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글을 읽고 정말로 나라면 하는 설정을 한다
누구에게나 시련이나 이판 사판의 상황을 맞닥뜨리는 적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 큰언니의 경우 언제나 형부의 일방적인 분노와 흥분과 아집속에서
끌려다니고 여기다 굳이 써놓을 필요까지는 없는 횡포가 극에 달했을때
언니는 자동차의 본네트에 올라탔다
나를 죽이고 출발하라는 의미로 ....
가끔씩 티브이 프로에서 하는 부부탐구에 나가보라는 주위의 권유까지 듣는 적이 있다
그러나 언니 말이 맞다
'무어가 자랑이라고 ..'
원래가 강한 척하는 하는 사람들이 더 강한 사람에게는
한 없이 약해지는 법이다
어떤 상황을 계기로 칼자루를 쥐어볼 때가 있음을 말한다
나에게도 가슴은 아프지만
이판사판인지 뭔지는 모를 아픈 기억이 있는데
밥도 한번 안해먹던 내가
둘째 아이를 조산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경제적으로 당당하다고 믿었던 내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오직 작은 아이의 실핏줄 같은 뼈에
매어달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고
그 시절 5호담당제를 방불케 한다는 관사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언제 세수를 했으며 언제 수퍼를 가고
언제 하얀 바지를 입고 외출을 했으며
아이는 한돌이 되어도 걷지 못한다는 걸 너무도 잘알고 있는
어떤 때는 나보다 더 나의 행동거지를 더 잘
꿰뚫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정도의
얼핏 볼때 그 곳의 사람들이 이상스레 자기의 수입보다도 더 화려한 생활을 하는 듯 보였다
--집을 사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들만 눈에 띄이는 건지
나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모두 지쳐 있었다
사랑한다고, 내가 부르면 충성을 맹세하며
십분 안에 도착하겠다는 그는 늘 새벽에 오거나 심지어 외박도 불사했다
나는 더 이상 그 무엇도 의미가 없었다
그를 잡고 야단 칠수도 없었고 늦게 오는 신랑을 억지로 잡아 다닐 수 있는 그 무엇도 없었다
본인이 국사에 바쁘다는데 어찌 할 그 무엇이 내게 있단말인가
(더구나 한국사회에서 아내의 말에 따르는 사람은 일명 쪼다를 강조하는 회사에 다니는데)
그는 늘 전화도 자주하고 퇴근길에 식빵이나 딸기를 사오는 자상한 사람이었으나
상관이 바뀌고는 집에 전화도 못하는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
정말 이상한 한국형 남자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의 외침은 '알았어'한마디로 일축해버렸는데
한마디로 딸랑거리는 종소리만도 못한 것이라는 표현을 내가 했을 지경이었다
지금처럼 아픔을 여기 저기 쏟아 낸다는 것도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을때 가능한 이야기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일을 시원스럽게 하는 사람이 못된다
그 와중에 연년생의 두아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삶아내고
그리고 나혼자 먹을 밥을 준비한다는 것이--신랑은 거의 언제나 밖에서 밥을 먹었음-
너무도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더구나 나이에 비해 직급이 높은 아내의 행동거지가 남의 입돋음에 오르내리지 않기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으면 안되었다 남의 말을 하기는 쉬운 법이니
가난한 살림에서 벗어나고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강박증은
늘 사소한 부분까지 돈을 아껴야 한다고 다짐했었다
가까스로 아이들이 잠들고
가스 위에 두 아이들이 먹어야 할 우윳병을 삶으려고 올려 놓았다
가스렌지 위의 등을 켜 두었다가
'이것도 아까워서'
하며 자기도 모르게 불을 껐다
추운 날이니 안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지금은 읽기도 싫은 '신동아' 나부랭이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
우유병을 삶던 커다란 냄비의 물은 모두 졸아 붙고
그 타는 냄새는 온 거실을 뒤덮었다
깜짝 놀라 순간 가스밸브를 잠그고
나는 그 추운 겨울 아이들이 공기 질식을 할까봐 안방창문을 열어 젖혔다
질식 보다는 감기에 걸리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으니
그리고 목욕탕에 물을 받았다 ................
(그날 아끼려고 했던 전기료의 몇배를 쓰면서ㅎㅎ--이 와중에 )
그는 그때까지도 집에 안왔다
그리고 그가 들어섰을때
정말로 나는 기절을 하고 싶었다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나 나름대로 생각해 낸 것이 있었다
반쯤 의식이 있는 상황에서 자는 척을 하면서
뜻하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불러대었다
그 와중에도 신랑은 나의 정신적 육체적 주체가 누구냐고 묻는다
(누구긴 정신적 육체적 주체는 나지 ..)
그는 ...조금 놀라듯 ..그리고 발길을 뻥뻥 차대면서 뜻하지 않게 불려진 이름의
그에게로 가라고 한다
'햐 ....골탕을 제대로 먹였다 .................^^;;;'
물론 아주 좋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생각하고 처한 방법이다
그대가 날 돌보아 주려고 조차 않는다면
나에게도 출구는 있다는 메시지 즉 나도 칼을 숨기고 있다는
뭔가 숨어 있는 의도같은 거였는데 ....
그가 나에게 화를 내며 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들먹이냐고 물었을때
나는 당당히 소리쳤다
"꿈에서 일어나는 일 혹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책임 질 수는 없어<<"
(누가 이렇게 오랫동안 나를 방치하고 버려두랬어 .....흥 !!)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지만
그때는 슬픈 시간의 연속이었다
딱히 그가 나에게 남편 노릇을 못한 건 분명 아니었건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