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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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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금 보는 남자


BY 남풍 2003-12-06

고무장갑을 끼고, 주방에서 설겆이 하던 주방언니가

황급히 뛰쳐 나가며 문을 나서려하는 마지막 손님을 붙잡고는,

고무장갑을 벗어 손을 내민다.

 

"나도 좀 봐줘요."

술을 좀 마신 것 같은 손님, 나가려다 말고  어쩔수 없다는듯, 그녀의 손금을 들여다 본다.

 

"..... 남편복이 없군요.... 재물운도 없고, 중년에 위험한 사고를 당할 것 같으니,

조심하세요... 속 썩히는 자식도 있고...."

손과 얼굴을 번갈아 보던, 서른 중반의 남자는 뒤따라 온 친구 손에 이끌려 나가버렸다.

 

고개를 끄덕이며 언니는 주방으로 돌아와 한숨을 내쉰다.

화장을 짙게한  얼굴이 어두워 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지나온 시간의 기억들이 퐁퐁 거품처럼 일기 시작하는지,

달그락 거리는 설거지 소리에 섞여 언니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서른 여섯 나이에  세번째 결혼, 남편 하나에 아이 하나씩 있는 횟집 주방아줌마.....

 

손금, 관상, 운명....

언니의 이야기를 듣는데, 벌써 십오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기억 속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점집에 가면 점쟁이들이 아버지에게 늘 말했다한다.

"어째 나같은 팔자를 가진 이가 나를 찾아 왔수?"하고.

아버지는 일생 그 말을 피해 다녔다.

굿판을 돌아 다니는 '새끼심방'(무당)의 큰 아들로 태어 난 것이 문제였는지,

점쟁이에게 들은 운명적 발언이 문제였는지,

기어이 그 일만은 하지 않으리라 하면서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늘 남의 길 같다 여겼는지,

아버지는 내 기억 속에 잠깐잠깐 술 취한 까칠한 모습으로 간간이 등장할 뿐,

착실하게 삶을 일궈내지 못했다.

 

오십이 다 된 나이, 아버지는 끝내

자신의 운명을 바꾸지 못하고, 뒤늦게 주역공부를 시작했다.

그 때, 아버지는

자신의 운명을 읽었을까?

 

아버지가 마음 편해진 얼굴로 살아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월 어느 새벽,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돌아 가셨다.

그것도 운명이라면, 급살수가 있었을까?

 

어린 내 눈엔 비친 아버지는 분명 운명론자였다.

운명을 거스르려 하였든, 따르려 하였든.

 

" 생각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는 운명을 바꾸려 발버둥치면서도 딱 한가지 실수때문에 

그 운명을 바꾸지 못했다.

그것은 생각과 습관을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그랬어요. 돈 많이 벌면 부자 된대요." 내 말에

"그거야 당연하지." 주방 언니가 어이없다는듯 대답했다.

 

 

나의 운명에 대한 견해는 바로 당연한 것, 그것이 운명이라는 거다.

자그마한 것에 대한 사소한 생각과 그를 둘러싼 습관,

습관적 선택, 그것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물줄기인 운명이 된다는 것,

아니면 말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말고는, 다 할수 없는 일인 것을 어찌하리.

 

 

그건 그렇고,

손금보던 그 남자는 자신의 운명을 어찌 생각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