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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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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동부


BY shinjak 2002-01-08

<세심동부>
창문을 때리는 매서운 바람소리가 춥다.
창밖의 겨울 풍경까지 한 폭의 산수화다.
며칠 전 생소한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울려왔다.
누구의 목소리지 하는 순간, 꾀꼬리노래 소리같은
생기찬 목소리 주인공은 K선생님의 그 곳을 가는
기차시간을 전해주시는 내용이다.
작년 여름방학 때,
아담한 옛집을 헐고 새로 지은 수필가이신 심회장님의
'세심동부'의 뒷곁에 있는 조약돌이 생각이 난다.
그냥 산을 뒤로 아담하게 지은 연한오렌지 벽돌로 된 작은 집
이다. 어디에서 온지는 알 수 없는 작은 조약돌들이
옹기종기 뿌려져있는 뒷곁에 쪼그리고 앉아
조약돌을 만지작거리며 산에서 내려오는 정적에
가끔 스치는 바람을 물끄러미 바라 본 그 여름날의 풋풋함이
.마음 편하게 다가온다.
오래도록 마음 한 구석에 가시지않고 자리하고 있던 편안함.
정적과 청정한 새집의 처마와 조약돌의 속삭임.그리고 그 산
바람.
이제 몇 개월이 지나 겨울이 왔다. 겨울 풍경은 더 청정하겠지
상상을 하며 기다려진다.그 조약돌들은 겨울을 맞아 떨고 있
겠지.오늘 드디어 그곳을 간다.옷을 따뜻하게 챙겨입고 엊그제
온 진눈깨비로 길은 유리알처럼 미끄러워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어깨를 올리고 조심조심 겨울의 발걸
음이다.청량리 역은 역답게 세찬 바람이 귀를 날려버릴 작정을
했는지 인정없이 몰아부친다.
역은 여행객들의 설레이는 모습들로 출렁이는 강물같다.
나도 그 속에 한 무리가 되어 기차를 탔다.
멀리 이어져 있는 산과 강물과 길위에 쌓인 눈이 여행의
운치를 더해준다. 기차는 신나게 하얀 겨울길을 가르며 달린
다.
공기 맑은 양평이라서인지 눈은 더욱 많이 쌓여 있다.
세월리 초등학교를 돌아서자마자
세월리 학교보다 기인 '세심동부'의 벽돌담이 보인다.
마당에 서 있는 은행나무의 빈가지들이 세찬 겨울바람을
이겨내며 우리를 반긴다.오래도록 사람의 온기를 맞지 못한
나무계단위로 소복이 눈이 쌓여 치워주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기둥에 행서로 씌여 있는 '세심동부'가 선명하게 눈에 띈다. 힘
찬 마음'심'자가 더욱 힘차 보인다 멋있는 한 획이다. 졸졸 흐
르는 실개울에는 눈이 쌓여있다. 그 여름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들의 분주한 손놀림이 그립다. 물은 여전히 맑게 흐른다.
그 건너 하얀 집의 교회 십자가가 너무 초라한 모습으로 예수
님이 십자가에 매달린 모습처럼 애처럽다. 벽난로속에서는 장
작이 우리를 위해 겨울동안 품고 있던 사랑을 맘껏 활활 태우
고 태워 정열의 칼멘의 춤을 춘다.
못다 핀 사랑의 활화산 같은 불길은 서서히 온 실내를 따뜻한
온기로 채운다. 미리 준비한 떡만두국과 깊은 땅 속에서 꺼낸
잘 익은 김치와 동치미는 우리의 출출한 뱃속을 정신없이 채워
준다.잠시 후 연하게 삶은 시골돼지고기와 양념새우젓에 삼페
인 한잔 씩이 나왔다.얼근한 산사같은 별장의 하루가 취한다.
즐겁다.이게 인생이지 싶다.
회장님의 <숨겨둔 연인>이라는 호기심 가는 책의 표지 뒷장에
회장님 행서체의 서명을 받으면서 멋진 삶의 주인공이시구나
새삼스럽게 느끼고 고맙게 받아 안았다. 부끄러움이 배여있고
당당하시면서도 어딘가 외로움이 서려있는 분인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뒷곁으로 돌아가 조약돌을 주워 함께 따라온 p선
생님의 외동딸 윤영이와 친구가 되어 조약돌 놀이를 했다.
"선생님 몇 학년이세요?"
"응, 나 2학녀 4반이야."
"응, 아닌 것 같아요. 2학년 4반은 제가 1학년 때 선생님
이셨는데... 그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요."
"으응, 사실은 3학년 9반이야."
"그럼 그렇지, 3학년 9반 선생님, 우리 친구 해요.
약속 도장 싸인 복사 뜨고...
사실은 서글프게도 나는 올해가 떡국 한 그릇으로
어쩔 수없이 또 한 살을 더해 육순이다.
우리는 동네의 꾸불꾸불한 길로 눈을 밟으며 바람을 맞으며
끝없이 세월리 길을 걸으며 내용없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조잘대며 걸었다. 너무 바람이 세차 꼬옥 껴안고 서로의 체온
을 받아 들이면서 걸었다. 호주머니에 몇 개의 조약돌을 굴리
면서 지난 여름날의 청정한 조약돌의 속삭임을 떠올리며...
자갈자갈 소리로 우리 놀이는 소리없이 즐겁게 한다.
뒷곁에는 자갈들의 모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겨울을
따뜻하게 안아줄 장작더미가 나란히 쌓여 거적으로 덮여있다.
다양한 크기의 동글동글한 얼굴같은 장작더미의 모습이 정답게
보인다.거기에 조약돌밭이 더욱 돋보인다. 옛날 외갓집의
장작더미처럼 한가롭고 편하게 그렇게 놓여있다.
이 집은 모두가 마음에 든다. 넉넉하게 넓어서이고 잔디가
있고 소나무 몇 그루는 앞 마당에서 통유리를 통해 그
씩씩함을 보여주고 은행나무 몇그루는 멀리 집을 지켜주고
마당가 간이정자옆에는 느티나무가 으젓이 서있고 철대문
옆에는 오엽송 한 그루가 버티고 서있고 언덕에는 바위가 그
위상을 자랑하고 테라스처마에는 곶감이 잘 말라 보는이의
눈을 유혹한다. 이 풍경들은 햇볕에 더욱 맑게 빛난다.소복이
눈이 쌓인 <세심동부>
그러나 뒷곁에 숨어 모여있는 고요함을 안은 조약돌이 더 마음
에 닿아오는 걸 어쩌랴! 나에게 첫사랑처럼 맑게 다가온 것
을...
올해는 그것으로 새로운 친구도 사귀게 되었으니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