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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야 할 그 자리


BY 土心 2004-03-25

 

내게는 90 고령의 시어머님이 계시고 고희를 훌쩍 넘기신 친정 부모님이 계신다. 자식된 입장에서 부모님이 건강하게 장수하시는 것 보다 더 감사한 일이 또 뭐가 있을까. 헌데 그걸 까맣게 잊고 산다. 평소 너무도 모르는 채 산다. 난 오히려 노인들에게 신경 쓰는 자질구레한 일을 귀찮게 여길 뿐이며, 양쪽 부모님 다 내가 모시고 살지 않아도 되는 지차라는 그 책임의 면제가 그저 다행스럽고 고마울 뿐이라 여기는 곱지 않은 막내 며느리고 맏딸이다.

하지만 내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잠시도 엄마 치마고리를 놓아 본 적이 없었는데, 잠시만 엄마가 안 보여도 숨 넘어 가게 찾아 다녔고 그건 다 커서 까지도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생각 하면 어이없이 눈물이 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짐을 실어 시댁으로 가져 가는 날이었다. 혼수로 장만한 새 살림살이들을 트럭에 하나 가득 싣고 집 골목을 빠져 나오는데 그 때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눈물은 참으로 한도 끝도 없었다. 어디에 그 많은 눈물이 고여 있었기에 그야말로 걷잡을 수도 주체할 수도 없는 눈물은 흘려도 흘려도 마르지를 않는 것인지. 염치도 눈치도 앞뒤 가릴 경황도 모르는 그 날의 예비 신부 눈물은 두고 두고 시댁 식구들의 눈총감 이었을 거란 생각은 아주 훗날이 되고야 들었다. 아마 지금까지도 내 살아 오는 동안 그 날 만큼 그렇게 많은 눈물을 한꺼번에 쏟아 낸 적이 없었다라고 기억된다. 헌데 그렇게도 엄마 밝힘이 애절하던 그 딸은 이제 이미 그런 딸이 아니며 그렇게 변심한 세월을 20수년째 살고 있다. 이렇게 무심으로 만든 탓을 오로지 세월이요 나이라 밀어 부치면 되는 건지...

오늘도 양로원 봉사랍시고 다녀왔는데 매번 양로원을 다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렇게 한쪽 구석에 감춰 둔 양심 한 자락의 소리가 자꾸 맘을 비꼰다.
홀로 남겨진 그 수많은 어머니들의 고독한 모습을 보면서 어째 이것이 최선인가 자식된 도리로 아니 자식을 키우는 어미된 도리로 가슴은 내내 묻는다. 
되찾지도 못할 세월을 고스란히 자식들에게 저당 잡힌 채 자식이 빼먹은 세월만큼 어미들은 휘어 간다. 골패인 주름이 훈장으로 남고, 백설 하얀 머리는 월계관인양 이고, 뭉개진 손톱은 삶의 징표로 남겨 두고, 진액 빠진 골수는 허리 굽어 증명하고, 닳아진 뼈마디는 보폭을 앗아 갔으며, 어루만진 까슬한 손에서 그리움이 묻어 나고, 초점 없는 눈에선 눅눅한 외로움이 흐르고, 물기 마른 미소에선 살아 온 날의 회한이 담기고. 몰아 대는 가쁜 숨 끝에는 가야 할 날의 조급함이 역력하다.
달려온 세월을 거꾸로 돌아 마냥 아이가 되어 있는 천진 노구들이 하물며 그러하고, 맘이 또렷하고 행이 반듯하여 분별을 잃지 않은 노인들은 이 살아 온 날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고 받아 들이며 고단해 한다. 어찌 자식들이 외면만 하고 모른다고만 해야 하겠는가 오그라든 가슴이 또 묻는다.
허나 잠시 생각해 보면 물을 것도 모를 것도 없다. 여기 모인 어머니들의 모습이 바로 이 삼십 년 전엔 지금의 내 모습이었을 어머니들이며 이 삼십 년 후면 내 모습이 될 어머니들이다. 하니 이것을 윤회라 하면 옳고, 내 부모 봉양한 모습을 내 자식이 보았으니 내가 지식에게 받을 것을 짐작 한다면 바로 그 만큼이 곧 인과의 이치라면 될 테지.  내가 지금 내 부모에게 어찌해야 하는가의 답은 이렇게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그저 늘 허망한 말 뿐이다. 하여 오늘도 이리 씁쓸하다.
주어진 삶의 몫을 숨가쁘게 살아 내고 이제 한숨만 더 몰아 쉬고 나면 그 삶은 찰나에 쉬려는데, 부모님 장구한 인생 여정의 회향이나마 자식이 거들고 지켜 드려야 마땅함을 그도 못하면 어찌 그 어미의 젖을 물고 컸다 할 수 있으리요. 반성 하고 또 반성 해 본다.

흥분한 맘으로 몇자 적고 보면 오늘도 역시 공연한 공염불만 했음이 부끄럽다. 허나 이런 외출을 통해 깨닫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은 있다. 형편상 여러 이유로 시설에 의탁하여 부모를 모시는 경우든 아님 가족 울타리 안에 부모를 모시는 경우든 형식은 갖췄어도 맘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노인들은 외로움이 지병이 되어 생을 놓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늘 무심과 방심의 자식 옆에서나마 해바라기 하시는 것을 낙으로 삼으시는 나의 양쪽 노부모님들께는 그저 유구무언으로 불효를 고변 할 뿐이며 감사함으로 머리를 숙일 뿐이다.
다만 아직도 속이 덜 찬 이 사람은 '천천히 가소서' 뭇 노인들께 그 주문을 하려 한다. 머지 않아 내가 물려 받아 앉을 그 자리가 나는 참으로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