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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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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행복


BY 통통감자 2000-10-09

일요일 아침.

부리나케 운동복을 챙겨들고 아직 잠도 덜깬 아들아이를 들쳐앉고 차에 올랐다.

근 한 달만에 나가는 운동이다.

신랑이 총각때부터 몸담고 있던 농구 동호회의 시합이 있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사직동에 있는 배화여전까지 가려면 넉넉잡고 한 시간은 일찍 서둘러야 한다.


난 해년마다 이 시합은 빠짐없이 참석한다.

신랑과 처음으로 이 동호회를 찾았던 때도 시합날이었다.

처음 봤던 선배님께서 날 소개받고 한 첫 마디.

<니가 여자데려왔다고 내가 너 공줄 것 같냐?>

우리 신랑은 그때나 지금이나 영원한 주전자맨.

배불뚝이 중년남자들이 코트장을 누비고, 나이살이 든든이 밴 아줌마들이 아이들을 챙기며 소리소리 지르고 응원을 한다.

간혹 어린 아이들은 아빠를 찾아 코트장에 뛰어들고, 그럴때면 큰 호르라기 소리가 들린다.

경기는 중단되고 아이 아빠가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안고 엄마에게 데려다 준다.

한바탕 웃음꽃이 핀다.

하지만 그 어느 프로농구 경기보다도 격렬하고 박진감 있고 진지하다.

배불뚝이 선수, 머리가 벗겨진 코치, 아줌마 치어리더.

우리 팀은 사상 최악의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너무도 노쇠하고 체력에 한계를 느낀 아저씨 선수들은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경기는 대패.

하지만, 누구도 실망하거나 질책하는 이 없이 다들 웃으며 즐겼다.

점심식사 후 벌어졌던 여자들의 자유투 대결에서 난 당당히 한 골을 넣었다.

상으로 받은 비누 네 개, 참가자에게 나누어준 석유내 나는 수건을 두 개 받아들었다.

전리품을 의기양양 가방속에 집어넣고 뒤풀이가 시작된다.

어느팀이냐 상관없이 어울려 음료수와 과자로 이야기를 나눈다.

직장이야기, 아이들 커가는 얘기, 정치 얘기, 물가 이야기.

땀이며 먼지에 찌든 얼굴마다 함박웃음이 있다.

소탈하게 체육관 바닥에 앉아 콜라잔을 기울이며, 형수님, 제수씨를 불러제낀다.

아이때매 제대로 못어울리던 아내들도 하나둘 이야기에 동참하고 어느새 한 무리의 가족 놀이터로 변한다.

연배도 다르고,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다를지라도 함께 하는 운동으로 모두 하나가 된다.

자리싸움에 몸싸움을 하였던 원희씨와 배화B팀의 왕눈이 아저씨도 금새 화해하고 마주앉아 얘기하고 있다.

평소엔 부상대기조로 주전자 심부름만 하던 남편도 워낙 궁했던지 제법 오래 공을 가지고 뛰었다.

세 골이나 넣어서 6득점을 한 신랑을 내가 자랑스러워 하자, 20득점 수훈 선수 원희댁은 3점슛을 3개나 못넣었다고 타박이다.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 다들 자기집으로 삼삼오오 빠져나간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서서 우리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

<자기야. 자기 볼 잡을 때 너무 멋져.>

<흐흐. 나 아까 리바운드도 하나 했는데, 봤어?>

<그럼! 봤지. 그때도 멋졌어.>

어둑어둑 해는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