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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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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하고 싶구나 미안하다고...


BY 불루마운틴 2000-08-21

아직도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꿈속에서 들은 하모니카소리에 잠이 깨 새벽 하늘을 봅니다
엊저녁 부터 내리던 비가 추적 거리며 내리고...
아직 귓가엔 하모니카 소리가 생생합니다
모르죠... 밤새 내린 빗소리를 착각해 들은건 아닌지...
이렇게 여름의 끝자락에 내리는 비를 보면 아주 먼 기억속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우연히 다락청소 하다 발견한 이젠 누렇게 빛바랜 어린시절
사진처럼 잊혀져 가는 추억속의 얼굴 하나가 이 비오는 새벽
날 아프게 합니다
이젠 정말 깨끗히 잊혀진줄 알았는데...
아직도 곤히 자고있는 남편이 행여 깰세라 발끝을 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식탁위에 놓인 커피메이커의 스위치를 누르고 모카향 냄새를
맡습니다
지금부터 20년이 훨씬 지난 겨울.
중3의 겨울방학 이었습니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2층 창가에서 이른 아침부터 턱괴고 앉아
바다를 봅니다
아침밥을 먹는둥 마는둥 잠바를 끼어입는 날보고 엄마가 또
잔소리를 합니다
"겨울방학이라고 집에 내려와 허구헌날 등대에 나가 사니
전생에 바다하고 무슨 연이 있었는지 원... 쯧쯧쯧... "
"네--- 전 아마 전생에 파도나 등대였나 봐요 "
바다는 늘 거기에 있었습니다
겨울바다는 사납게 울고 있었고 늘 그렇듯이 등대로 갑니다
헤일을 ?♣막졀?쌓아둔 방파제에 걸터앉아 바다를 바라보는게
왜그리도 좋았는지...
그날도 그렇게 청승을 떨고 있었습니다
파도소리에 섞혀 들려오는 하모니카소리가 날 자극했고 두리번
거리며 소리나는 곳을 찾았습니다
그 소리는 바위틈새에서 났고 당돌하게도 난 그소리를 ?아
바위틈새로 기어 내려갔습니다
커다란 바위 사이 사이 공간속에서 나는 하모니카소리.
그 동굴속에 아주 작게 웅쿠리고 앉아 한 남자 아이가 하모니카
를 불고 있었습니다
그 아인 커다란 눈을 가진 가냘픈 아이였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날보고 당황하며 일어섰습니다
" 미안해. 방해 했다면.
하지만 하모니카 소리가 너무 좋아서..
괜찮다면 옆에 앉아 들어도 되겠니? "
그 소년은 얼굴이 불거지며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그 아인 나랑 동갑이었고 우리집 길건너편 공터에 어젯밤에
이사온 서커스단에서 공중곡예를 하는 파도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이름이 왜 파도야? "
"우습지? 내 이름..."
"아니... 예뻐서 그래. 내가 얼마나 파도를 좋아하는지 얘기
했지? "
그 아인 귀까지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친부모님이 날 담요에 싸서 등대가에 버려 뒀고 우리 단장
아버지가 우연히 발견해 키우셨는데 그날 유난히도 파도가
성나게 울어 내이름을 파도라고 지으셨데... "

그아이의 눈은 슬펐고 하모니카 소리도 슬펐습니다
엄마를 졸라 간 서커스 구경에서 난 그 아이의 아찔한 공중곡예
를 보았습니다
울긋 불긋한 옷을 입고 긴 막대를 들고 보기에도 아찔한 공중
을 건너는 그 아이의 가냘픈 팔과 다리...
우린 거의 매일 바닷가 그 동굴속에서 만났고 하모니카 소리를
들었습니다
겨울방학이 끝나갈 무렵 서커스단도 다른 고장으로 옮겨갈 준비
를 했고 난 알수 없는 서운함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파도야 이건 서울 내 주소야
서울로 공연 오면 연락해. "
그렇게 우린 헤어졌고 난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그 아인 이고장 저고장을 떠돌며 공연을 했고 거의 일주일에
한번꼴로 편지를 했습니다
처음 몇번은 호기심에 답장을 썼지만 곧 실증이 났고 뜯지도
않고 서랍속에 던져진 편지가 쌓여 갔습니다
괜히 주소를 가르쳐 줬구나 후회를 했던것 같습니다
그렇게 답장도 없는데 편지는 계속 날라 왔고 고1 여름 방학을
맞았습니다
언제부턴지 파도에게 연락이 끊겼고 그날도 찜통같은 더위끝에
비가 내려 마음까지 시원한 그런 날이었습니다
외출했다 들어오는 언니가 소포꾸러미를 내게 던졌습니다
"집 앞에서 우체부 아저씨를 만났는데 너한테 온거드라 "
보낸 이름은 처음 보는 이름이었습니다
호기심에 두근거리며 소포를 끌렀습니다
낯익은 하모니카와 편지 꾸러미...
난 그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실례인줄 압니다
난 파도와 같이 서커스단에 있는 형입니다
어려서 부터 말이 없고 수줍움을 잘 타는 파도가 작년겨울 만난
한 소녀때문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좋았습니다
요즘들어 답장이 없다고 걱정을 했는데...
화가 나는 군요
이렇게 끊을 꺼면 왜 파도에게 주소를 가르쳐 줬는지...
파도에게 좀더 오랫동안 좋은 친구가 되 주었으면 했는데...
파도, 갔습니다
아주 편안한 곳으로요
며칠전 공연중에 발을 헛디뎌 떨어졌습니다
어려서 부터 한번도 그런 실수는 없었는데...
그날 유난히도 좋아 하더군요
우리...
다음달이면 서울서 공연이 있거든요
병원으로 옮기기도 전에 아주 환한 얼굴로 파도는 갔습니다
그아이가 처음온 바닷가 파도속에 그아이의 가루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짐을 정리하다 써두고 미처 못 부친 편지들이
있어 하모니카와 함께 부칩니다
파도의 하모니카 소리를 좋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해 여름 내내 파도에 대한 미안함에 마음 아팠고 그 후로
오랫동안 바닷가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 아이의 하모니카 소리가 들릴것 같아서...
이젠 20년이 훌쩍 넘었고 그 아이의 얼굴도 하모니카 소리도 다
잊었습니다
이 새벽.
빗소리를 들으며 모카커피를 마십니다
파도야...
이제는 말하고 싶구나
미안했어 정말 미안해...
다음에 널 만난 바닷가 그 등대에 가면 꼭 들려줄께
그 후로 내가 불던 하모니카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