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여편은 참 잘 싸운다.
하루에 몇번씩 토닥거리기도 하지만 몇 달에 한번쯤은 죽고 살기로 싸운다.
이런 날은 둘 중의 하나가 보따리를 싸고 집을 나서기도 한다.
여편이 보따리를 싸기 시작하면 남편은 비로소 제 정신이 들어 항복을 한다.
제발 나가지 말라고 사정한다.
여편은 그래도 버티다 남편이 불쌍하리만큼 사정하면 못 이긴 척하고 주저 앉는다.
하지만 남편이 보따리를 싸면 사정이 달라진다.
여편은 모른 척 한다.
할 수 없이 남편은 보따리를 쌌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나가봐야 갈 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몇 시간 빙빙 돌다 들어오기 일쑤다.
스스로 나갔던 집에 다시 들어오려면 여간 멋적은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갈 데가 없으니 별 수 없다.
어떤 날은 이혼을 하기로 합의를 하고 냉전 체제에 돌입하기도 한다.
그다지 오래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둘이는 심각하게 이혼을 고려한다.
그들의 단골 부부싸움 메뉴중의 하나는 남편의 빈정대는 부정적인 말투다.
남편은 그것이 자기의 약점인 줄 알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고 한다.
여편은 그것을 너그럽게 들어 넘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다.
너그럽게 들어넘기기는 고사하고, 나이가 들수록 더욱 화가 난다.
예전에 들었던 말까지 모두 생각이 나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꺼질 줄을 모른다.
싸움의 형태도 예전보다 격렬하다.
여펀의 입에서 서슴치 않고 '~새끼'가 나올 때 조차 있다.
이런 때, 여편은 그렇게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나서 남편이 더욱 밉다.
싸움은 둘이 있을 때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간혹 아들에게 딸에게 들키기도 한다.
남편의 말투가 꼬투리가 되어 싸우다 이번에 그들은 아들에게 들켰다.
남편이 아무리 사과해도 여편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아들이 중재에 나섰다.
여편이 원하는 것과 남편이 원하는 것을 물었다.
"엄마, 아빠가 한번만 더 그러면 이혼하기로 했어. 됐어?"
"이혼하는 것이 뭐 쉽냐? 그런 말 믿지도 않는다."
아들 입에서 나온 이혼이란 말에 뒤가 켕긴 여편이 한발짝 물러섰다.
예전처럼 그냥 말만으로 하는 이혼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퍼뜩 든 것이다.
아들은 다시 아빠에게 묻고 엄마에게 말했다.
"그러면 아빠랑 따로 사는 것은 어때?"
"혼자 살면 니 아빠 건강도 안 좋은데 자꾸 맘에 걸려 그것도 싫다."
여편은 남편의 건강이 나빠지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아들은 다시 둘 사이를 오가며 말을 전한다.
"그럼 아빠가 같은 실수를 하면 나랑 육개월을 같이 살기로 했어. 됐어?"
"육개월은 너무 길다. 한달이라면 모를까..."
여편은 차츰 제정신이 돌아와 이성적이 되어간다.
남편이 마다 할 리가 없다.
우선은 어떤 식으로든 여편을 달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 날 둘이는 화해를 하고 셋이서 식사를 하러 나가기로 했다.
아들이 운전하는 자동차에 타고 가다 남편은 말실수를 했다.
새는 바가지는 어쩔 수가 없다.
남편이 평소하는 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조그만 실수지만 실수는 실수다.
여편은 그런 정도는 봐 줄 아량이 있다.
하지만 아들은 아니다.
"아빠, 안하기로 하고서 또 그런다. 도저히 안되겠다. 오늘부터 아빠는 한달 동안 나랑 살아야겠다."
남편이 변명을 한다.
아들에게는 남편의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여편은 남편이 불쌍해 편을 들어주고 싶은데 참는다.
좀전에 그리 싸우고 지금 편들면 아들 눈에 어찌 보일까 싶어 편들고 싶은 맘을 꿀꺽 참는다.
이번에는 남편의 상대가 아들이다.
아들은 여편보다 훨씬 강적이다.
남편은 좀전에 여편에게 당하고 아들에게 또 당한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성미 급한 남편이 열 받아서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잡아 찢어도 아들은 요지부동이다.
"안돼, 아빠, 약속은 약속이야. 아빠는 오늘부터 한 달 동안 나랑 사는 거야."
여편은 남편이 안쓰럽지만 모른척 창 밖을 본다.
한 달은 너무 길다는 생각을 한다.
'에이, 일주일이라고 할 걸...'
하지만 엎지러진 물이다. 아들 앞에서 자기가 한 말을 금방 번복할 수는 없다.
"엄마, 아빠랑 하루에 한번씩 밥 먹으러 가는 것은 괜찮지?"
"니 아빠랑 내가 무슨 원수진 일 있냐? 괜찮지, 그럼..."
여편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얼른 대답한다.
원수보다 더 치열하게 싸운 일을 잊은 사람 같다.
"그럼 내가 아빠 집에 모셔다 놓고 다시 엄마랑 가서 아빠 옷이랑 먹을 것이랑 가져갈께..."
"아빠 식사 했니?"
"아니, 방에서 누워 꼼짝도 안해."
"너 아빠에게 잘해!. 말 함부로 하지 말고..."
"알써, 엄마. 자꾸 전화하지마! 아빠가 들으면 소용없어지잖아."
"알았어."
전화기를 놓은 여편은 한숨을 훅 쉰다.
밥을 안 먹는 남편도 걱정이지만 앞으로 한 달 동안 혼자 살 생각을 하니 한심하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맞긴 맞나보다.
싸우고 살아도 혼자보다는 둘이 사는 것이 낫다.
"엄마, 아빠 거기 갔어?"
"아니!, 왜?"
"아빠가 없어졌어. 아빠 핸폰 가지고 있어?"
"아니, 내가 가지고 있는데..."
"됐어, 돌아다니다 들어오겠지..."
아들전화를 받고 여편은 불안하다.
아들이 사는 곳과 여편이 사는 곳은 걸어서 오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여기는 미국이다.
한국처럼 대중교통수단이 발달한 나라가 아니다.
택시를 타려도 길거리에 빈택시가 없는 곳이다.
남편이 걱정된다.
잠시 후 도어벨이 울려 열어보니 아들에게서 탈출한 남편이 초라한 몰골로 거기 서 있다.
화가 나서 하루를 굶고 세수도 안한 얼굴이 안쓰럽다.
입술이 허옇게 말라붙었다.
여편은 반가운 마음을 접어두고 냉정한 척 물었다.
"어떻게 왔어?"
"택시타고 왔지!"
"전화도 없는데?..."
"그로서리스토어까지 걸어가서 공중전화로 했지"
"......"
남편대신 여편이 아들에게 사정했다.
이번 한번만 봐 달라고...
아들은 이번 한번만 봐 주는 것이고, 아빠가 다시 그런 투로 말을 하거든 꼭 자기에게 알리라고 신신당부한다.
자꾸 봐주면 안되는 것이라고...
그 후 남편은 빈정대는 부정적인 말투가 많이 줄었다.
간혹 그런 말이 나오려고 할 때가 있긴하다.
다른 때 같으면 화를 낼 여편도 많이 달라졌다.
무섭다는 듯이 주위를 돌아보는 척하며 말한다.
"쉿, 아들 온다!"
남편은 하려던 말을 얼른 중단하고 겁난다는 듯이 이렇게 받는다.
"아 참, 또 잡혀가면 안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