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어느 시인의 '설날아침에'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우리아이가 4개월이 넘어서 아랫니 두개가 뽀로록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하얗고 그야말로 고운 이빨 두개가 아이의 웃음마다 보석처럼 반짝인다.
그렇게 고울 줄이야...
결혼하고 3개월이 지나서 '3개월은 사랑, 3년은 싸움, 30년은 정..'이란 말의 뜻을 조금 알게 되었고, 3년쯤 되자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첫아기를 낳고 4개월이 지난 지금은 '아이때문에 산다'는 말을 되새기고 되새기는 중이다.
내 스스로, 그야말로 남과는 다른 모습을 보고 선택했다고 자부하였던 결혼이었는데, 지금은 흔히 '속물스럽다'고 할만한 결혼을 한 사람보다 못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남편이 받은 융자로 집을 얻어 시작한 살림.
지금은 지하방 전세금 2500만원과 자동차한대가 전부이지만 결코 이때문에 한숨쉬어본 일이 없다.
모유먹이는 일 때문에 생머리 질끈 묶고, 화장안한 얼굴로 티셔츠에 바지에 운동화차림으로 다녀도 초라하다고 느낀일도 없다.
지금, 내가 절망이라 생각하는 건.... 남편의 변하지 않는 모습.
'변함없는 사랑'이라 한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임신기간 동안에도 술을 밥먹듯이 먹고, 외박도 자주하고, 싸움도 자주했다.
'내가 이렇게 살 줄이야....'
이런 생각은 그때도 많이 했지만, 절망스럽진 않았다.
하지만, 너무나도 귀여운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에도 그의 모습은 달라지지가 않았다.
회사일 때문이라는걸 너무나 잘 알지만, 일주일내내 술먹고 들어온 그때엔 '아.. 어디에도 하소연 할 데가 없다...'생각했다.
가난한 것은 부끄럽지 않았지만, 내 사는 모습이 초라할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너무나 속이 답답해서 한소리 할라치면 남편은 너무나 느긋한 모습으로 누워 미안하다고 한다.
새벽까지 술먹고 들어와 지친 모습으로 누워있는 그사람에게서 들려오는 '미안하다'는 말은 전에도 들어왔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들을 말이라는걸 알기에 너무나 절망스럽다.
금요일밤을 술로 보내고 토요일새벽에 들어와 오전을 잠으로 보내고 오후엔 싸움으로 보내고, 일요일은 냉전으로 보내고...
벌써 몇주째 되풀이되는 생활이다.
남편이 술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회사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일이라서..괴롭다.
이해는 하지만, 기분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닌걸..
절망스런 기분으로 아이에게 젖을 먹일라치면 왜 그렇게 목이 메이는지...
아이앞에선 결코 큰소리내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이를 악물고 또 해본다.
우리의 생활이 나아질 수 있을까?
더이상 그런 것은 묻지 않을것이다.
그저 아이의 잇몸에서 자라나는 이빨을 보며 희망을 가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