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하루종일 치적치적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어요.
학원에서 돌아오신 시어머님께서는 감기기운이 있으신지
병원엘 다녀오셨는데 목이 좀 아프시대요.
겨울이란 계절이 어르신에겐 좋지않은 계절임은 틀림없어요.
얼른 쾌차하셔야 할텐데....
얼마전,
지하철에서 어떤 노인 부부가 다정히 타는 모습을 보았어요.
손에 손에 몇 꾸러미씩 무언가를 들고 선반위에 물건을 얹으시고는 자리에 앉으시는데 할머니께선 할아버지 앉으실 자리를 얼른 손으로 툭툭 털으시는거예요.
그리고 무슨 이야기가를 계속 조곤조곤 나누시는데 얼마나 보기 좋은지요....
옷차림은 남루하였어요. 얼굴도 무척 까맣게 그을리시고 주름살도 아주 많으셨지요. 바로 건너 앉아있는 제 눈에 보기에도 두분은 틀림없는 시골의 농부 같았어요.
아마 가을걷이 하신 것을 서울 사는 자식들에게 한 보따리 베풀고 가시나 보다... 자식들이 부모님 빈 손으로 보내기 서운하여 어르신 입으실 옷이나 생활에 필요한 이런저런 것을 사서 보낸 것 같다...
하고 혼자 짐작해 봤어요.
두분 얼굴이 얼마나 편안하고 좋아뵈던지,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뵈던지 저두 그 길을 같이 따라 가고 싶을 정도였어요.
여름의 그 불같이 뜨거운 태양아래서, 가혹한 태풍의 비바람 앞에서 한 포기, 포기 마다 갖은 정성으로 곡식을 키우시고는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맘껏 욕심껏 갖다 주시는 모습을 상상하니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요...
두 분이 오래도록 행복하셨으면 해요.
두 분의 다정함이 훈훈한 난로같이 느껴졌어요.
나이들어 챙겨줄 사람은 부부밖에 없다잖아요.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이해하는 것, 그게 어디 물질에서 나오는 건가요?
물질은 사랑이나, 이해, 따스함, 정, 값진 육체의 노동 같은 것을 대신해 줄 수가 없어요.
내가 누구와 친해지고, 사랑을 나누는 것은 그만큼 그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 쏟는 정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서로 길들여지는 것'
처럼요.
아름답게 늙어간다는 것은 젊음을 오래도록 유지하여 항상 싱싱하고 산뜻한 느낌을 가져도 멋있겠지만,
눈가에 세월의 자욱만큼 조글조글한 주름이 지고, 손등에 거뭇거뭇한 검버섯이 피고, 하얀 백발이 머리를 덮어도 그 또한 아름다운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운동하고 있는 곳에 아주 예쁘고 고운 할머님이 한 분 오세요.
얼마나 예쁘고 고우신지
'할머님, 어쩜 그렇게 고우세요?'
하고 제가 먼저 말을 건넬 정도였어요.
전혀 염색을 안 한 짧지만 파마기가 남아있는 커트머리를 하셨고, 눈가엔 많이 웃어서 생겼음직한 주름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어요.
'나도 늙으면 저렇게 해야지...'
하고 생각했지요.
우린 너무 나이든다는 것을 싫어하기만 하잖아요.
텔레비젼에 나오는 가수들의 연령이 날이 갈수록 어려만 지는 것이 전 좀 불만이예요.
어디 깊이 있는 노래나 부르겠어요?
발랄함과 싱싱함, 건장함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고 푸근하게 해 줄 수 없건만.
우리나라에만 있는 이상한 증상같아요.
외국가수들은 50세,60세가 넘어도 자주 텔레비젼에 나와 노래도 하고, 새로운 앨범도 발표하던데.
우린 그런 가수는 아예 섭외도 안 하나봐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한 쇠락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뜻이래요.
인생에서 무엇이 좋고, 어떤 것이 더 진실한 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나이든 사람만의 특권이거든요.
두 부부가 아름답게 해로하는 그 모습,
(그런 의미에서 일찍 혼자 되신 저희 시어머님은 참 안타까워요.....)
미우나 고우나 그저 내 곁에 있는 이 사람이 얼마나 소중해요.
루게릭병으로 죽은 모리라는 노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내 안에는 모든 나이가 다 있지.
난, 3살이기도 하고, 5살이기도 하고, 37살이기도 하고,
50살이기도 해... 그 세월을 다 겨쳐왔으니까..."
하루하루 사는 것이 바로 죽음으로 한발한발 더 다가가고 있는 것을 어쩜 우린 매일 그렇게 잊으면서 살고 있는지 몰라요.
그래서,
많은 것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며 그렇게 살고 싶어요.
먼저 내 자신을 사랑해야하겠죠?
혹시 하루 종일 자신이 초라하고 밉고, 증오스러우셨더라면
내 자신을 용서해 주세요.
그리곤 아주 부드럽게 다독여주세요.
참 수고했어......
오늘도 잘 참았어.....
이렇게요.
그리고 내 반쪽에게
오늘은 다정하게 뽀뽀해 주세요.
아주 듬뿍 사랑을 담아서요.
저두 그렇게 하려구요.
평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감기 조심 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