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기 생일 선물로 건강검진 예약해 놨어~^^" 올 봄.. 남편의 생일선물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고민하다가 인터넷으로 건강검진 예약을 해놓았다고 하니 평소에도 자기 몸에 대해선 어찌나 관심이 많은지 좋아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예약 날 금식을 하고 검사를 마친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의사가 말야...간검사를 하는데 한참 들여다 보더니 큰병원에 가서 정밀검사 받아 보래.." "에이~뭐 지방간이나 염증 비스므리한거 아녀? 술도 잘 안먹는 사람이 간은 무슨 간?" 우연히 건강검진에서 알게 된 남편의 간상태는 내가 초음파 사진을 보기까지는 설마 했었다. 그리곤 며칠 후 우편물로 받아 본 간 초음파 사진엔 분명 뭔가 이상해 보였다.. 3cm 미만의 크기로 두개의 분화구같이 생긴 모양이 초음파 사진에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게.. 뭐야?"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으로 남편의 증상에 대해 검색해보니 온통 가슴 두근 거리는 설명들 뿐.. 도저히 더 이상은 읽을 수가 없었다. 힘없이 일어나 침대에 철푸덕 쓰러져 한참을 멍하니 누워 있었다. 간암이라면...초기라면.. 고칠 수 있는 거야? 혹시..못고치면... 갑자기 가슴에 큰바위 하나가 내려 앉는다. 답답해서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게 이런 거구나.. 애써 참던 눈물이 한숨소리와 함께 왈칵 쏟아져 나오면서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거실에서 티브 보던 남편이 안방으로 다가 와 손을 꽉 잡아 주었다. 우린 말없이 그렇게 있었다. 순간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들이 24방 짧은 필름처럼 흩어 지나갔다. "울지 마~ 확실한 결과도 안나왔는데 울긴 왜 울어.. 심각한거 아니니깐 재검하고 치료 받으면 돼 걱정말라니깐..." "무슨 일 있기만 해봐! 가만 안둘 줄 알어!" 그렇게 정신없는 나날을 보낸 후.... 남편은 아산병원에서 MRI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기다림이라는게 이렇게 고통스러울수가.. 시누들의 전화가 끊이질 않고 친정식구들의 전화가 끊이질 않았다. 누가 이런 말을 했던가.. 병 간호중 가장 힘든건 병문안 온 사람들 마다 환자상태를 일일히 설명하는 게 더 힘들다고.. 통화를 하다보면 울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눈물이 나와서 차라리 문자를 보내곤 하였다. 의사인 남편 친구는 일찍 발견해서 천만 다행이라며 좋은 공기마시고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했단다... 제길...여행? 드라마보면 곧 죽을 사람한테 이런 얘기 많이 하던데.. "그런 뜻이야?" "그게 아니라 스트레스 받지말고 맑은 공기가 몸에 좋다는 뜻이지" 결과가 나오기 까지는 아무 것도 모를 일이지만 간에 이상이 있다는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수 있는건 무엇일까를 생각하곤 인터넷으로 간에 좋다는 식단을 메모지에 적어 시장으로 향했다. 무늬만 주부인 나는 우엉을 사고 무우를 사고 표고버섯을 사러 갔다. 회초리마냥 기다란 우엉. 처음 사봤다. 연근을 사러갔다. 지금 연근나오는 계절이 아니라 비싸서 갖다놓질 않는다 한다. 있어도 중국산이란다. 어두운 밤길을 힘없이 터벅터벅 봉다리를 들고 집으로 오는데 갑자기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 내렸다. 언제였던가.. 남편과 함께 병원24시란 티브 프로를 보는데 환자인 남편을 위해 그의 아내가 식이요법을 정성스럽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편은 내게 물었다. 만약에 나도 저사람처럼 아프면 너도 저렇게 할수 있느냐고...... 나쁜 놈..... 그게..그렇게도.. 부러웠니... 집근처 놀이터에 혼자 앉아 들키고 싶지 않은 눈물을 몰래 훔치고 있었다. 우린 그렇게 애써 태연한척 연기를 하고 있었다. 초여름 날씨가 너무나 무덥게 느껴졌다. "성형수술 해줄까?" "갑자기.. 왠 수술?" "새로 시집가려면 이쁘게 하고 가야지..ㅋㅋ" "하이고~~별 걱정 다하시네~내가 다 알아서 손보고 갈테니까 걱정마셔!!쳇~" 나쁜 놈...... 별걱정을 다하네.. '벌어놓은 재산도 없고..너 나 없으면 어떻게 살래?" "그냥 굶어 죽을꺼야~" 개성 강한 우린 애정표현도 언제나 티격태격이다. 그러다 혼자 있으면 온종일 불안하고 초조하다. 자칭 맥가이버라며 집안 일 도와주던 남편. 말 한마디면 어디든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던 남편. 딸셋을 포함해서 딸넷을 키운다는 남편. 사별과 이혼.. 차라리 이혼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해 보였다. 그들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만날 수는 있을테니까.. 남편은 언제나 병원을 나와 함께 가질 않았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병원에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이다. "나도 병원에 꼭 갈꺼야 " "잠깐 면담만 하고 바로 끝나는데 뭐하러 가~ 결과듣고 내가 바로 전화 해줄테니까 집에 있어~" "싫어! 나 꼭 데려가~ 알았지?~" 마지못해 알았다며 대답하고 출근하는 남편의 뒤통수에다 다시 한번 큰소리로 말했다. "있다가 갈때 꼭 나 델꾸가~~" 오랫동안 기다리던 그 순간 좋은 결과가 있기를 초조하게 기도하며... 병원에 가야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오질 않는다. "자기 지금 어디야?" "병원이야..현우하고 같이 왔어..결과듣고 전화해 줄께" 또 말없이 친구하고 내뺐다. 이건 나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배신이다. 내가 할수 있는건 또 아무 것도 없었다. 조용히 남편의 전화만 기다리는 일밖에는.. 잠시 후 드디어 남편에게 밝은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결과 나왔는데 종양크기가 반정도로 작아졌대~^^" "정말이야? 얼마나 작아졌대? 왜 그런거래? 현우씨 바꿔봐~" 남편 말을 도저히 믿을수 없어 같이 간 친구에게서 직접 확인하고서야 믿기 힘든 거짓말같은 사실을 믿을 수가 있었다. 의사선생님도 믿기지 않는 현실이라며 현대의학으로도 설명할수 없는 현상은 주변에 너무나 많다고 한달 사이에 크기가 이렇게 줄어 든다는게 이해가 안간다며 오히려 의사는 남편에게 무슨 요법을 했는지 물었다 한다. 사람 마음 간사한건 참으로 어쩔 수가 없다. 검사 결과가 좋게 나와서 기분이 날아갈듯 좋은데.. 한편 그동안 마음 고생한걸 생각하니 갑자기 억울하고 분한 생각이 들었다. "자기 집에만 와봐! 가만 안둘줄 알어~" "왜?" "내가 지금까지 마음 고생한거 생각하면 그냥...어휴!" "헤헤..난 죄없어~ 의사가 말해준 그대로 말했을 뿐이야! " 나쁜 놈.... 나 심장 약한거 알면서 강펀치를 날리다니.. ㅎㅎㅎ 올 여름 우리부부는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지금 남편은 병원에서 정기적인 약물치료와 검진을 받고 있다. 올 봄 우연히 남편의 생일선물을 고민하다 건강검진 예약을 선물하게 된 기회로 이렇게 뜻밖에 생각지도 않은 병을 초기에 발견하여 치료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그 사건 이후로 난 아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늘 하는 말이고 듣는 말이지만 건강은 반드시 건강할 때 꼭 지키라고.. 그리고 정기적인 건강검진은 꼭 하라고... 내일의 일은 그 누구도 감히 예측할 수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