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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87) * 그녀가 새벽잠을 설친 이유? *


BY 쟈스민 2002-01-22

새벽의 쌀쌀한 외부공기와 철저히 차단된 따뜻한 곳에
이 한몸을 누일 공간을 부여받음에 대하여
내가 당연히 가져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고맙고 감사해야 할 내게 주어진 선물이라 생각하자고 ...
내 자신에게 귓속말을 해 본다.

남편의 마음이 깃든 선물로 받은 따뜻한 옥매트가
이 겨울의 시린 마디 마디를 한껏 나른하게 긴장을 이완시켜 주는 밤
그렇게 편안한 잠에 빠져 있던 시각

새벽의 정적을 가르는 전화벨 소리에 벌떡 일어난 나는
비몽사몽 잠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습관적으로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30분이었다.

"형수님 작은 매형네 아기 잘 낳으셨대요 ...
걱정하실까봐서 전화 드렸어요"

시동생의 전화였다.

"아 네 ... 자연분만하셨는가요?, 어제 저녁 병원에서
좀 어렵겠다는 말을 듣고 돌아왔는데... 잘 되셨네요 ...
이따 오후에 가 뵙지요 ..."

잠에 빠져 있던 남편은 잠결에 뭐라고 두런거린다.

"아들이래, 딸이래"

"글쎄, 그건 미처 못 물어보았어,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어때
건강하게 낳았으면 된 거지 ..."

다시금 잠을 정해 보지만 도통 한번 달아난 잠은 온데 간데 없이
다시 내 곁으로 오려 하질 않고 있었다.

안 그래도 딸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내게 아들타령 늘어 놓던 남편 때문에 불편하던 심기가
시누이네 집 아이 낳은 소식에 더 많은 심란함을 더해 주었던 것이지 싶다.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건 분명 축하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아이 낳았다는 말 뒤에 바로 아들이냐?, 딸이냐?
단답형의 질문을 하지 못한 내 맘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를 그들은 다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런 내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지없이 남편은 내게 그런 질문을 쏟아낸다.

내심 새벽잠을 설쳐댈 이유가 될 만큼 긴급한 일이었는지 ...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는 걸 어찌할 수 없었다.

나는 주위에서 누가 아이를 낳았다고 할 때마다
아들을 낳았다고 유난히 호들갑을 떨며 하는 축하에 익숙지가 않다.
아들을 낳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 기쁨을 몰라 ...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면 난 더이상 할말은 없겠지만...

새로운 생명의 탄생 앞에서 보여지는 사람들의 경솔함이 싫어
나는 어서 그 자리를 뜨고 싶어할 때가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아들을 낳은 엄마라서 더 많이 축하해주고 싶지는 않다.
그저 건강하게 한 생명을 잉태하여 탄생시킨 위대한 모성에 아낌없는 격려와, 칭찬이라면
누구보다도 듬뿍 내어 주고 싶은
나는 그런 마음이다.

오후엔 예쁜 아기옷 한 벌 사서 처음 만나는 아기를 만나러 가야지 ...
엄마에게 기쁨을 주는 아이에게 아주 많은 축복을 빌어주기 위하여
앞날의 무한한 건강과, 착하고 바른 아이로 자라라는
무언의 다사로운 눈길을 건네 주어야지...

만일 시누이가 아들을 낳았다면
내가 못 가진 부분을 가진 그녀에게 부러움이나 시샘이 인다 해도
난 기꺼이 축하의 마음을 보낼 것이다.

작은 강보에 쌓인 아기를 먼 시골에 떠나 보내놓고
아무일 없는 듯 애써 태연하게 돌아서서 일을 하러 가야 했었던
지난날 내게 주어진 엄마의 모습은 때로 그렇게 냉정해야만 했었는데 ...

아기를 포근하게 품에 안으며 하루 하루를 살 수 있는 이가
많이 부럽기도 했던 내 젊은날의 시간들이
이제는 오래된 추억처럼 기억저편에 남겨졌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내지 않으면 안되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마지막까지 놓지 못하고 사는 눈에 보이지는 않을지 모르는
끈에 온몸을 의지한채로 발버둥치듯이 살아내던 삶의 아픔을
어떤말로 대신할 수 있었을까?

이젠 그런 시간을 건너와 내 곁에 선 아이들이라서인지 한없이 곱고, 이쁜 그 아이들을 두고서도
어른들은 또 뭔가를 채울 욕심을 꾸린다.

난 함께 동참할 의지를 찾지 못한채 어쩌면 그것이 죄를 짓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어떤 걸 누군가가 갖고 있다면
그것이 아주 값져 보이거나, 소중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무작정 그걸 욕심내어 내것으로 만들려고 하기 보다는
기다릴줄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다림의 끝에서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만난 이들이라면
세상의 어떤 풍랑도 너끈히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

지금의 나는 모든 걸 다 가지려고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
꼭 한번 뒤돌아 보고 싶어진다.

그녀가 새벽잠을 설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질투, 시기, 분노가 아니었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