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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호스 아줌마의 신문읽기 54 - [바둑] 이세돌 “위태로워 보여도 싸움엔 자신있어”


BY 닭호스 2001-03-21

이세돌 신드롬. 요즘 인터넷 바둑 사이트 게시판과 대국실 등에서 화제의 중심은 단연 이세돌 삼단이다. 만 18세의 나이에 국내 2관왕으로 군림중인 이 삼단은 제5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서 거함 이창호 구단을 2연파, 국제 대회 정상 8부 능선에 도달함으로써 그 인기가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무서운 속기와 함께 신세대답게 톡톡 튀는 언행으로도 주목받는 이세돌의 ‘어록’을 정리해 본다. ( 편집자 )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 12월 6일 첫 타이틀인 제5기 천원전 결승 3국서 유재형 사단을 3대0으로 꺾은 뒤, “대국에 들어갈 때 무슨 생각을 갖고 임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저도 싸울 만 하니까 싸우는 거라구요.”― “거의 모든 바둑에서 집을 먼저 챙기는 바람에 세력이 약한 중앙에서 너무 위태롭게 싸우는 적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

▶“나야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2000년 2월 28일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서 2연승 후, 이창호 구단이 평소답지 않게 쉽게 무너진 것은 나이 차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 것 같다며.

▶“나를 오늘날까지 키워준 형이지만 꼭 눌러 줄 꺼에요.”― 2000년 10월 제4기 신예 프로10걸전서 친형 이상훈(26) 삼단과 결승을 치르게 됐을 때. 하지만 막상 결승서는 평소와 다르게 무기력한 반면 운영을 보인 끝에 이상훈이 우승, 형에게 ‘눌린’ 결과가 됐다.

▶“저는 워낙 목표를 크게 잡거든요.”― 2000년도 초 본인 목표가 도전권 1, 2개, 국제대회 본선 1개 이상이었는데 연말 2관왕에 국제 준결승까지 올라 초과 달성했다고 지적하자.

▶“중반이 가장 자신이 있고 종반 마무리도 괜찮아요.”― 한 판의 바둑을 초, 중, 종반으로 나눌 때 초반이 가장 어렵다는 말에 곁들여서.

▶“에이, 뭘 따로 준비해요? 내려가는 게 선물이죠.”― 지난번 설에 고향인 비금도에 내려갈 때 엄마(박양례ㆍ53)에게 선물을 준비해 갔느냐는 물음에.

▶“막내인데…”― 고향에 계신 엄마와 통화할 때 존대말을 쓰느냐는 질문을 받고 웃으면서.

▶“운동은 전혀 안 즐겨요. 그러니까 문제죠.”― 평소 건강 단련을 위해 무슨 운동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제 몸을 보면 아시겠지만…”― 무슨 음식을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특히 좋아하는 것이 없다고 설명하면서(그나마 생선회가 그 중 먹을 만 하다는 답을 추가함).

▶“1 70정도 안될까요?”― 키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자기 또래들 보다 약간 작다면서.

▶“정확한 거 몰라요. 내가 면장(면장)도 아니고…”― 고향 비금도의 인구가 어느 정도 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울었겠죠, 뭐.”―8살 때 어느 아마추어 대회에 나갔다가 너무 빨리 둬 8강서 탈락, 아버지에게 회초리를 맞은 뒤 어떻게 했느냐는 물음에.

▶“글쎄요 1백 나 나가나…”―섬 출신이니 수영 솜씨가 뛰어나겠다고 묻자.

▶“보낸다고 가나요? 자기가 알아서 가는거지…”― 살림을 도맡고 있는 큰 누나(이상희ㆍ27)도 시집을 보내야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없어요. 정말 큰일이에요.”― 요새 10대들은 대부분 걸 프렌드를 가지고 있던데, 여자 친구가 있느냐고 묻자 정색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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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둑은 전혀 못하지만.. 아빠가 바둑을 즐겨하시고, 또 남편이 바둑을 전혀 못하여 그 양측 사이에서 만만찮은 갈등을 겪은지라 신문에 실리는 바둑계의 소식에는 즐겨 촉각을 곤두세우는 편이다.

그런데...
바둑계에 생긴것도 예리예리한 유지태를 닮은 신예 바둑기사 이세돌이 등장하자 나의 관심은 온통 이 영계에게로 집중되었다.

나는 이런 남자 고등학생들에 관한 기사를 보면 내가 교생 실습을 나갔던 97년 그 어린날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내가 한 해 교환학생으로 독일을 다녀와 복학생의 신분이 되어 나보다 한 살 어린 젊은 여자 후배들과 함께 교생 실습을 나간 곳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남자학교였다.

게다가 과목의 특성상, 젖내 풍기는 중학교도 아닌.. 일단 여러모로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 사료되는 고등학교였다.

나는 타대학 출신인 다른 두명의 독어과 교생과 한 독일어 선생님 반의 담임 교생으로 배치되었는데...

나와 함께 배치된 그 두 명의 교생의 미모를 한마디로 묘사하자면..

전인화와 고소영이었다.

전인화의 그 우아한 기품을 자랑하는 A교생은 미모 뿐 아니라... 성격까지 온화하고 다정다감하여 삭막한 남고의 생활에 찌들린 남학생들의 인기를 한 몸에 샀다.

그리고 나머지 B교생인 고소영은...
모델라인이라고 했던가.. 모 모델학원에 다닌다며, 앉아 있을 때에도 학처럼 웅크린 그 맵시가 상당했다.

지금에 와서는 이 모든 것을 아무렇지도 않은듯 인정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이 모든 것들이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학생들은..얼굴이 이쁘지 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대놓고 무시하고, 싫어하였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로 행하는 나의 관심어린 애정을 간과하였으며 기피하였을 뿐 아니라... 본토에서 일년간의 학습으로 연마하여 알차게 준비한 나의 수업들에서 시종일관 방관하는 자세를 보였다.

내가 자율학습 감독으로 들어가기라도 하면 대놓고 가방을 싸서 집으로 가 버리는 아이들도 있었으며, 아침 자율학습처럼 갈 수 없는 때에는 이쁜 선생님을 보내 줄 수 없느냐고 물어오는 당돌한 아이들도 부지기수였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여.. 꽤나 성실하게 준비했던 나의 교생 실습 기간은 이렇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스승의 날이란 게 다가왔다.

참 겪어본 사람은 알지만 교생의 신분으로 스승의 날을 맞는다는 것은 참 곤혹스러운 일이다.

스승의 날..교생들의 임시 대기실로 사용되고 있는 도서관에 축 늘어져 앉아 있는데.. 한 남학생이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내 앞에 사기로 만든 앙증맞은 장식품을 부려놓고 갔다. 그의 행위에 대한 단 한마디의 설명도, 한 줄의 카드 한장도 없는 그런 썰렁한 선물이었지만.. 나는 참으로 고맙게 받았다.

그것은 어쩌면...
정말 죽을맛이던 나의 교생실습에 활기를 불어 넣어준 활력소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날...
고소영과 전인화는 꽃 바구니와..
꽃 다발의 틈바구니에 파 묻혀.. 남자친구들을 불러 그 꽃들로 차를 도배하여 집으로 날라갔다.

그리고 나는 그 장식품 상자와 고소영과 전인화에게 선물을 전하러 왔다가 내 눈치가 보여 하나씩 던져주고 간 푸석한 장미 몇 송이들을 달랑 들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
나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세상에는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이 있다는 교훈을 배웠다.

그렇지만.. 내가 더 확실히 배운 것은 세상 사람들이 나를 주시하지 않는다하여 내가 지레 용기를 잃고 풀이 죽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지속적으로 해내는데에는 자신 스스로의 만족이 백명의 타인이 보내는 갈채보다 더 큰 힘을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