음에 걸음마져 더뎌진다. 안개마져 우리의 앞을 가린다. 랜턴만이 생명의 인도자였다. 어둠과 
     짐승들의 포효소리가 들려오는듯 바람은 굉음을 내면서 회원의 몸뚱아리를 흔들고 있다. 용 틀임하듯 
     꿈틀대는 몸짓에 우리가 함께하고 있었다. 

 
     어느새 어둠이 사라졌다. 이젠 두려움도 없어졌다. 정신없이 걸어 공룡의 반쯤 왔나보다. 아침 7시 15분 
     마등령, 희운각대피소의 방향을 알리는 푯말앞에서 세수못한 얼굴들을 렌즈에 집어넣고 멀리 보이는 
     동해를 바라본다. 안개에 휩싸여 희뿌옇긴 하지만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어부들의 아침이 만선의 
     기쁨으로 맞이하길 빌면서....

 

     명산다운 면모를 자랑하는 수백개의 봉우리가 이름도 확실히 모른채 나는 지나친다. 아직 그 정도의 
     여력은 남아있질 않는 모양인가 보다. 하긴 알려준다 해도 어찌 저 많은 봉우리들을 기억한단 말인가. 
     다 그게 그것같은데....
     
     돌탑과 독수리 모양의 고목이 있는 마등령에 도착했다. 8시 40분...
     공룡능선은 공룡의 형태를 닮았다하여 그리 붙여졌다 한다. 마등령 역시 말의 등 모양처럼 생겼다 하여 
     마등령이라 하니 이젠 공룡에서 말로 옮겨진 셈이다. 그러고 보니 밤새 짐승 등만 타고 다녔으니 웃음이 
     나올 법하다. 

 
 
 

     거의 오름길은 없을 듯 마등령을 지나 잠깐의 오르막 빼고는 비선대까지 내리막길이다. 장시간의 
     내림길은 조금의 여유를 갖고 천천히 내려갔다. 녹색의 끄트머리에서 조금씩 물들어가는 단풍잎, 
     상처를 수없이 안고 있는 주홍빛의 잎이 무척이나 곱게 보인다. 암벽에 철거머리처럼 붙어 올라가는 
     덩굴잎은 붉다못해 자줏빛을 토해내고 있다. 바위가 없었다면 누구의 몸에 붙어 저리도 올라갔을까. 
     그들의 공존도 아름다워 보인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설악의 절경을 감상하면서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는 비선대, 설악 8경중에 
     하나라고 한다. 오전 11시 10분 천불동계곡으로 올라가는 지점과 마주친 다리 앞에 서니 많은 행락객들이 
     몰려와 그 아래 펼쳐진 계곡에서 쉬어가고 있었다. 하얀 암반위에 팔베개하고 누운 사람들, 투명하게 
     비치는 옥빛 물속에 발을 담그는 사람들, 우리도 저처럼 쉬어가면 좋으련만 약속된 시간에 도착해야만 
     하는 일정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래도 모든 산행을 마치고, 공룡능선을 탔다는 자부심으로 쉼터에서 리더를 포함한 회원모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막걸리 한잔에 건배를 외친다. 대단한 산악회였다. 어깨가 으쓱거린다. 비록 후미에 
     쳐져 한 몸 추스리기 힘들었지만 괴력의 바람에도 흔들릴만큼 위험했지만 해냈다는 승리감에 뼈속 
     쑤셔댔던 아픔도 모두 사라졌다. 뽀얀 술 한잔에 모두 털어버렸다. 

     왜, 무엇때문에 산을 탈까 자문하던 새벽길, 종주하고 나서야 정답을 얻어낸다. 침묵 속에서 홀로 
     마음을 추스르며 흐트러진 내 안을 정렬한다. 물음표 하나가 정렬된 마음에 훼방을 놓고 다시 또 
     생겨난 마음가지를 하나하나 쳐 낸다. 중도에 포기란 있을 수 없는 일, 걸을수만 있다면 걷는 것이다. 
     마침표를 찍어낸 다음 서로에게 찬사를 보낸다. 자랑할 수 있을 만큼 큰 일을 해 낸것이다. 
     
     설악동의 주차장은 물샐 틈없이 빼곡하다. 주차공간을 찾느라 애먹는 대절버스를 순신간에 올라타는 
     센스마져 회원들은 만들어낸다. 작품이다. 
     리더의 통솔력, 그리고 개개인의 정신력이 만들어 낸 훌륭한 작품을 이틀간에 걸쳐 만들었다. 

     최우수 작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