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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부림스<20>-만두부인 속터졌네.


BY eheng 2002-01-09

드뎌... 2002년 새해가 밝아왔다.
온냐, 올해는 내 기어코 가정의 민주화에 작은 불씨가 되리라. 내 한몸 불살라 민주의 동을 트리라..새해벽두부터 청운의 꿈을 꿨건만... 부조리한 조직을 사생결단하고 구조조정하겠다던 결심은 간데없고 에구구~~ 몸뚱아리야~~~ 안아픈 곳이 ?졍?

뭐... 시도조차 안해본건 아니지...
일단 새해 전날 큰댁에 일하러 갔었겠지. 큰댁 며느리도 둘씩 있고, 나도 시다바리 아랫동서를 도축장가듯 억지로 끌고 갔었어. 가보니 옴마야... 요즘에도 정초라고 밀가루 30키로짜리 들여다 놓고 밀가루 반죽해서 만두 빚어먹는 집 아직도 있단마리...
일단 비지땀 흘리며 반죽하고 있는데 큰 서방님 늦은 아점먹고 늘어지게 (자빠져) 자고 있고, 작은 서방님은 그때까지도 디비져 자고 있더란 말이지. 하릴없는 큰아버지 뒷짐지고 이방 저방 시찰다니시고...
우리 작은집 며느리는 마루에 퍼질러 앉아 일단 만두 속을 다지는데... 돼지고기 닷근에 숙주나물 한 양동이, 김장배추 한 양동이, 두부가 한판... 큰어머니 가지고 오시는 온갖 양념에 급기야 반죽은 십시일반으로 늘어나고... 불어나는 만두소따라 우리의 불안감도 점차 고조되는데...
정오나 되서 빚기 시작하는 만두, 커다란 양푼으로 셋이나 담겨져 있는 만두소 볼때마다 한숨이 저절로 나오고, 큰댁 동서들 빈대떡 반죽을 보니 그것 또한 장난이 아닌데... 그래도 난 빈대떡 지지는 게 더 낫더라. 왜냐구? 지짐은 그래도 성취감이나 있지 한입에 쏙 들어가는(앗! 영선이 찌찌!)만두 빚으려면 날밤새거든.
부엌의 동서들을 부러워하며 5시간째 만두를 빚는데 아랫동서는 맛이 완전히 가더구만. 그도 그럴것이 밀어서 빚는 만두는 태어나서 처음 이거든. 더우기 돌박이 아이가 있어 큰 어머니가 오지 말라는데 내가 도련님더러 애 좀 보라하고 데리고 왔으니 속으로 열불이 왜 안났겠어. 하지만 이러는 나는 천불 안 났겠남?
드디어 지짐부인들, 지짐을 끝내고 만두부인쪽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하도 만두를 빚다보니 큰댁 큰며느리는 잔뜩 부풀린 찐빵만두로 보이고, 땡글한 작은 동서는 시장안의 쇠고기 만두같고, 내 아랫동서는 길죽한게 속없는 만두같고, 큰집 아가씨는 네모돌이 편수같고, 큰어머니는 조글조글한 석류만두같고, 큰아버지는 비쩍말라 중국집 에그롤 같고, 큰 서방님은 잘못 쪄서 늘어붙은 불량 만두며, 작은서방님은 속이 삐져나온 넙적한 군만두같고, 조무래기 아이들은 오종종 물에서 막 건져 놓은 물만두로 보이는데... 눈 앞의 환각을 ?느라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니 내 모습 또한 주름잡힌 야끼만두같더라.
암튼, 큰집 며느리들과 오랜만에 돌라앉아 혁명을 모사했것다.
이젠 남자들도 명절과 제사엔 같이 일하고 같이 놀자고. 자기넨 뭐 특권층인양 명절때면 사우나 가고, 늦잠 자고, 뭐 예쁘다고 밥상까지 차려다 안방에 모시고, 일은 우리가 하는데 왜 자기네가 늘어지게 하품하며 허리 두들기냐고!!!
동서들, 오케바리?

근데, 헌데, 숨은 적은 역시 우리안에 있는거거든. 큰댁 큰 동서, 계속 동조의 고개짓을 하더니 막판에 자기는 그런 말 절대 못하니 나더러 하라는 거야. 자긴 그러면 죽는다고. 하는 수 없이 서방님들 오라고 해서 낄 껴? 죽을 껴? 물었더니 자기네야 오매불망 가녀린 여편네들(평균 몸무게 62.5키로) 도와주고 싶어 안달이 나지만 부모님 눈치에 그리 몬한다며 두 발 두 손 다 빼는거야. 진짜 치사한 찐만두들이지?
관둬라, 넵둬. 내가 십자가를 지지. 교회는 왜 다녔겠어?
큰어머니한테 조심스레 갔지. 조금 애처롭고 애교있는 비음으로 큰어머님을 불렀지.

"큰어머니임..."
"왜? 힘들쟈? 식혜먹고 혀라..."
"그게 아니구요, 큰어머님 힘드시죠? 제가 커피 타드릴까요?(이게 아닌데...)"
"일 다해놓구 마시자. 저기 바카스도 빡스로 있다. 한병씩 마시고 해라."
"예... 큰어머니...근데요..."
"왜? 만두피 모자르냐? 내가 얼릉 반죽 더 만들어 주마."
"그게 아니구요,..."
그때 큰댁 맏손자 등장.(10년만에 얻은 장손자다.)
"할머니 물 줘."
"온냐, 온냐, 내 새끼... 이눔아, 사내가 부엌에 들어오면 고치 떨어진다. 할미가 갖다 줄테니 얼릉 안방에 가 있어라. 부엌엔 절대 들어오지 마라."
"...@#$%^^%$#..."
"뭐 더 필요하냐?"
"아아뇨... 박카스 두병 마셔도 돼죠?"

이렇게 해서 이번 설날에도 허리 왕창 무너지고 어깨와 팔다리에 쥐났으며, 응치뼈 박이고, 쇄골뼈 욱신거리며, 발뒤꿈치에서 불났다. 만두부인 만두 빚다가 속이 다 터졌다. 어둑해져서야 절룩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큰댁 설 음식 준비하느라 우리 먹을 음식은 아무것도 없는거야. 그래서 다시 나물에, 전에, 밤늦도록 준비했지. 이날로 일이 끝났겠니? 희망찬 설날, 떡국만 여덟번 끓이고 그 웬수같은 만두 꼴보기 싫어서 먹어 없앨려고 45개 먹었더니 속이 터졌다. 불어 터졌다. 나,... 완죤히 결딴 났다.

숙경이 지지배, 좋았겠다. 뭐... 시카고에서까지 만두 빚어 떡국 끓여 먹었겠니? 냉동만두 사다가 먹었겠지. 애자도 전이야 좀 부쳤겠지만 만두피는 사다가 빚었지? 나 아직도 만두만 보면 미슥미슥 멀미난다. 내 앞에서 만두 얘기 일년 동안 하지 마라. 만두의 ㅁ자도 말하지 말아. 제발~

내년 설날엔 어떻게 저 잠자는 튼실하고 피둥거리는 남정네의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이용할지 지금부터 연구할란다. 만두부인 속터져 갈기갈기 찢기어도 만두는 원래 속 맛으로 먹는 법이니 알차게 속을 채워서 다시 도전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