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주워가겠다는 사람만 있으면 돈을 묶어서 버릴텐데...'
결혼 전에 날 두고 아버지가 가끔 했던 말이다.
그만큼 두통거리라는 뜻이었다.
"이제 우리집 떼쟁이 니가 데려갔으니 나는 모른다. 니가 책임져라."
결혼하고 찾아간 막내 사위와 술상을 마주하고 앉아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남편은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덥썩 대답했다.
"네, 염려 마세요."
허니문 베이비였던 아들을 안고 친정집 친척들을 방문하면 고모들도, 작은아버지들도 이구동성으로 남편에게 말했다.
"자네, 애 둘 데리고 사느라고 애쓰네..."
"......"
그 때만 해도 내가 호랑이가 아니고 고양이였던 시절이니 남편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조카딸이 이뻐서 고모들이나 작은아버지가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딸까지 데리고 찾아간 친척집에서 어른들이 남편에게 말했다.
"자네, 애 셋 데리고 사느라고 힘들지 않나?"
"네?..."
이 때까지도 남편은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은 내가 발톱을 감추고 살 때였다.
남편은 정말 모르고 있었다.
화나면 위 아래 상관없이 할퀴고 덤비는 맹수랑 같이 살고 있는 것을 아직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진짜 맹수는 사냥을 하기 위해 끈질긴 참을성으로 기다린다는 것을 맹수가 아닌 그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맹수가 사냥감을 노리듯 자기를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 마냥 자기 멋대로 세상을 살았다.
남편을 길들이기 위해 슬슬 기지개를 켤 무렵 친정어머니가 식도암 진단을 받았다.
좀 더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를 속상하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어머니는 성깔이 보통이 아닌 막내를 결혼시켜 놓고 제대로 살아낼 지 걱정이었다.
다행히 잘 사는 것 같아 보이긴 했으나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언제나 조마조마했다.
막내로 자라서인지 버릇도 없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이겨낼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임종을 앞두고 병문안을 간 막내사위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했다.
"고맙네... 우리 막내랑 잘 살아줘서 정말 고맙네..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 데리고 살게나... 부탁하네..."
막내사위는 장모의 속마음은 짐작도 못하고 자기를 칭찬하는 말인 줄만 알았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염려 마세요. 어머니!"
그것이 어머니가 막내사위에게 남긴 유언이 되었다.
남편의 대답은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약속이 되었다.
내가 발톱을 다 드러내고 남편과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했을 때, 남편은 비로소 모든 것을 이해했다.
하지만 장모와의 약속이 떠올라 참아야 할 때도 많았다.
뼈만 앙상한 손으로 자기 손을 꼭 붙들고 간절히 부탁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돌아가신 장모가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항상 항복을 선언할 수 밖에 없었다.
"여보, 그러지 말고 일어 나... 밥 먹어! 내가 밥 했어... 어서 일어나!..."
"너나 많이 먹어!"
"내가 잘못했어. 그만 밥 먹자."
"......"
"그럼 나 먼저 먹고 출근할테니까 일어나서 먹어..."
"......"
할 말 못할 말 다 하고, 꼬집고 물고 발로 뻥뻥차고, 그리고도 분이 안풀려 굶고 누운 사람을 남편은 이렇게 달랬다.
어머니가 왜 그런 말을 자기에게 했었는지 뒤늦게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남편은 어머니와 한 약속을 지키려 애를 썼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앞으로 잘 데리고 살게나... 부탁하네...'
'염려 마세요.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