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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주 이담에도 말벗하며 순하게 늙어갈 수 있을까?


BY 칵테일 2000-08-06

업은 아이 삼년 찾는다는 말도 있지만, 우린 사실 소중한 것을 아주 가까이 두고도 그 가치를 모를 때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부러워하는 모습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리라.
어느 풍경좋은 곳에서, 고생없이 곧게 늙은 두 노인부부가 정겹게 산책하면서, 두런두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친구처럼 살아가는 모습....... 같은 것.

박완서씨의 짧은 소설 중에 '마른 꽃'이라는 게 있다.
그 내용은 주인공이 할머니인데, 어느 날 친척 결혼식에 가는 시외버스에서 점잖은 할아버지 한 분을 알게 된다.
물론 그들은 금새 친해졌고, 잠시 달뜬 기분으로(아마도 연애감정 같은 것이리라)노후의 미래를 함께 꿈꿀 정도로 발전한다.
그들의 정분을 눈치 챈 각자의 자식며느리들은 그들의 재혼을 진지하게 추진하게까지 되는데.......

그 내용의 압권은 단연 그 할머니가 재혼을 고사하면서 갖는 생각에 있다.
먼저 간 남편을 마음에 두어서인지 그녀가 말하기를,
남녀가 늦게까지 해로하며 정겹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젊은 날 뜨거운 피를 함께 나눈 추억과, 그 격정의 시간으로 만들어진 자식을 낳고 키워가는 '동물적'인 순간을 공유한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박완서씨를 개인적으로 좋아해서기도 하겠지만, 그의 생각은 어쩌면 내가 품고 있는 생각을 먼저 표현해준 것 같아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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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는 우리가 이다음에도.... 호호 늙어 내가 나를 잃어갈 때까지라도 우리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당연하지. 죽지만 마. 그러면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 있지."

"내가 당신보다 더 먼저 늙어가겠지? 그래도 우리 젊은 날, 이렇게 사랑한 거 추억하면, 서로가 할 말도 너무 많겠지?"

남편과 농담할 때 난 가끔 이런 말로 그를 놀리곤 했다.
"내가 돐잔치하고 있을 때 당신은 아예 이 세상에 그 존재도 없었어. 내가 두 발로 뛰어다닐 때야... 겨우 그때 당신은 엄마 뱃속에 있었을 걸??"

2살 어린 내 남동생과 동갑인 내 남편. 그래도 꼬박꼬박 '매형'이라고 부르는 내 남동생은 속으로 얼마나 우릴 보고 재미있어할까.

그렇지만 오랜 시간 함께 살아가다보니, 그래도 남편은 남편이라는 생각이 들고 또 내 보호자라는 든든함이 느껴진다.

우리 젊은 날을 이렇게 사랑하며 하루하루 살다보면, 우리도 점점 늙어갈테고......
그렇게 늙어가다보면 우리 젊은 날 아름다웠던 순간들 추억하며, 할말많아 두런두런 조잘대며 살아갈 말벗으로 살아갈 수 있겠지.

많은 이들이 늙어 말벗이나 하자고 아주 노년에도 재혼을 한다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젊어서부터 함께 늙어간 이가 아닌 다음에야, 무엇을 공유했길래 서로가 진지한 말벗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먼저 간 이를 추억하며, 다소 쓸쓸해도 혼자 늙어가는 것이 난 더욱 아름다운 삶이 될 것이라 본다.

혼자 쓸쓸하기 싫어서라도, 내 짝이 잘못되지 않게 정말 정말 더 잘해주어야겠지.
그가 없이는 나도 언제나 혼자일 수 밖에 없으므로.....
그 없이 사는 시간이 싫어서라도, 내 짝의 삶을 더욱 소중히 가꿔주며 살아가야지.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