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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80

생일 이벤트


BY dansaem 2002-08-17

8월 15일, 광복절.
북쪽에서 50여명의 대표단이 내려오고
8.15민족통일대회가 열린 날.

음력으로는 7월 7일.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날.
두 남녀가 오랜만에 만나서 얼마나 우는지
열흘이 넘도록 비가 그치지 않는구나.

이래저래 의미가 깊은 날,
또 하나의 의미를 더하는 날이니
바로,
남편의 생일이었다.

솔직히 아이들 생일보다 신경이 덜 쓰인다.
아이들 생일도 별나게 챙기지는 않지만
케?揚犬?선물 따위에 사실 신경이 조금 쓰인다.
물론 신경만 썼지, 돈은 안 썼다. 하하.

신랑 생일이라고 특별히 한 건 없다.
전날 밤에 미역국은 미리 끓여 두었고
아침에 고등어 한 마리 구워서
간단하게 상을 차릴 요량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이크...
눈을 뜨니 7시 40분.
에고, 역시 늦잠이다.
일찍 일어나 별난 찬은 없어도 깔끔하게 한상 차려 줄 작정이었는데...

전기압력솥에 쌀을 안쳤다.
불려놓은 검은 콩을 한줌 넣고.

그리고 나서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고 있던 남편에게 가니
배고프다며 밥을 좀 일찍 먹자 한다.

다시 부엌으로 가서
전기압력솥의 쌀을 일반압력솥으로 옮겨 가스불에 얹었다.

에구, 모르겠다.
어차피 늦은 거 고등어나 구워서 먹지,뭐.

그리고는 안방에 와서 다시 누운 신랑에게로 갔다.
팔을 베고 속닥속닥 쫑알쫑알....
픽픽~ 압력추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조금 있다가 꺼야지.'
계속 노닥거리다가 나가보니
밥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얼른 불을 끄고 김을 뺐다.

냄새로 봐서는 숭늉도 못 끓일 정도로 탔나보다.
먹어보니, 이런...
김을 일찍 빼서 뜸이 덜 들었다.
콩에서는 비린내가 나고
밥에서는 화근내가 난다.

어쩔 수 없지, 뭐.
고등어 한마리 구워서 아침을 먹었다.

저녁에는 저녁 사준다는 선배랑 약속을 하고 안동엘 갔다.
거기서 다른 한 선배랑 연락이 되어
남자들 셋은 식사 후 술 한잔 하러 가고
여자들은 아이들 데리고 그 선배의 집으로 갔다.

그렇게 나간 남편과 선배는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니 3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물론 운전은 내 몫이었고
남편은 조수석에서 쿨쿨.
정신없이 골아떨어진 애 셋을
남편과 함께 방안으로 데려다 눕히고는
아직 마당에 있는 남편에게
차안의 가방 좀 가지고 들어오라고 일렀다.
그랬더니 그이는 운전석에 들어가
등받이를 뒤로 젖힌 채 눕는다.

"여보, 일어나."
"......"
"여보! 여보! 일어나. 들어가서 자.
집에 다 와서는 여기서 자면 어떡해.
일어나, 들어가서 자란 말야."

내 손에 이끌려 마지 못해 나온 남편은
"나, 뒷자리에서 잘 거야."
하며 뒤로 가는 것이었다.

"뭘 뒤에서 자? 얼른 들어 가자."
뒷문 손잡이로 손이 가는 남편을 보면서
운전석 문의 잠금장치를 눌렀다.

'히히, 이럼 못 열겠지.'
내 지갑 속에 스페어키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있게 차문을 닫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나는 알았다.

내 지갑이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것을...

"어머, 어머! 어떡해, 어떡해. 여보 어떡하지?"
"내 지갑 차 안에 있는데... 거기 키 하나 더 있다고
문 잠근 건데... 어떡해? 어떡하지?"

놀라서 폴짝폴짝 뛰는 나를 보며
남편은 혀를 차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양치를 하고 자리에 누워서도
나는 그 생각 뿐이었다.
아직 그런 경우가 한번도 없었기에 당황스러웠다.
주워들은 얘기로는 쉽게 열 수 있다고도 하던데...

"여보, 어떡해? 당신은 열 수 있지, 응? 당신은 만능이잖아?"
"보험회사에 연락해. 그럼 열어 줄 거야."
"아이~ 그러지 말고... 당신, 해 줄 거지?"
"내가 무슨 수로 열어? 나도 몰라."
남편은 계속 남의 일처럼 얘기한다.
그렇지만 믿을 데는 남편 뿐인 것을.

"내일 한결이 치과도 가야할 거 같은데...
당신, 할 수 있으면서 일부러 그러지?"

"당신, 내가 못 하는 거 알면서 일부러 그러지?"
남편은 끝끝내 도리질을 하고 잔다.

오늘 아침,
남편이 차에 가서 문을 살핀다.

'히히, 그럼 그렇지. 설마 그렇게 모른 척이야 하겠어?'

옆에 가서 참견을 한다.
"전에 TV에서 차 전문 절도범이 그러는데
50센티 자 하나만 있으면 웬만한 차는 다 연다 그러던데..."
하면서 아쉬운 대로 30센티 자를 내밀었다.
뺀치, 철사, 자, 맥가이버 칼....
생각할 수 있는 연장들은 다 등장했다.

많은 실패 끝에 결국은 '자'가 일등 공신이었다.
차창 유리 틈으로 집어넣어
어찌어찌 한 부분을 건드리니
찰칵~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잠금장치가 풀렸다.

역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이젠 잠겨도 걱정 없다.
어떻게 여는 지 배워놨으니까.
차 열쇠 꽂아놓고 문 잠그신 분~~
앞으론 저한테 연락하세요.
저렴하게 해 드릴게요.ㅋㅋ

어쨌거나
서른 여섯번째 남편의 생일은
참신하고 새로운 이벤트로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