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임신중지권 보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20

낡은 주전자


BY namu502 2002-01-19

내게는 아주 낡은 주전자가 하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게는 그다지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 남들이 그렇게 이야기한다.
나의 결혼생활과 같이 했으니 만13년의 세월을 보낸것이다.
이 주전자가 얼마전에는 손잡이가 그동안 불에 그을리고 타 버려서 없어져 버렸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철사로 엮어 놓았다.
아이들도 사람들도 하나 사라고 성화를 부려도 '이 철사는 임시 방편이고 나중에 아주 멋지게 수리할거야.'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내게 핀잔만 줄 뿐 어떻게 할것인가?등의 궁금증 조차 갖고 있는것 같지 않았다.
이 주전자가 낡은 까닭에 '수리해 봤자지 뭘'하고 생각하는것 같다.
어제야 수리를 했다.
잘쓰지 않고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윷가락을 손잡이에 맞게 톱으로 자르고 사포로 곱게 문질러서 나사못으로 박아놓았다.
그제서야 아이들이 보고 감탄을 한다.
나도 이렇게 까지 훌륭하게 변할줄은 몰랐다.
결론을 말하자면 매우 만족스럽다.
설겆이를 하면서도 흐믓하여 보고 또 보고
아마도 내 손때가 묻어 좋은게지.
남편도 빙그레 미소 짓는다.
그러고 보면 나도 나이가 먹어감을 속일수가 없나보다.
낡은것이 좋다.
가구도 세월이 느껴지는것이 좋다.
새것은 정이 가지않아서 처박아 두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그때야 들여다 본다.
어느때 부터인가 집에 있는 물건들에대해서 이야기하는것이 즐거워 졌다.
저 탁자는 누가 준것이고 몇년이 되었고 저 소나무는 우리 도련님이 바위틈에서 쑥 뽑아다 준것이고 저 피아노는 중고 가게에서 얼마주고 산것인데 소리가 아주 좋고등등.
이야기를 갖고있는 가구들이 좋다.
거실장이 새것인데 그것을 볼때마다 눈에 거슬렸다.
정이 들지 않아서 치우고 내가 쓰던 것을 갖다놓고 싶었다.
남편은 새것인데 그런다며 나를 핀잔 했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를 끝도 없이 설명해야 했다.
결국 맘대로 하라는 허락을 받고 그 문갑을 아들방에 들여놓는데 성공했다.
아들은 아주 흡족해 했다.
그리고 나는 자랑스럽게 내 낡은 가구를 거실에 내다 놓았다.
어쩌면 내가 쓴 가구들이 익숙하여서 좋은지도 모른다.
적응력이 떨어지는 나는 새롭게 익숙해져야 하는것이 부담스러운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오래된 것이 좋다.
오늘도 커피를 끓이면서 가스렌지 위에 정갈하게 놓여져 있는 주전자가 참으로 예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