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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의 추억!


BY 남상순 2001-03-03

철길의 추억!
아침엔 철길 사진을 보니 어쩜 그리도 정겨운지요?
저 길에서 고등학교 때 어떤 오라비가 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보리잎새 무늬가 있는 치마를 입고 고운 베잠뱅이를
입고 쑥스럽게 웃고 있는 독사진을 볼라치면
지금도 씁쓸한 미소를 띠웁니다.
철길이 영원한 평행선이듯 그 오라비 갈길이 달랐죠.
유행가 가사같은데요?
철길따라 아련히 떠오르는 얼굴들입니다.
그리고 천안과 온양사이에 봉강교라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내 인생 마의다리랍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 철길밑에서 교실밖수업이 있었습니다.
군용담요같은 튜부를 여럿이 타다가 뒤집어 지는 바람에
그 개울에서 완전히 죽을 뻔 했습니다.
세번째 떠오를때 담임선생님이 건져 주었는데...
그 철길밑 개울물이 그리 깊은 줄을 누가 알았겠어요
그 때 내 인생 떠내려 갔더라면 지금 우리 이현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 뿐인가요? 철길옆엔 어김없이 토끼풀이 무성했습니다.
아버지는 집에 양계 40마리 정도 하셨습니다.
닭에게는 보약같은 토끼풀이었겠지만 초등학교
3년이던 내겐 무섭기도 하던 철길이었고 지겹기
짝이 없던 토끼풀 이었습니다.
토끼풀을 까만 줄바구니에 꼭꼭 밟아서
한가득 뜯어와야 저녁밥을 먹었으니까요?
그 토끼풀을 뜯을려면 왜 그리 철길 저편에 문둥이가
걸어 왔었던가? 끔찍하게도 무서운 문둥이였습니다.
간을 빼먹는다는 속설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그 때 절절하게 받았던 생각이 납니다.
달걀도 먹기 싫은 내 심정을 그 철길은 알것입니다.
중국에서 17시간을 철길을
유감없이 달려본 적이 있었습니다.
2층 침대차였는데 대륙횡단 철도였습니다.
거기서 북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무섭게 경계하더니
4시간쯤 지난 후부터 이야기 꽃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이미 북한의 식량난이 어느정도인지를 알게 되었지요.
그 청년이 한국으로 초청해달라고 배터지게 먹고나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 청년은 중국에 친척이 있어 그 기차를 탈
정도의 사람이었으니 행운아였을텐데...
반공사범으로 잡혀갈 때 이야기를 합니다.
세월이 많이 바뀌었군요.
경의선 차를 타고 그 철길을 다시 달릴 날도 올려나 모르겠습니다.
러시아의 밤기차를 타고 마냥 달리던 기억이
떠오릅니다.남편과 단둘이 한칸 전세를 내었던 밤이었습니다.
설원을 달리는 기차안에서 둘이는 러시아 선교의비젼을
키우면서 명실공히 세계적 복음화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 밤 달빛도 좋았습니다.
철길을 달리는 철커덕거리는 음률이 태고적부터 인생은
레일위에 있었던가 아련히 듣던 소리가 정다웠습니다.
러시아의 낭만이라 해두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가는구나' 마냥 낯설지 않던 남편과의
별천지 여행, 약간은 두렵웠습니다.
시베리아 벌목공 이야기도 생각이 나고요.
으시시했던 그리고 그 철길밖 쓸쓸한 미개척의 땅!
이상한 냄새를 맡으며 달리던 무시무시한 밤기차가
스릴로 새롭습니다.
이제는 나이에 맞지 않는 소원이지만,
시골 간이역마다 쉬며 달리는 칙칙폭폭 소리나는
옛날 기차를 타고 혼자 긴긴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허술한 옷차림에 그림움 가득담고 어색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는 어떤 사람을 차창에 그렸다간
또 지우면서...
간이역에 내려선 반갑지만 쑥스런 한 사람을
만날테고 철길을 걸어 마냥 잎새지는
들길을 걷겠지요.
둘이는 또 철길처럼 다른 두 길을
확인하고 분명히 헤어져야겠지요.
여전히 쓸쓸한 환영이로군요.
꽃피는 삼월의 첫날입니다.
모두모두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