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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라면 이런 민원 사례 어떻게 해결하실지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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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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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아 돈아 돈아


BY gasdung 2003-11-13

 

옛날에, 옛날에 빨갱이들은 빨개서 빨갛고, 미국 거지, 우리 나라에 오면 일등가는
부자가 될 거라며 잘 사는 미국 사람들을 부러워했었다. 왈순 아지매 25원짜리 생
라면을 부셔 먹으며 이 다음에 돈 벌면 저 크림빵을 실컷 사먹어 봐야지 하는 마음
으로 군침을 삼켰다. 잘 사는 사람들에 대한 그때의 내 생각은 동그란 크림빵이었
을까?

부자라 불리는 그들은 하늘에 별처럼 반짝거리며 살고 있을 것만 같았고. 우리와
는 다른 사람인 것만 같아 반짝이는 하늘에 별일 것만 같은 그들을 쳐다보고 살았
다. 어른이 되어 전세방 값으로 분양 받았던 빌라가 천 만원을 훨씬 뛰어 넘은 돈
으로 펄쩍 뛰어버리자 "나도 이제 백만장자" 라며 기뻐했었다. 빨갱이는 빨개서 빨
갛고, 백만장자는 백만 원이 넘는 재산만 가지면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 나야말로
천만장자가 아닌가 말이다. 지금은 또 안심해도될 억만장자의 대열에 들어섰으니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처음엔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라는 말처럼 . 열심히 일해서, 기약없는 삶을 조
금이라도 더 낳게 살고 싶어, 뼈빠지게 일해 한 푼 두 푼 마련하는 재미로 살아가던
시절, 그땐 꿈이 있었고. 조금씩 나아가는 삶의 재미가 희망으로 반짝였다. 농담 삼
아 했던 백만장자로 불린 내 집이 비록 강아지 집에 불과하더라도 내 집을 지니고,
손바닥만 한 정원과, 서서 일할 수 있는 입식 부엌, 그리고 초조하게 기다리지 않아
도 좋을 햇볕이 들어오는 화장실이 있어 행복했다. 우리의 앞 날이 밝고 아름다울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왔다. 잘 살지는 못해도 꿀릴 것도
기죽을 것도 없는 나는 기세 좋은 백만 장자였다.

세월이 가면 내게도, 따뜻한 봄날이 다가올 거라고 생각한 어느 날, 보너스 1200%
를 자랑하던 회사가 부도가 났고, 그리고 imf가 왔다. 기세 좋던 백만 장자는 추풍
낙엽이 되었다. 돈이다가 아니라며, 중산층이라 생각하고 살았던 생각이 무너진 것
은 불과 이 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제 제대로 인생의 쓴 맛을 본다며 아낄 것 이
라고는 허리띠 졸라 메는 일밖에 없었으니, 죽어라 당겨 넘어가지 않게 살아가 우리
의 삶은 개미허리가 되어 휘청이고 있다. 그래도 우리보다 못한 이들이 더 많을 거
라는 위안으로 찌지고 볶아 대며 살아 가던 또 어떤 날..

말로만 듣던 억. 억...난 억 억하다가 억하고 나가 떨어졌다. 강남이라는 부촌의 논현
동의 한 빌라에서 공개되었던 70억 다발의 돈 뭉치, 저것이 억인가..날고 긴다는 사
람 들만 만져 볼 수 있는 그 억인가? 저 게 진짜 돈일까? 혹시나 사진을 찍기 위해 쇼
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절래 절래 흔들린다. 그래. 골 백번을
태어나도 그런 돈은 만져 볼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 아이가, "엄마는 로또 당첨이 된다면 제일 먼저 무얼 할거여요? 라고 물었다.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가 대박의 한 탕이었으니, 꿈처럼 아이도 한 탕을 기대하고 있
을 것이다.

"당첨될 일이 있니? 엄만 원래 공짜하고는 거리가 멀다"
"만약에.."
"그래 만 약이라면, 제일 먼저 삼촌 집 하나 사주구, 니네들 잘 살게 해주고 돈 걱정
안 하게 해주고 싶다. 그 다음엔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만 약이라도 그 다음에 써야 할 곳이 생각 나지
않았다. 동생이 내게 떠 넘긴 돈의 부피가, 매월 15일만 되면 목을 죄어 왔기 때문에 그
것만 해결하면 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삼 백만 원 때문에 죽은 사람보다는 조금 많
고, 70억 돈 다발에 비하면 낙동강의 모래알 같았을 돈은 숨을 막히게 했다. 그때 들었
던 생각이. "우리 아부지 땅 좀 안 팔아 주나.."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부자 될 수 없었
으니 아버지의 후광을 빌어 덕 좀 입어 볼까 했던 생각이었다. 재테크의 가장 큰 투자가
자식이라 했는데, 투자마저도 외면했던 내 어리석고 허망한 생각이었다.

허탈하다. 열심히 일하면 일한 만큼 결실이 따라온다 했는데, 열심히 따라 다녀 본들..남
들이 지나간 길목을 지키는 안목밖에 없으니, 욕심 없어 돈이 대수냐며 돈 보다도 사람의
도리가 우선이라 생각했던 내겐 날아다닌 다는 돈을 잡을 수 있을 날은 오지 않을 것 이다.
손 발로 뛰며 잡는 돈은 뛴 만큼 밖에 잡을 수 없다 한다. 죽어라 열심히 일을 해도 우리들
의 삶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매 그 자리인데...그저 굶지 않고 세끼 공양 열심히 하면서 살
아가는 도리밖에 없을까?

팔자에 없는 주식 투자로 "나 부자 됐어요!" 하는 말을 기대하다, 쪽박을 차고 떨어져 세
상을 하직해, 부자 되기 원치 않던 나까지 나락으로 떨어진 날이 있었는데, 한 푼 두 푼
모아 부자 되기에는 이 세상 얼마나 기가 막히고, 허망할까? 열심히 일하면 돌아올 거라
는 희망이 사라진 세상에 더러는 아이와 함께 삶을 포기하고, 카드 빚 때문에 아버지를 죽
이는 우리가 살고 있다. "생활(물질)은 낮게 정신은 높게"가 아니라 생활은 높고 정신은
낮게" 가 되어 돈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돈이 산더미처럼 쌓여 세탁기를 돌려야 하고, 주인 없는 돈들은 끓고 날고 있었지만, 그것
을 볼 수 없는 꿈 같은 우리들은 고통스럽다. 내가 평생 노력하고 궁상을 떨고 살아도 결코
만져 볼 수 없는 돈이었으니 내가 지금 쇼를 보고 있는 것 인가 하는 의문이 들고 있는 것
이다. 사랑하지만, 무섭다. 너무 사랑해 그것에 눈이 멀어 내가 진정 사랑해야 하는 모든
것들에 등을 지게 될까봐..

그 후 신문을 읽지 않는다. 비가 오는 아침에도 오래 동안 주인의 손길을 타지 못한 채 젖
어 있었고, 더러는 강아지 깔개로 쌓여 쭈글거린다. 흠뻑 젖은 신문 속에 환한 미소를 머
금은 대통령의 얼굴이 처량해도 그를 향해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는 것에 대
한 미련은 없다. 마음 어느 한구석에서" 나 당신들을 허부 향 나는 세탁기에 놓고 돌리고
싶어.." 라는 가는 목소리 하나 새어 나온다.


비록 돈 방석에 앉아 세상을 내려 보지 못하지만, 또 백만 장자의 꿈이 허망하게 날아가버
려 서글프지만, 난 영원을 가졌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남기고 갈 유일한 재산인 아이들,
그것이 참된 내인생이 아닐지, 우리는 비록 희망없는 정지된 삶에 적당히 맞춰 살아 가지
만, 아이들의 삶은 살아 숨쉬고 있을 것이다. 가진 게 없어 너희에겐 세습의 부를 남기지
못하지만, 열심히 살아 한 세상 너희와 함께해 진정 행복했다는 마음을 남기고 싶다.
그것이야 말로 이 세상 온갖 금은보화로 바꿀 수 없는 가장 큰 재산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