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의 자기정립을 위하여
아줌마의 현실을 그대로 두고 '아줌마는 훌륭하다' '아줌마에 대해서 지나치게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아줌마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대학에 다니는 여학생의 숫자가 늘어나자 여대생이라는 말이 사라진 경험을 가지고 있다. 똑똑한 아줌마,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권리 뿐만 아니라 의무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아줌마가 많아질 때 세상의 아줌마에 대한 편견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 스스로 자율성을 획득해야 한다.
여성들은 남성중심의 사회적 구조를 명확히 이해하고 또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한 후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방식을 결정해야 한다. 여성 개개인이 겪는 문제는 사실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의 문제이다. "여성에 대한 갖가지 오명은 자신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주부 개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숨가쁜 산업화 과정에서 가정을 영원한 2순위로 돌려 버린 사회 전체의 책임일 것이다." 우리 각자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왜 이리 사는게 어려운가 하면서 괴로와 하고 있지만 보다 깊이 있는 인식을 위해 노력하다보면 문제는 다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시가 식구들로 인해 괴로움을 겪는 경우는 심중팔구 권력관계의 불균형에서 오는 것이고, 여성 자신의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 괴로움을 겪는 경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정에 몰아넣었다가 다시 저임금으로 불러내기 때문이며-전업주부였던 사람에게 결혼 전의 전직을 다시 주는 경우는 드물다-, 자아실현을 하지 못해 괴로운 경우는 가사노동, 양육노동의 성격상 단순반복적이며 그 성취가 타인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전반적인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여성이 자기개발을 추구하는 경향이 높아졌는데도 여성에게는 마땅한 역할 대안이 없기 때문에 가정을 가진 여자는 우울하다-아마도 가정을 가질 것을 요구받는 여자는 고독할 것이다- 가정을 가진 여자가 자아실현을 하려고 들면 그 여자가 가는 길은 너무도 험난하다. 취업을 해도 가사노동과 직장일을 완벽히 병행해야 하며 며느리 노릇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전업주부로만 있자니 정말 자신이 할 일 없는 사람인 것 같고 전혀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없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는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줌마는 불안한 사회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여성다움에 강박되었던 20대보다 훨씬 다양한 삶을 영위하며 당당하게 말하고 자신의 눈으로 새상을 보려한다." 그 경험적 증거들을 우리는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서 만날 수 있다. 동창모임에서 가족에 얽매이지 않고 여행을 하는 모습이나 이런 저런 시민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모습이나 아줌마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는 모습이나 나이에 개의치 않고 개방대학에 입학하는 모습이나 여론 조사 프로그램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모습 등등에서 자신의 주인으로 서고자 하는 아줌마들을 볼 수 있다. 환경운동, 지역운동과 각종 봉사활동에서 아줌마들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여성 스스로가 자신과 다른 계층에 있는 여성, 자신과 다른 입장에 있는 여성을 이해할 때 여성의 사는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결혼과 취업은 해도 탈, 안해도 탈이다. 결혼을 하면 가부장체계에서 자신을 지키기 어렵고 결혼을 안하면 사람 대접을 못받으며, 취업을 하면 이중 노동에 시달려야 하고 또 가정과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는 시선을 견뎌야 하며 취업을 하지 않으면 경제능력 없는 사람으로 남편과 자식의 성공에 기대어 기뻐하는 대리인생을 살면서 가장 낮은 사회적 지위에 머물러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성이 자기 삶의 주체자로 바로 서되 여성간의 연대에 기반하여 서야 한다. 여성 스스로가 자기와는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여성을 이해하고 옹호해줄 때 여성 연대가 가능해지고 여성연대가 이루어져야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부술 수 있다.
모든 여성은 아줌마 아니면 예비 아줌마 혹은 아줌마이었던 사람이다. 여성으로 태어난 이상 아줌마라는 호칭에서 자유로와질 수 없다. 그런데도 아줌마를 부정적으로 인식한다면 그것은 결국 여성 스스로가 스스로를 부정하는 셈이다. 여성들은 스스로를 부정하도록 사회적으로 조건지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자기부정은 여성 개개인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여자가 해봐야 어디까지 하겠어, 여자가 한다고 나서봐야 분란만 일으키고 말지' 하는 패배적 인식은 현실적으로 여성의 발목을 붙잡고 가능한 일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무혼 여성들은 아줌마를 거부함으로써 스스로와 유혼 여성들을 분리시키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하고 유혼여성들은 무혼여성들의 자유를 질투하지 말고 무혼여성들이 무혼으로 인해 받는 소외를 이해함으로써 여성간의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여성 스스로 높여야 한다. 개별 여성들이 자신이 처한 사회적 조건을 올바로 인식함으로써 자신을 무장하고 그 사회적 조건과 부딪쳐 싸우며 바람직한 아줌마 상을 정립하는 것에 대해 의식을 가지고 노력할 때에야 비로소 아줌마라는 호칭에는 긍정적 의미가 부여될 것이고 여성 각자의 삶의 모습도 달라질 것이며 여성의 삶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