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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살아서 다시는 못 다닐 길인 줄 알았는데..


BY 박 라일락 2003-05-21

어쩜 살아서 다시는 못 다닐 길인 줄 알았는데..

 
 5월 19일 엊그제.
 서울병원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세상만사가 어둠이란 적막 속에서 고요함이 흐르고
 타인들은 아직도 행복한 꿈길을 거닐고 있을 그 시간...
 늘..
 엄마의 간병을 자식의 의무인양 묵묵히 받아들였던 딸아이를 데리고
 먼동이 트기 전 이른 새벽길 떠났습니다.
 목적지까지는 힘껏 달리면 4시간 30분.
 어쩌다가 서울 찾는 차가 넘치면 5시간 넘게 소요되는 장거리이지요.
 
 2002년 4월. 
 나의 정원에 목련꽃망울 방긋 웃는 봄이 한참 익어 갈 무렵..
 내 생애 생각지도 못한 암이란 이름의 불청객을 동행하였고.
 삶의 끈을 잡아 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수없이 울고 넘던 
 중앙고속도로 이 길..

 神의 축복인지..
 아님 끈질긴 생명 줄의 미련인지...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12월에 
 담당의사로부터 완치라는 선물상자를 받았고..
 그 날은 이 길을 환희의 눈물을 머금고 넘어서 왔던 길...
 또 다시 지금... 
 살아 남을 수 있었다는 기쁨의 눈물을 글썽 이면서 
 안개 자욱한 이 길을 달릴 수 있다니...
 
 5월의 산천은 싱거로운 푸름을 자랑하고
 야산 곳곳에 허들여진 아카시아꽃은 벌써 초여름이 다가옴을 알려 줍니다.
 동녘이 밝기 전.
 피어오르는 뿌연 안개 속에서 금방이라도 산신령이 나타날 것만 같은
 한편의 멋진 영화를 감상하는 것 같아서 신비스럽기만 합니다. 

 아~~~
 그 때는 죽음이란 것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쩜 다시는 못 다닐 길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웃으면서 넘을 수있는 이 고개길이 한없이 고맙기만 하였습니다.
 
 하루에 7,000명 이상의 환자가 찾아 든다는 S종합병원.
 오늘도 도떼기시장처럼 진료실마다 포만 상태입니다.
 첨단과학의 세상이라 예전보다 살기 좋다고 말들 하건만
 인간의 병은 어찌하여 날로 숫자가 늘어나고 있을까..하는 
 슬픈 의문점을 남기게 합니다.
 
 돌아오는 길목은 또 다른 이탈을 하였더랍니다.
 한번도 엄마의 말에 거역없이 따르는 딸아이에게 수고 했다는 
 작은 보너스를 주고 싶어서...
 그 이름도 유명한 수안보 온천을 찾았습니다.
 긴 장거리 여행의 피로를 온천수에서 풀 겸...
 개통 된지 얼마 안되었다는 중부내륙고속도로위로 
 두 모녀가 기분도 상쾌하게 질주하는 드라이브는 마냥 즐겁기만 하였더랍니다.
 
 쉽게 눈에 띄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호텔 온천장을 찾아 갔습니다.
 왠지 경치가 수려하고 아름다울 것 같아서...
 그런데 썰렁한 욕실 로비.
 졸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모습의 아가씨 왈..
 '이 곳 지방분 아니고 他道에서 오셨지요?'
 아가씨 목소리 땅에 떨어지기 전에 이 뇨자가 잠시 잔머리 굴립니다.
 아~ 멀리 오는 손님에게는 특별한 서비스로 대우하는 갚다...
 '예. 영덕 대게로 유명한 그 고장에서 왔는데요'
 '그래요? 그럼 목욕비가 1인당 10,000원 두 분이니 20,000원입니다'
 '뭐라고요..
 1인당 10,000원 이라고요?
 어마나..너무 비싸군요. 그럼 이 지방 분들한테는 얼마를 받는데요?'
 '지방사람들은 5,000원입니다'
 '아니 인터넷 자료에서는 분명 4,000원이라고 표기되어 있던데.'궁시렁 궁시렁..
 '아마 예전에 올린 자료일겁니다. 
 그럼 멀리서 오셨으니 20% 할인해 드리겠습니다. 
 두분 16,000원만 주세요'
 이 고장을 찾는 손님들에게 대접은 못할망정 차별 대우가 왠 말인고..
 
 우 쉿~
 쓰잘데없이 잔머리 잘못 굴렸네.
 지방사람이라고 할 걸..
 지방사람 타지방 사람 얼굴에 쓰여 있는 것도 아닌데...
 구리알 같은 황금 6,000원을 불발하다니...
 울며 겨자 먹기라고 하더니 어쩔 수없지 않는가.
 여기까지 와서 랑...
 째째하게 요금 비싸다고 그냥 돌아갈 수도 없고
 살면서 내 생애 제일 비싼 목욕을 하였답니다.
 (참고로..백암온천 4,000원.경주온천 5,000원. 얼마 전에 다녀 왔습니다)

 수증기 가득한 호텔 큰 욕탕은 평일이라 그런지...
 아님 비싼 목욕 값 땜인지 아무도 없고 우리 모녀뿐입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 말 피부로 느끼는 것 같아서 서글퍼 지고..
 그라고 보니 우리모녀가 독탕을 전세 낸 들뜬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비싼 요금 본전 뺏느냐고요?
 후후후...
 그게 참 이상합디다.
 있잖아요. 대중탕 찾는 기분이란...
 발가벗은 띵띵한 내 모습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고..
 또한 아릿다운 남의 나체를 요리조리 감상하는...
 그런 마음으로 찾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가야할 길은 아직 멀고...
 모녀는 한 시간 남짓 따끈한 온천수에 피로를 풀고 
 또 다시 남은 먼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오는 길 목...
 하루하루를 열심히 일한 태양은 자기 의무를 다하고 마감을 하려고
 이미 서산 보금자리를 기웃거리고 있는데... 
 모녀는 임하땜에서 잠시 쉬어 가려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집에서 준비해간 찰밥과 더덕장아찌, 박 잎 무침, 햇 김치 등등으로
 호수 옆 잔디에서 황홀한 저녁만찬의 만끽도 하였습니다.

 석양의 붉은 빛은 긴 그림자의 여운을 남기고... 
 땜 상류의 잔잔한 물결은 황금빛으로 동화되어 함께 흐르니..
 그 분위기에 도취한 모녀는
 병원 검진 다녀오는 길이란 것도 깡그리 잊어버린 체..
 먼 여행길..
 나선 곳에서 행복에 취하여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 같았답니다.
 
 집까지 1시간 정도 남은 길에는 
 운전면허 3년 경험인 딸아이에게 운전대를 넘겨주었습니다.
 임하 땜에서 영덕까지..
 진보 넘어오는 길은 험한 고개가 군데군데 있기에
 아직은 서툰 딸아이 운전실력이 꼭 곡예를 타는 것 같아서 
 불안한 마음에 신경을 곤두세웠더니 내 어깨죽지가 천근만근이 되더라고요.
 하지만 딸아이 자존심도 살려 주고...
 험하고 어려운 길을 경험하므로 
 운전실력도 늘어나라고 운전을 하게하였답니다.
 
 4시 30분에 이른 새벽길 떠나서...
 밤 9시경..
 저 멀리 보이는 곳.
 나의 보금자리.
 우리 가게 대형간판의 화려한 불빛이 집 떠났던 주인을 반기고 있는 것 같네요.
 돌아올 수있는 나의 안식처가 있기에...
 여행의 피곤함도 잊는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