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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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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3 (긴상와 기레이데스)


BY 베티 2000-10-21









10월 초에 일본어학교 가을 학기가 시작되었다.

아는 사람이라곤 남편과 그의 지인 몇명 뿐이어서

집안에서 심심하게 지내던 나는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았다.

우리반은 열 두세명정도 였는데 여자는 나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온 아이 뿐이었다.

그나마 그 아이는 결석을 자주 해서 회화시간에

'긴상와기레이데스'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내게 아름답다라든가 귀엽다라든가

하는 표현은 결코 남자에게 쓸 수 없는 말이었기에

그 때만큼 원없이 들었던 때도 없다.

학생 중에는 두 부류로 나뉘어졌다.

하나는 부모의 재력으로 별 어려움없이 유학와서

학비나 생활비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부류와

아르바이트로 학업과 생활을 해 나가야하는

순전히 자력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부류로 말이다.

물론 우리도 후자에 속했다.

가끔 한국에서 적지 않은 돈을 가져다 쓰긴 했지만...

높은 물가고와 학비는 감당하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본어를 빨리 터득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된다는 생각은 공통적이었다.

짝꿍 H도 가족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해 나가는 학생이었는데 불어를 전공해서 인지

일본어도 아주 빨리 익혔고 잠도 아르바이트

때문에 서너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그래도 대학때 했다는 펜싱과 정신력이 체력을 지탱해 주는

것 같았다.

결석도 전혀 하지 않아 성적과 출석율이 좋아야

탈 수 있는 장학금까지 탔다.

그런 일은 흔한 일이 아니어서 참으로 H가 자랑스러웠다.



3개월이 지나 다시 후배들이 들어왔다.

그 중 K라는 후배가 있었다.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에 1년 과정으로 왔는데

그 역시 부모 도움보다는 스스로 학비를 벌어서

공부하는 의지의 한국인이었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휴게실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K가 도시락을 싸와서 밥을 먹는 것을 보았다.

도시락은 그런데로 괜찮았는데 반찬통이 없었는지

비닐에 단무지를 싸와서 먹었다.

그 곳엔 나 말고도 다른 학생들도 있었는데

우리반 아이중 하나가 나중에 날 보자더니

그 후배에게 도시락을 싸오지 말라고 하란다.

그 후배는 내 소개로 같은 장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내가 말하기가

좀 수월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같은 한국사람으로서 너무 초라해보이고

일본인한테 창피스럽다는 것이었는데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저런 어려움속에서도 공부를 한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사람의 관점이란 그렇게 다를까 싶었다.

보통은 햄버거 가게에서 요기를 하든지 아님 제과점이나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변변치도 않은 도시락을 당당하게 꺼내놓고

거리낌없이 먹는 모습을 보았을때 나는 속으로

반성을 많이 하고 그 용기를 높이 사주고 싶었는데

단지 가난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싫다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왜 나는 그에게 내 의견을 떳떳히

못 전했는지 그것 또한 비겁하다는 생각을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다.


서로들 아르바이트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지라

교실 밖에서는 만나기 힘들었던 그 아이들이

사뭇 궁금해질 때가 많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들 살고 있을 아이들,

연락이 되면 한번 쯤 그 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차 한잔이라도 마시고 싶은데...