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식구들이 많으니 밥상 하나가 작았다.
앉다보면 모서리에 앉기도 하는데 어머니는 그러면 질색을 했다.
밥상 모서리에 앉으면 남에게 모난 소리 듣고 산다고 앉지 말라고 하였다.
옆에서 보고 있던 아버지가 말했다.
"괜찮다, 앉아라. 사람은 살면서 남에게 모난 소리 할 줄도 알고, 듣고 새길 줄도 알아야 한다."
왜 서로 다른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하지말라'보다는 '괜찮다'가 좋았다.
어머니는 하지 말라는 것이 많았다.
어른들이 말할 때 빤히 쳐다보지 마라, 문턱에 앉지 마라, 어른들이 있을 때 의자에 앉지 마라, 큰소리로 웃지 마라, 말대꾸하지 마라,...등등
얌전하고 다소곳한 딸로 키우고 싶어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잘 난 체 하지 말고 있는 듯 없는 듯 그럼 사람으로 살라고 하였다.
청개구리 기질이 농후한 나는 그러면 더 엇나갔다.
어른들이 모여 이야기를 할 때 끼어 입 바른 소리도 가끔 했다.
일부러 문턱을 골라 앉았다.
바닥으로 내려 앉으라고 끌어내리는 어머니에게 눈을 살짝 흘기고 다시 의자위로 올라 앉았다.
어른들이 말할 때 턱 밑으로 바싹 다가 앉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묻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그런 내가 질색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야단하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은근히 부추겼다.
그래서 나는 점점 버르장머리 없는 딸이 되었다.
결혼할 무렵엔 자타가 공인하는 집안의 '떼쟁이'가 되었다.
하지만 밖에 나가면 제법 '예의 바른 숙녀'노릇도 했다.
어머니의 가르침 덕인지, 탓인지는 모르나 아무튼 어머니의 영향일 것이다.
살면서 첫인상과 실제가 너무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아마도 첫인상은 어머니가, 실제는 아버지가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웃는다.
교사였던 때, 악명이 높은 교장이 있었다.
선생들을 교장실로 불러 발길질를 하기도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학생들 앞에서 교장에서 따귀를 맞았다는 교사도 있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선생이 그 교장의 미움을 받았다.
사사건건 그 선생이 하는 것은 트집거리가 되었다.
그 선생은 감히 맞서지 못하고 당하기만 했다.
보다못해 내가 나섰다.
교장의 화살은 내 쪽으로 향했다.
모난 소리를 할 줄도 듣고 새길 줄도 알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은 나는 싸움을 잘 한다.
상대방이 듣고 팔팔 뛸 모난 소리도 태연히 하고, 상대방이 하는 모난 소리를 듣고 화내기 전에 곰곰 새길 줄도 안다.
그런 나를 당할 사람은 많지 않다.
결국 교장은 꼬리를 내렸다.
내게 슬쩍 다가온 선생들이 웃음을 감추고 살짝 말했다.
"자기 덕분에 근무하기 편해졌어..."
남편의 직장 상사 부인 중에 이간질 잘 하기로 소문난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 덕분에 해외근무하는 직원 부인들 사이에 머리채를 잡고 싸움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고 모두들 쉬쉬하였다.
남편이 그 여자 남편이랑 같은 시기에 같은 나라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모난 소리 잘하는 나랑 그 여자가 부딪칠 수 밖에 없었다.
미친년, 소리를 들은 그 여자는 팔팔 뛰었다.
온갖 거짓 소문을 다 만들어 퍼뜨렸다.
모난 소리를 듣고 새길 줄도 아는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 여자가 날더러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자기에게 걸렸으니 무사하겠어?..."
웃어 주었다.
그 여자는 더 높은 상사가 알게 된 진실이 무서웠던 것이다.
진실은 언젠가 들어나게 되어있었으니까...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난 남에게 모난 소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남편에게 모난 소리를 태연히 한다.
"야, 무슨 욕심이 그리 많으냐? 언제나 만족할래, 평생 살아도 마음에 평화가 있겠냐? 이 욕심덩어리야!"
남에게 도움 받는 것을 마음 아파하는 언니에게도 모난 소리를 한다.
"언니가 뭔데 남에게 베풀기만 하고 살아야 돼? 언니는 받고 살면 안돼? 베풀고만 살고 싶다는 생각도 교만이야."
식탁에서 반찬을 뒤적이는 버릇이 있는 형부에게도 모난 소리를 한다.
"형부, 그렇게 김치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해요?"
남에게 모난 소리를 하면 내게 모난 소리가 돌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모난 소리를 듣고 잘 새겨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또 하나 가르침이니 잘 새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