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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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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나의 다짐


BY 이화 2001-09-28


나는 성격이며 솜씨며 찍은 듯이
엄마를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리고 그 뒤에 항상 덧붙는 말이 하나 더 있다.
엄마는 피부가 저렇게 희고 고운데
딸은 까무잡잡 하네......
좀 황당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소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생애 중 어느 하루라도 백설처럼
하얀 피부로 살아보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약골이었던 나 때문에
엄마는 고생을 많이 하셨다.
딸의 몸보신을 위해 닭 모가지를 비틀고 털을 뽑았고
겨울이면 내복같은 소의 양을 사다 손이 얼도록
박박 문질러 빨아 고으셨고 우시장에서 갖은
보양거리를 사 고아 먹이셨다.
젊은 날의 잉글릿드 버그만과 똑같은 미모의 엄마는
친정 동네에서 이모와 함께 미녀 자매로
이름을 드날리셨던 분이다.

딸들 중에서 엄마에게 가장 많은
걱정을 끼친 자식이 나였다.
때문에 이날 이때까지 나에 대한 걱정을
떨치지 못하고 계시고 또 결혼 십 여년이 되도록
펴지 않는 살림살이에 허덕이는 나를
연민의 눈으로 보고 계시며
유난히 부잡하여 당신의 둘째 딸 등골을 빼먹는
외손녀들 때문에 엄마는 또 속이 상한다고 하신다.

결혼하고서 첫해 겨울, 남산만한 배를
안고 사는데 김장철이 되었다.
친정에서 갖다 먹으면 못 산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시어머님께 기대를 하였건만
한겨울에 새벽 버스를 타고
김장을 들고 오신 분은 엄마였다.
그때 고 3 이던 동생의 뒷바라지로 한참
바쁘던 엄마는 우리집 현관에도 안들어 오시고
마당에서 김치통만 건네 주시고는 동생을
등교시켜야 한다면서 황황히 뒤돌아 서셨다.

그때의 엄마 뒷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보자기로 감싼 머리,
나에게 얼른 들어가라며 연신 흔들던 손,
출발 하려는 버스에 힘들게 올려놓던 털신까지.
눈물을 닦으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계란 후라이, 밥 한번 해본 적 없이
덜컥 결혼부터 했던 나는 큰 결심을 하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앞으로 김치는 내가 담아 먹으리라......

김치다운 김치가 내 손끝에서 나오기까지
내다버린 배추며 무우의 양도 만만찮았지만
역시 지성이면 감천이었다.
입맛 까다로운 남편도 이젠 장모님 김치보다
집사람이 만든 김치가 더 맛 있다고
처가에서 눈치 없이 허허거리다가 나에게
꼬집히기도 할 정도로 김치를 담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렇듯 각별한 모녀 지간이지만
설명 할 수 없는 불가사의도 있으니
그건 대충 이런 것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엄마랑 얘기만 하면 싸우게 된다.
엄마는 나를 항상 어린 아이로만 생각 하시며
내가 내린 결정이나 생활태도등을 문제 삼는다.
한마디로 내 성질이 나 자신을 못 살도록
들들 볶는다는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엄마를 닮은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그러한 엄마의 지적들에
수긍이 가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전화를 해도 싸우고,
직접 대면을 해도 싸우게 된다.

싸움이라고 해봤자 가벼운 말다툼이지만
엄마도 이제 칠십 노인이다 보니
가끔 삐지기도 하신다.
그러면 나는 엄마의 그 모습에 또 역정이 난다.
엄마만은 영원히 늙지 않고 언제나
사리 판단 분명 하고 고울줄 알았는데
흰머리 투성이에 가끔 짖무르기도 하는
엄마의 노안을 보노라면 우리들에게서 조금씩
엄마를 앗아가는 세월이 미워지고 그 세월 앞에서
무력한 엄마도 안타까움 속에서 미워진다.

엄마가 돌아가신다면?.....
몇년 전 엄마는 우리들 몰래 수의를 장만해 두셨다.
언니가 귀뜸 해주어서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불같이 화를 냈었다.
산 사람이 무슨 수의야...
그때 가슴 속에서 뜨겁게 치밀어 오르던 덩어리,
엄마가 언젠가는 우리들 곁을
떠날거라는 사실,
그 무서운 자연의 법칙......

무슨 일이 생겨도 의논 할 수 없고
남편과 싸웠을 때 전화기 붙들고 미주알 고주알
털어 놓으며 하소연 할 데도 없어지고,
무엇보다 내가 가고 싶을 때 무시로 가서
엄마가 해주는 맛난 음식 먹으며 뒹굴거릴
친정이 없어진다는 사실...
과연 엄마가 없는 날,
내가 정말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그런 날이 온다는 말인가?

추석 날 친정에 가면 분명 마주치는 순간부터
사소한 일로 엄마와 티격거릴 것이다.
아이들을 꾀죄죄하게 입혔다고,
집에서 먹지 않고 길 가에서 비싼 음식
사먹었다고 잔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욱 하는 성질을 억누르지 못하고
나도 엄마에게 되쏘아 주겠지.
그렇지만 나는 곧 뒤돌아서서 헤헤 웃는다.
엄마도 엄마에게만은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나의 성질머리를 알기 때문에 한 번
째려 보는 것으로 불만을 대신하실 것이다.

어느 불경에서 본 구절이 생각난다.
안보면 부모님이 아주 보고 싶고 걱정되다가
막상 부모님을 뵈면 화를 내고
못되게 구는 것은 집착이요,
부모님이 계시나 안계시나 공경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한결 같으면 효도라고 하는.
엄마에 대한 나의 애증은
효도의 단계가 아닌 '집착'인가 보다.
이번 한가위에는 엄마가 어떤 말로
나의 심사를 뒤틀리게 하더라도 그저
묵묵히 소처럼 태산처럼 참으리라...
다짐하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